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를 품은 천리안 - 정경부인 장님 고성이씨
성지혜 지음 / 문이당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여년전 해외 여행 자유화가 되면서 많은 20대 젊은이들이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그당시 자유 배낭여행으로 미국보다 유럽이 선호 지역이었던 것은 영어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영어 소통이 자유로우면서, 유럽은 역사적인 장소가 세계대전에도 불구하고 많이 남아있어서 명소라 할 것이 많았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그당시 팀을 꾸려 거의 한달간 유럽 배낭여행을 했는데, 체코에서 집집마다 대문에 조각된 문양이 특이했다. 책자를 찾아보며 왜 집집마다 다른 문양이 조각되어있을까 했는데, 그것이 바로 가문을 나타내는 문패 역할이었다. 그 문양이 편지를 보낼때 밀랍으로 봉인하고 찍는 문양이기도 하다는 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문양이 아직 대문에 남아있는 가문들이 모두 명문가는 아니었겠지만, 그 오랜 세월을 사용한 집이 그대로 있다는 것 자체가 내게 문화적 충격이었다. 고등학교 역사 선생님께서 '전쟁을 겪으면서 우리나라의 많은 건물과 문화재급 유물들이 사라졌다'라고 하신 말씀이 실감나는 때였다. 그 전까지는 아직 우리나라 보물과 국보가 이렇게 넘쳐나는데 전쟁에서 없어졌다는게 크게 와닿지 않았던것 같다.

 

 

우리 나라에도 명문가가 무척 많다. 전주 이씨, 광산 김씨, 안동 김씨, 안동 권씨, 밀양 박씨, 파평 윤씨 등등 아마도 명문가를 대라고 하면 끊임없이 나올듯 하다. 보통 성 앞 본관이 지역이라고 알고 있는데, 안동이 많은걸 보면 안동 지역이 명문가가 많았다고 짐작할 수 있다. 지금도 안동에 남아있는 한옥마을과 양동마을까지 무척 많은 양반들이 살던 기와집들이 그 이름을 떨치며 남아있는 것은 그만큼 정성들여 집을 짓고, 관리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사람들이 안동을 유학의 산 고장이라 부른 것도, 대저택인 임청각을 비롯한 군자정, 귀래정, 반구정, 어은정이 있기에 더 빛났고, 그곳을 드나들던 선비들과 유학자들이 학문을 토론하고 연구해 영남학파의 산실이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정경부인 장님 고성이씨 집안은 고려 충정왕과 공민왕 때 시중을 지낸 행촌 이암 선생, 조선 세종대왕 때 좌의정을 지낸 용헌공 이원 선생, 구한 말 석주 이상룡 독립운동가 등을 배출한 명문가이다. 그리고 위에 설명한 안동의 여러 건축물을 삼대에 걸쳐 지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소설은 고성이씨 정경부인 이경의 탄생부터 병으로 인한 실명, 서해 선생과의 혼인, 서해 선생의 요절, 외아들 서성, 손주 서경우까지의 벼슬길에 오른 과정과 시각장애를 가진 채로 가문을 훌륭하게 이끈 고성이씨 정경부인의 이야기가 에피소드로 많이 엮여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훌륭한 어머니이자 아내였던 신사임당 뿐만아니라 조선시대에는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여성들이 사회 생활이 아닌 훌륭한 가정 경영으로 현명하고 훌륭한 위인들을 길러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