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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럼증 완치설명서 - 뇌신경학 박사 박지현의 어지럼증 이야기
박지현 지음 / 피톤치드 / 2022년 3월
평점 :
수 년 전에 아이가 현장체험학습을 가는 날이었다. 김밥을 싸려고 새벽 일찍 일어나다가 끔찍한 경험을 했다. 침대에서 일어나는데 천장과 바닥이 휙 도는 것이었다. 마치 서로 위치를 바꾸는 것처럼 천장은 바닥이 되고, 바닥은 천장이 되면서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만 같았다. 새벽 일찍 일어나다보니 피곤해서 그런가보다 하고 잠시 침대에 누웠다가 시계를 확인하려고 돌아누워 휴대폰을 잡아드는 순간 또다시 침실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고 급기야 구토까지 했다. 이게 내가 겪은 이석증의 첫경험이다.
너무 놀라 종합병원 응급실로 실려 가게 되었고 가는 내내 구토는 계속 이어졌으며 그런 몸상태로 이런 저런 검사를 받은 끝에 이비인후과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거기서 '이석정복술' 시술을 받았고 마침내 '이석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석정복술'은 그야말로 신기하기 그지 없었다. 고글같은 안경을 쓰고 움직이는 레이저 광선같은 것을 따라 시선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놀이동산 기구같은 것에 몸을 맡겼고 이리 저리 누웠다가 엎드렸다가를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끝났고 어지럼증은 한결 나아진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2020년 6월. 재발한 이석증으로 또 한 차례 고생을 하게 되었고, 이번엔 직장까지 쉬어야 할 정도였다. 다행히 1년을 쉬면서 몸은 많이 좋아졌는데 지진 이후 여진이 있듯, 그 후로도 아직까지 미세한 어지럼으로 나는 늘 불안하다. 혹여나 운전하다가 어지러워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늘 나를 가슴졸이게 할 정도로 말이다.
이렇게 나처럼 평소 어지럼증으로 삶의 질이 떨어지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얼른 손에 넣은 책이 있으니 바로 <어지럼증 완치설명서>이다. 자신을 만난 환자들이 '운이 좋은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는 박지현 박사님은 '운 좋게 좋은 의사 만나 잘 회복한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펴냈다고 한다. 비록 대면하여 진료를 보진 못해도 책을 통해 전하여지는 박사님의 따뜻한 마음이 책날개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전해져왔다.
평소 '어지럽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나는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할 때가 많다. 어지러워서 어지럽다고 하는데 마치 엄살을 부리고 꾀병을 부리는 것처럼 바라보는 사람, 보약 좀 지어 먹어라고 훈수를 두는 사람, 예민해서 그렇다고 핀잔을 주는 사람 등 진심으로 나의 어지러움을 함께 고민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하다못해 나와 가장 가까이에서 잠을 자는 남편조차도 늘상 듣는 나의 '어지럽다'는 말을 그저 나의 호흡 한 줄기처럼 여기고 그냥 흘려듣는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듯이 '긴 어지러움에 경청 없다'라는 말을 만들어내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박지현 박사님은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신다.
'어지럼증'은 그 자체가 질환이 아니라 증상입니다. 즉 뇌졸중이나 전정신경염 같은 특정 원인질환에 의해 나타나는 여러 증상들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어지럼증이라는 증상은 수십 가지 복합적이고 다양한 증상들을 한 마디로 압축한 단어입니다. 나의 '어지럽다'가 너의 '어지럽다'와 완전히 다른 의미일 수 있습니다. 즉 가벼운 현기증에서부터 몸을 가눌 수 없어 바닥에 쓰러지는 심각한 상태까지 다양한 증상이 '어지럼증'이란 한 단어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 p. 24 中 -
나의 어지럼증에 관해 드디어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을 만난 것 같은 기분에 가슴이 뛰었다. "피곤해서 그래", "네가 예민해서 그래", "잘 안 먹으니까 그렇지" 등 늘 내게 타박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어지럽다고 그냥 둬서는 안되고 원인이 무엇인지 찾아야 해"라며 걱정해주는 저자의 진심을 또 한 번 느끼는 순간이었다.
어지럼증의 종류로는 크게 5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뇌 문제로 발생하는 '중추성 어지럼증', 속귀 문제로 발생하는 '말초전정성 어지럼증', '내과적 질환과 관련된 '내과적 어지럼증', 심리적인 문제와 연관된 '심인성 어지럼증',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복합성 어지럼증'이다. 저자의 설명대로라면 난 말초전정성 어지럼증과 심인성 어지럼증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이석증이 재발되는 경험을 한 상황이다 보니 아무래도 말초전정성 어지럼증일 것이고, 여러 번 겪다 보니 비슷한 상황이 되면 또 어지럼증이 생길 거라는 걱정에 불안해지면서 어지럼증 증상이 곧 시작될 것만 같은 극도의 공포에 사로잡힐 때가 많을 정도이다.
저자는 이 5가지 어지럼증의 증상 및 원인에 관해 쉽고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코너마다 삽입해 놓은 귀여운 삽화는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며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고 7장에서 내가 그토록 기다리던 '일상에서 실천하는 어지럼증 치료'에 관한 귀한 정보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 치료법들을 간단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잠을 푹 자야 한다. (7~8시간 정도)
--> 수면 부족은 어지럼증을 악화시키는 가장 큰 원인!
2) 물을 충분히 마셔라.
--> 수분이 부족한 탈수 상태에서는 대부분의 어지럼증이 악화됨.
3) 엽분섭취를 줄여라.
--> 기립성 저혈압으로 인한 어지럼증을 제외하고는 짠 음식이 어지럼증을 악화시킴.
4) 술을 피하라.
--> 술은 대부분의 어지럼증을 악화시킴.
5) 두통일기를 써라!
--> 일기에 오늘 먹은 음식을 써두면, 음식과 증상과의 연관성을 따져볼 수 있음.
6) 골다공증과 비타민d 결핍을 개선하면 이석증 재발률이 낮아진다.
7) 어지러울수록 운동하라.
--> 테니스나 배드민턴, 탁구처럼 회전하는 자세가 많은 운동은 어지럼증을 개선하고
균형감각을 증진하는 데 도움이 됨.
8) 스트레스를 관리하라.
--> 스트레스를 최소화할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을 찾아라.
"세심하게 진단하고 정성껏 치료하면 거의 모든 어지럼증은 완치되거나 호전된다."
저자가 본문에서 여러 번 강조한 말이다. 어지럼증 환자를 향한 저자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사실 이 책 한 권 읽었다고 나의 어지럼증이 사라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제서야 나의 어지럼증에 관해 관심을 가져주고 진심어린 조언을 해주는 사람을 책 속에서나마 만난 것 같아 그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 직접 박사님을 만나서 진료를 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만날 수 있는 것만이라도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운 좋게 좋은 의사 선생님을 만났으니' 선생님이 알려주신 방법들을 잘 지키면서 나의 어지럼증도 점점 회복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