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하우스는 바이마르 홈볼트스트라세 36번지에 있다고 한다. 니체 아카이브가 형성된 채, 고스란히 어제를 오늘인 양 그대로 잔존한다. 이 건물은 빌라 실버블릭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니체에게서 멀어져 가는 게 아닌가 싶어졌다. 조금씩 니체에게서 멀어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니체를 위해서 마련된 건물이 스위스인에게서 온 것은 마냥 순수한 것만은 아니다. 니체가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진 것은 1889년에서 1890년이다. 그리고 이후였던 1897년부터 니체는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머물렀다. 이 집의 운명은 그 후에 여러 풍파를 겪게 된다. 니체를 위해 꾸며진 이 하우스가 히틀러에서 소련에 의해서 여러 차례 변형을 겪는다.  


오늘날 우리는 여러 갈래로 니체와 연결 지점을 확보하고 싶어한다. 니체는 문화적 갱신을 말하기도 하지만, 보다 중요하게는 가치의 전환이 핵심이다. 아직도 의문에 쌓인 부분이 내게는 명확하다. 니체는 자유로웠는가. 니체가 말하는 자유는 어떻게 가능한가. 이런 크고작은 니체에 대한 문제화가 그를 살아있게 한다. 무엇보다 니체는 자신의 고독과 방황을 자유로 인식했는가에 관심이 간다. 니체의 저작 중에 제목으로 그 파장을 일으키는 것이 있다. "너무나 인간적인'이라는 이 말은 인간적인 것에 나를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니체는 우리 인식하는 자들에게 자기자신은 낯선 자라고 했다. 이 점에 니체를 니체답게 보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니체는 아마도 여전히 그 아카이브에 있기를 거절할 지도 모른다.


니체는 기독교가 만들어낸 가상을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니체는 삶을 견디기 위해 끊임없이 예술적 가상을 인정하기도 한다. 여전히 니체는 빌라도가 박해하는 예수를 입체적으로 전개한다. 니체가 생각하는 박해란 역사적으로도 확실하다. 니체는 기독교 도덕과 대중에 의해 미치광이이자 죄인으로 낙인찍힌 그리스도를 자신의 상황에 대입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 모든 어려움에도 말한다.

'너희 눈에는 미치광이로 보이겠지만, 그래, 마음껏 조렁해보렴. 하지만 진짜 진리는 여기에 있다.' 가끔 그런 요망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니체는 디오니소스를 말하지만 언제나 지독한 고통을 겪고 박해를 받는 희생자의 역할을 기꺼이 감수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자기파괴가 아니고 자기실현일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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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26-09-15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청하 판으로 니체 전집을 가지고 있는데, 책세상 판으로 다시 전집을 구매할까 생각했는데 누가 책세상 판보다는차라리 오래된 청하 판이 더 낫다고 하더군요. 니체는 저의 인생 책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