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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으로 들어가 과학으로 나오기 - 사고 습관을 길러주는 흥미로운 이야기들
리용러 지음, 정우석 옮김 / 하이픈 / 201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중학생 시절 나는 수학을 너무 만만하게 봤다. 1학년 때 공부를 그렇게 하지 않아도 제법 성적이 잘 나오기에 마음을 놓은 것이다. 그랬기에 2학년이 되자 수학이 조금씩 어려워지더니 3학년 때는 정말 수학이 싫어졌다. 나의 교만이 그런 화를 불러올 줄 알았더라면 진작 공부 좀 했을텐데, 그 때 마음을 놓은 여파는 제법 커서 고1 때까지 수학은 내게 괴물이었다. 아직도 출판사계의 대표 베스트셀러인 '수학의 정석'은 거의 고등학생 수학공부의 바이블이었는데, 어찌 그리 보기 싫던지 정말 만지기도 싫었다. 중학교 때 만만하게 본 수학이라는 녀석은 그렇게 나를 괴롭혔다. 그런데 고2 겨울방학, 나는 수학을 때려잡기로 각오하고 겨울방학 내내 '수학의 정석'을 3번 반복하여 풀었더니 그제서야 수학이 쉬워졌다. 그 덕에 고3이 되고나서도 수학은 나에게 제일 쉬운 과목이 되었고, 수학이 쉬우니 물리도 자연스레 쉬워서 나는 여고생임에도 불구하고 수학과 과학을 제일 좋아하는 학생이 되어버렸다. 내가 독한 마음을 먹고 '한 번 이겨먹은 수학'이어서인지 아직도 나는 수학이 싫지는 않다. 그래서인지 예비고 1이 되는 큰딸이 수학이나 과학을 공부하다가 잘 모르겠다고 가져오면 제법 아이에게 설명을 해 줄 정도는 된다. 그럴 때마다 아이는 "엄마! 엄마는 어떻게 그걸 다 기억해?"하며 신기해한다. 나도 신기한 게 처음에는 잘 모르겠다가도 찬찬히 읽다보면 예전에 공부했던 게 조금씩 되살아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아직도 수학과 과학이 재밌고 좋다. 사설이 너무 길었지만, 그처럼 내가 수학과 과학에 대한 애착이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책을 펴는데 [수학으로 들어가 과학으로 나오기]라는 제목부터 끌렸다. 수학과 과학이 통한다는 건 경험으로도 너무 잘 알고 있다. 수학이 재밌어지니 과학도 덩달아 재밌었던 경험을 해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유명한 수학자들이 곧 과학이고, 과학자들이 곧 수학자인 경우도 많고 말이다.
이 책의 저자는 중국 베이징대학교에서 물리학과 경제학 학사학위를 받은 후 칭화대학교에서 전자공학 석사학위를 받은 '리용러'라는 분이다. 저자의 경력을 보니 화려하다. 많은 제자들을 중국의 명문대인 베이징대학교와 칭화대학교에 합격을 시켰고, 국제 올림피아드, 아시아 올림피아드, 중국 올림피아드에서 1등 수상자도 여럿 배출했단다. 유튜브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반인을 위한 재미있는 과학 동영상을 2018년부터 꾸준히 올리고 있으며 시청자 수도 약 900만 명에 달하고, 조회수도 2억 뷰를 넘어섰다고 한다. 그야말로 유명한 크리에이터이다. 재미있는 수업으로 유명한 분이 쓴 책이라 그런지 수학과 과학에 관한 책이라 다소 딱딱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일반인이 읽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있으며 내용구성도 지루하지 않게 잘 짜여져있다. 중간중간 진짜 어려운 수학 개념이 소개되긴 하는데, 그런 내용이 있다는 정도만 알고 가볍게 패스하고 넘겨도 전체적인 이해에 별 지장은 없으니 굳이 스트레스까지 받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내용은 크게 세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1) PART 1 - 우리에게 익숙한 수학 이야기
2) PART 2 - 교과서에서는 만날 수 없는 물리 이야기
3) PART 3 - 생활 속에서 알아보는 과학 이야기
PART 1. 우리에게 익숙한 수학 이야기

