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방목 아이들 - '만들어진 공포'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아이 키우기
리노어 스커네이지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아직도 따뜻한 세상이다. 우리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모르는  어른에게 꾸벅 인사도 하고, 내가 어려울 때 도와주기도 한다.
그런데 만약 내 아이가 그렇다면?


위험에 대한 과민반응으로 우리는 요즘 사회를 살아가는 것 같다. 아이를 방목해서 키운다고 하면 무책임한 사람으로 오해받기 쉽다. 내가 사는 곳은 도심과 조금 떨어져 사는 곳이라 덜한데 도심이나 학군이 좋은 곳(요즘엔 유치원도 학군을 따진다면서요)에는 별의별일이 다 있다고 한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유괴나 아동 성폭력, 살인에 관련된 뉴스를 자주 접하다 보니 한시라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오히려 인터넷이나 뉴스를 통한 과다한 정보 때문에 부모들이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게 아닐까 한다. 뉴스는 객관적으로 보도한다고 하지만 대부분은 자극적인 주제가 많다.(그래서 임산부들은 뉴스를 보지 말라는 말도 들은 적이 있다) 유괴나 살인이 끔찍하다고 해서 아이를 가두고 키울 수는 없는 법이다. 가두어 키운다고 해서 방문을 걸어 잠그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학원이나 학교 앞까지 차로 등교, 하교 시키는 일이나 절대로 혼자서는 집밖에도 못나가게 하는 일등은 오히려 동심을 잠재우는 갇힌 육아가 아닐까 싶다.


20년 전만 하더라도 내 어린 시절은 그렇지 않았다. 산으로 들로 뛰어노는 일이 당연하다고 여겼던 시절이다. 수줍음이 많고 겁도 많았던 나였지만 친구들끼리 놀이터나 뒷동산에 올라가 놀고, 거머리가 있는 논에 들어가 올챙이도 잡고, 온 들녘을 뛰어다니며 고추잠자리를 잡으러 다닌 경험이 있다. 현재는 CCTV를 설치해 놓은 놀이터라 하더라도 대낮엔 아이들이 없으며, 있다하더라도 부모의 수와 아이의 수는 거의 비례한다. 심지어 모래가 있는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한 명도 없고, 이웃아파트에 모래 없이 폭신한 바닥재로 되어있는 곳에 부모들이 원정 가서 놀기도 한다. 길고양이가 대소변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병균에 노출된 모래라는 이유 때문이다. 지금의 아이들은 참으로 불쌍하단 생각이 든다. 우리 때는 모래를 먹고 자라도 배탈 한 번 하면 끝이었는데 요즘 아이들은 아프면 별별 검사를 다하고 갖은 주사를 다 맞고 병원에 며칠씩 입원해야 되니 아이들은 육체적으로 더 힘들지 않을까 싶다.


부모의 불안을 조금 누그러뜨릴 수는 없을까? 이 책에서는 '자유방목 연습'이라고 하여 단계적으로 아이의 손을 놓는(?) 작업을 안내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그들만의 자유를 주는 것을 허락해보자는 것이다. 얼마 전에 아파트현관문을 열다가 옆집아이를 만난 적이 있다. 그 아이의 한 손에는 엄마가 심부름시킨 물건인 감자가 한 봉지 들려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아이스크림이 들려있었다. 그 아이는 심부름을 다녀오는 동안 엄마 몰래 아이스크림을 사 먹은 것이다. 들키지 않으려고 집에 들어가기 전 증거물들을 없애고 있는 중이었다. 그게 그렇게 나쁜 일일까? 그 장면 하나만으로 부모를 속이는 거짓말쟁이 자녀라고 말할 수는 없다. 나는 모른 척 하며 문을 닫고는 피식하고 웃어버렸다. 몰래 먹는 아이스크림이 맛있긴 하지하면서 말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면서 처음으로 육아에 대한 정보를 접해 보았다. 인터넷 검색어에 한 단어만 치면 정보는 넘쳐났다. 말과 행동 하나하나를 지적해 가며 친절히(?) 설명하는 두껍고 다양한 책들. 부모는 꼭두각시가 되어서 책에 적힌 데로 실천해야지만 내 아이를 천재를 만들 수 있다는 강박관념을 갖게 만든다. 엄마를 믿지 못하고 온갖 보조용품들이(수유쿠션, 바운서, 슬링, 범보의자, 점프루 등) 난무한다. 물론 나도 보조용품을 쓰고 있지만 그런 용품들이 과연 아이에 좋은 것인지 단지 엄마가 편하고자 선택하는 것은 아닌지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교육적'이라는 이름아래 주먹구구식의 자료들도 넘쳐난다. 물론 좋은 정보도 많지만 구별할 수 있는 내공이 부족하니 선별할 수 있는 현안을 키우는 게 우선인 것 같다. 애를 낳기도 전에 육아에 진저리를 느낀 나는 결국 눈과 귀를 막고 내가 아는 몇 가지의 범위 내에서만 아이를 키우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찰나에 이 책은 나의 육아방식에 힘을 실어주는 좋은 계기가 된 것 같다. 조금은 걱정을 덜고 아이를 자유롭게 키워야겠다는 의지가 굳어졌으니.


부모들은 아이의 성적표와 부모의 성적표, 육아와 부모의 자존감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내 아이가 1등이나 100점을 맞으면 부모의 성적표도 그렇다고 여기고, 아기가 멋진 유모차나 브랜드 옷을 입고 있으면 부모가 돋보인다는 식이다. 좋은 등수나 성적을 받았을 때는 과정에 대한 칭찬, 노력에 대한 칭찬을 해주어야 한다고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등수나 점수에 집착하는 아이로 길러지며, 오히려 도전을 겁내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아이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하고 실패 또한 좋은 경험이란 것을 알려줘야 한다. 나의 육아방식 또한 그렇다. 완벽한 것은 없다. 부모가 완벽한 육아에 대한 강박증을 버리는 것이 옳은 일이라 여긴다.


나의 육아방식과 비슷한 의견을 가져서 반가운 책이긴 했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아홉 살짜리 아이를 혼자 지하철에 태워 보냈다는 이유로 언론에서 비난을 받고 혹독한 유명세를 치러야 했던 저자가 쓴 책이라 그런지 사회에 대한 반감이나 격앙된 감정의 흔적이 여기저기 보인다. 그래서인지 상대입장에 대한 표현자체가 비꼬거나 비아냥거리는 식으로 말하고 있어서 상당히 흥분된 상태로 책을 읽게 만든다. 늘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면서 대비하는 부모들 때문에 각박한 세상을 사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이들에게 있는 능력을 믿어보자고 말하고 싶다. 앞으로 살아갈 방법을 알려줘야지 우리가 보호하고 평생 끼고 살수는 없을 테니까.


물질적 부가 아이들이 직접 돌아다니며 느끼는 재미를 이길 수 없다는 것.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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