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님'도 아니고 '개씨'도 아닌 '미스터 개씨'란다. 

나는 보기 싫고 하찮게 여겨지는 남자에게 '미스터 *'라고 부른다.

그런데 '미스터 개씨'라고 하는거 보니, 주인공 나다는 그야말로 남자라는 족속에 대해 보기싫고 하찮게 여겨질 때 이 소설을 썼다는걸 알 수 있었다.  

 

얼마전, 인터넷 뉴스로 오피스 스파우즈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내 인생의 반려자는 정작 하루 24시간 중에 눈 맞추고 얘기하며 인생을 논하기는 2~3시간에 불과하고 법적으로는 내 짝이지만 집이라는 공간 안에서 함께 머무르는 시간도 잠자는 시간이 대부분인 그야말로 법적 짝에 불과하다.

하지만, 남자나 여자나 회사에 나가 몸바쳐 마음바쳐 일하는 시간 동안 내 옆에서 나의 어려움을 가장 잘 이해해주는 사람은 직장동료일 수 밖에 없고, 항상 회사는 차려입고 화장도 하고 다녀야 하기때문에 거의 완벽에 가까운 모습으로 만나 서로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로 시작한 하루가 커피 향과 함께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런 완벽한 조건 아래서 마음까지 이해해주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말이다.

 

사회의 변화무쌍한 기운 아래, 별의별 단어가 생성이 되는구나 생각하며 웃어넘겼는데, 이 소설에서 아주 정확하고 상세하게 다루고 있어서 눈이 번쩍 띄였다.

 

플라토닉 사랑을 주장하며 오피스 스파우즈의 존재를 당연시하는, 게다가 결혼도 못 하고 오피스 스파우즈도 없는 사람은 능력없는 사람인것처럼 분위기가 정말 기분이 상해서 못 견디던 나다는 집의 반려자 서비와 오피스 허즈번드 민준 사이에서 행복해하고, 그런 나다를 질투하는 수연.

 

결국 자신의 덫에 자신이 걸린 꼴이 되지만, 주인공 나다는 남자라는 족속을 여자의 입장에서 무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해석해낸 가히 여성학개론에 맞먹는 훌륭한 이론을 펼친 멋진 여성이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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