PART 1의 내용들을 간략히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 '직각삼각형의 두 직각변이 모두 1이라고 할 때, 빗변의 길이는 어떻게 두 정수의 비로 나타낼 수 있죠?'라고 질문한 히파소스는 피타고라스에 의해 바다에 빠져 죽게 된다. 그래서 피타고라스의 정리로도 너무 유명한 피타고라스는 '세계 최초의 공부 깡패'가 된다.
* 뉴턴이 미적분을 발명했다고 한다. 미적분을 그렇게 많이 풀었지만 이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 처음으로 원주율을 3.14로 계산한 사람이 목욕탕에서 "유레카!"라고 외쳤던 아르키메디스라고 한다.
* '오일러의 공식'으로도 너무 유명한 오일러는 13세에 대학에 입학하여 16세에 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나, 병으로 오른쪽 눈을 실명했고 결국 왼쪽 눈마저 실명하게 되는데 두 눈을 잃은 상황에서도 오일러는 암산으로 수많은 수학 문제를 해결했단다.
* 수학 실력이나 기억력을 믿고 도박장에서 돈을 벌겠다는 것은 기상천외한 발상이다. 수학은 어떻게 돈을 잃었는지 알려줄 수는 있지만 돈을 벌게 해줄 수는 없단다.
* 일기예보에서 비가 온다고 했을 때 비가 오는지 안 오는지는 일기예보의 정확도와 관련 있을 뿐 아니라 그 지역의 평상시 비가 오는 확률과 관련이 있다.
* 금융기관은 개인 투자자보다 시세를 장악하고 계산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그래서 아무리 개인 투자자가 좋은 전술을 쓰더라도 잠시나마 이익을 볼 뿐, 통계적으로는 결국 개인 투자자가 손해를 본다.
PART 2. 교과서에서는 만날 수 없는 물리 이야기

영화속에 종종 나오는 장면 중 이런 게 있다. 우여곡절 끝에 무인도에 홀로 남겨지게 된 주인공. 혹시나 지나가는 비행기의 눈에 띄어 구조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모래위에 큼지막하게 S.O.S라고 쓴다. 늘상 구조 신호는 'S.O.S'라고 당연하게 생각하고 무슨 약자정도 되겠거니라고만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S.O.S.의 의미가 그게 아니었다.
' 우리가 잘 아는 구조 신호 SOS는 모스부호에서 간단한 3개의 점, 3개의 선, 다시 3개의 점으로 표현되기에 국제무선전신조약에 의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구조 신호로 규정되었다' - 본문 178쪽 인용 - |
정보를 모스부호로 바꾸어 송신장치로 규칙에 따라 길고 짧은 무선전신 신호를 보내고, 그 신호를 다시 문자로 바꾸는 100년 전의 통신방식의 역사적 의미가 고스란히 담긴 S.O.S가 다르게 느껴진다.
PART 3. 생활 속에서 알아보는 과학 이야기

평소 전자파 때문에 전자레인지를 잘 안 쓰려고 하는 편인데, 7장의 내용을 보고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마이크로웨이브는 물체를 통과할 수 있기 때문에 음식물 안팎으로 함께 가열되어 빠르게 익는다. 즉, 전자레인지는 마찰로 열을 발생시키는 것이지 발암물질을 생성하는 것이 아니다. - 본문 297~298쪽 인용 -
마이크로웨이브는 햇빛의 파장보다도 길고 주파수도 더 낮다. 그러므로 인체에 직접적인 해를 일으킬 리 없다. 핸드폰 신호, TV 신호, 방송, 레이더 등에 마이크로웨이브가 사용되며 인체에 해가 되지 않는다. - 본문 301쪽 인용 - |
제목대로 수학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과학으로 마무리지었다. 학창시절 한 번쯤은 들었거나 배웠던 내용들이 키워드로 등장하고 있어서 부담없이 접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나 흥미로운 주제들로 내용을 구성하고 있어서 자칫 지루해질법 하면 호기심을 유발하는 질문들로 다음 이야기를 시작하는 저자의 노련함과 지혜에 읽다보니 한 권을 다 읽어냈다. 저자는 수학과 과학을 학문적으로만 접근하고 다루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생활의 다양한 장면 속에 수학과 과학이 숨어있다는 걸 일깨워주고자 이 책을 쓴 것 같다. 그래서 학교에서 배웠던 많은 지식들이 저자가 던지는 흥미로운 주제와 연계되어져서 이 책을 읽는 독자의 사고력을 한층 더 신장시켜줌에 일조하리라 믿는다. 그러하기에 수학과 과학을 어렵게 생각하는 일반인 뿐 아니라 중, 고등학생들에게도 꼭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