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라는 책을 출간했을 때 나의 아버지는 이 책을 구입하시고는 내게 이 사람에 대해서 잘 아느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전혀 모른다고 했더니 모교에 박물관 관장을 하고 있는 사람을 모른다고 호되게 혼난 기억이 있다. 아버지가 책을 꼭 읽어보라고 너무 좋다고 하셨지만, 나는 혼났던 기억때문인지 그 책을 멀리하고 말았다. 그리고는 13년이 흐른 지금, 그의 또 다른 저서 '한국 미술사 강의'를 읽게 되었다. 손에 착착 감기는 느낌이라고 할까, 왜 그의 책을 이제야 접하고서 나는 뒤늦은 감탄을 하고야 말았다.

 

 


머리말부터 마음에 든 책이다. 이 책은 History of Korean Art가 아니라 Story of Korean Art라고 말하고 있다. '역사'라고 하면 왠지 딱딱한 기분이 드는데 '이야기'라고 하면 왠지 친근하고 편안한 기분이 드는 건 사실이다. 저자 역시도 공부하는 미술사가 아니라 편안히 독서할 수 있는 한국의 미술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왜 교과서는 이처럼 편안하게 만들면 안 되는지 의문점이 생겼다. 이 책이 만약 중고생들의 교과서가 된다면 어느 누구도 우리의 미술사를 얕게 배우지 않았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미술사만 단조롭게 들어있다 보면 지루해지기 쉽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미술사 밖의 이야기를 읽고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신라시대에 암각화에 새겨진 신라 화랑의 이름을 통해 고대의 중요한 자료가 되기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현대에는 '문화재 훼손'에 해당하는 행동을 한 화랑들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또한 미술사와 관련된 여러 가지 학설에 대한 내용도 흥미로웠다. 금관은 왕이 머리에 쓰던 관이라고 생각했지만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관이 착용했다는 설도 있고 장례용품이라는 설도 있다는 것이다. 사실 역사라고 하면 과거의 기록으로 고정되어 있다고 여겼지만 변할 수도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나의 학창시절엔 청동거울이 단지 거울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배웠는데 거울보다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관이 햇빛을 받아 반사시키는 의기로 사용했다는 내용을 알게 되었다. 요즘의 학생들이 어떻게 배우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을 통해서 변화하는 학설이나 새로운 발견내용들을 제대로 알게 되어서 너무 좋은 기회였다. 얼마 전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천마총에 있는 천마도의 그림이 말이냐 기린이냐에 대한 논란을 방영한 적이 있다. 얼핏 보기에는 역동적인 모습이 말과 거의 흡사하지만 고대 문헌과 그림을 통해서 기린일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물론 이 책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시대의 사람이 아니기에 명확한 결론을 내리긴 어렵지만 다양한 학설과 논문을 제시함으로써 논제를 풀어가는 과정이 참 흥미로웠다.
 

 


 

 내용의 전개는 선사시대부터 시작되어 청동기, 철기시대, 삼국시대까지 전개되며 삼국시대의 고분미술에 관한 내용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는 부분이 너무나 많았다. 청동기 시대의 최대 집단 취락지인 부여 송국리 유적은 2010년까지도 발굴조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사진을 통해서 송국리형 토기의 아름다움도 느낄 수 있었다. 학창시절에 배웠던 삼국의 이미지도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고구려는 투박하고 우직한 남성적인 분위기를 나타내고 백제는 우아하고 단아함을 신라는 화려하고 웅장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 나타난 발해의 미술은 참으로 관심이 많이 가는 부분이었다. 발해에 대한 기록과 유물이 거의 없는 상황인데다 중국, 러시아가 그들의 역사 속에 발해사를 지방사로 편입시키려는 의도가 있어서 우리나라는 더욱 발해사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해야 할 것이다.

 

 


 

 

내가 사는 지역의 이야기에서는 눈을 부릅뜨고 볼 수밖에 없었다. 경북 경산시 임당동에서 출토된 오리모양도기는 원삼국시대의 유물이다. 대학교 박물관에 있다고 하니 가족과 함께 나들이를 해봐야겠다. 사실 내가 사는 인근에는 문화유적지가 많은 편이다. 임당동 고분군(삼국시대)의 경우엔 몇 번 가본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나온 유물이 제법 되기때문에 인근 박물관에 소장하고 있다. 또한 고려시대에 분청사기요지였던 남천면에도 찾아간 적이 있는데 그곳에는 팻말만 남아있고 그 흔적은 찾아보기가 어려운 점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검색을 통해서 찾아가보지 못한 많은 곳을 알아놓기도 했다.
 
 

 




이 책을 읽기 몇 달 전 나는 '불교 미술의 해학'이라는 책을 통해서 사찰 관람에 흥미를 갖고 있었다. 소소한 소품이나 사찰 주변 전경에 대한 이야기가 참 맛깔스럽게 적혀있던 책이다. 그래서 가족과 함께 여행을 하면서 사찰을 들리게 되면 그 책을 겨드랑이에 끼고 가서는 펼쳐보고 비교하고 때론 책에서 언급한 사찰을 직접 찾아가보는 시간도 가졌었다. 그런데 이번에 읽은 책을 통해서는 고분미술과 사찰의 가람배치와 석탑, 불상조각에 대한 내용을 많이 배우게 되었다. 앞으로는 두 권의 책과 함께 사찰 관람을 더욱 빈번히 다니게 될 것 같다. 교과서 보다 방대한 지식과 정보를 갖고 있었지만 부담스럽지 않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미술사에 있어 세계적인 문화적 추세도 있지만 우리나라 자체의 변화된 문화들의 이야기들은 자부심을 느끼고 자랑스럽게 여겨졌다. 우리가 이웃나라의 문화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고, 미술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도 갖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 역사, 문화유산에 관심을 갖고 생활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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