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누구니 - 젓가락의 문화유전자 한국인 이야기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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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신문 기사에서 故 이어령 교수님이 암투병 중이라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한참동안 멍했던 기억이 있다. 더 놀라웠던 것은  3개월에서 6개월을 주기로 정기적인 건강검사만 할 뿐 어떠한 치료도 받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암과 싸우는 대신 병을 관찰하며 친구로 지내고 있다'며 '투병(鬪病)'중이 아니라 '친병(親病)'중이라고 본인의 상황을 그렇게 설명하는 교수님의 말씀은 그야말로 경이롭기까지 했다. 죽음의 문턱에 가까워질수록 더 삶의 끈을 붙잡고 싶은 게 사람의 본능일 것 같은데 10여 년 전 사랑하는 딸이 암투병 하는 모습을 보던 중 크리스찬이 되었고, 딸을 가슴에 묻어야 하는 가슴 아픈 일을 겪어서일까? 교수님은 죽음 앞에서조차 의연하고 초연한 모습을 잃지 않으셨다. 

    늘 우리 곁에 있어주실 것만 같던 스승같던 분이 이제는 더 이상 같은 하늘 아래 계시지 않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많이 허전했다. 그런데 교수님의 유작이 나왔다니 기쁜 마음에 냉큼 책을 손에 들었다.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 <너 어디에서 왔니>에 이어 시리즈  두 번째인<너 누구니>. 이 책에서는 한국의 젓가락 문화를 통해 한국인의 정체성을 살펴본다.

 

우리가 모두 젓가락질하는 방법을 잊었더라면,

그것은 단순한 두 개의 막대기에 지나지 않았을 겁니다.

젓가락은 옛날 유물이 아닙니다.

지금도 끼니 때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사용하는 물건입니다.

신기하지 않습니까.

천년 동안 내려온 젓가락과 젓가락질.

그 속에 한국인의 마음과 생활의식이 화석처럼 찍혀 있다면,

그것은 어떤 고전보다도 더 많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줄 것입니다 

              - p. 13~ 14 中 -

   

      저자는 어릴 적 이야기 해달라고 졸라대는 아이들에게 밤새 이야기를 들려주시던 할머니, 그것도 정감어린 '꼬부랑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이야기 열 두 고개의 형식을 빌려 젓가락에 관해 12가지 주제로 이야기를 술술 펼쳐나간다. '한국의 지성'으로 손꼽히는 교수님의 글이라 읽기도 전에 내용이 무겁고 어려우리라 짐작하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웬걸! 이야기는 시종일관 편안한 어조로 술술 읽힌다. 젓가락의 이름이 왜 젓가락이 되었는지, 우리만의 수저 문화, 젓가락이 품고 있는 한국의 가락, 아시아 각 나라의 젓가락 형태 비교, 젓가락 교육의 필요성, 스마트 젓가락, 세계에서 가장 비싼 1억 원 젓가락, 길이 1미터의 천국과 지옥 첫가락 등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보는 젓가락에 관한 저자의 생각들을 시종일관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어서 다음 장이 궁금한 나머지 책을 읽던 도중 멈출 수가 없었다. 

      누구나 '하찮게' 여기는 젓가락이지만, 젓가락 안에 "한국인의 문화적 밈(Meme), 우리 민족의 정체성, 신분증이 들어있다"고 말씀하시는 故 이어령 교수님. 이 시대의 진정한 '이야기꾼'이자 '꼬부랑 할머니'이신 그를 이제 더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하니 또다시 마음 한국석이 아려온다. 그래도 아직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가 2권이나 더 남아있고, 또 다른 시리즈의 책들이 줄줄이 출간될 예정이라는 소식에 쓰린 마음을 달래며 마지막 장을 덮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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