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카나의 저주받은 둘째 딸들
로리 넬슨 스필먼 지음, 신승미 옮김 / 나무옆의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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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외할머니께서는 지독하게 보수적인 분이셨다. 6살적으로 기억되는 어느 겨울날 이른 아침, 우리 집에 놀러오신 외할머니께서 눈이 펑펑 내려서 마당에 나가 놀려고 하는 내게 "여자아이가 아침 댓바람부터 눈 온 마당에 나가 노는건 다른 집에 재수없다는 말 듣는다."란 말로 주저앉게 하셨다. 그 어린 내 마음에도 속상해서 '할머니도 여자면서..'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소심한 까닭에 소리내어 반항은 못 하고 말이다. 그리고, 밥 그릇에 밥 한톨이라도 남아있으면 밥상에서 일어나지 못 하도록 하셨다. 난 고작 6살 여자아이였는데 말이다. 반면에 우리 오빠는 집 앞 사거리 한가운데에 서서 교통경찰 흉내를 낸 것을 남자 답다며 칭찬하시던 모습이 기억난다. 오빠는 언니와 나 사이에 둘째여서 별로 챙김을 못 받아 안타깝게 여기는 외할머니, 친할머니의 의견은 별로 사이좋지 않던 사돈간의 유일한 합의점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 책의 내용처럼 가문에 대대로 내려오는 저주과는 좀 거리가 있어보이지만, 딸이어서 아들과는 비교되게 엄격한 잣대 안에서 생활해야 했던 것은 지금도 내 마음 한켠에 나를 소심하게 만드는 일이다.

아주 오래 전 폰타나 가문의 자매 중 큰 딸은 자기보다 아름다운 둘째 딸을 시샘하고, 자신의 약혼자가 동생에게 추근대는 것을 오해하여 돌을 던져 동생의 한쪽 눈이 내려앉게 된다. 그때 이후 가문의 둘째 딸은 모두 평생동안 변치 않는 사랑을 찾을 수 없다는 저주를 갖게 된다. 폰타나 가문의 어느 어리 석은 첫째 딸 때문에 가문이 대대로 저주를 갖게 되다니, 참으로 어리석고 딱한 노릇이다.

그 이후 몇 대가 흘러 또다른 둘째 딸, 에밀리아를 보호(?)하기 위해 폰타나 가족들은 그녀녀에게 유달리 무척 엄격하다. 언니 다리아는 그녀의 허드렛일을 모두 동생인 에밀리아가 해줄것이라 여기고, 할머니 로사는 에밀리아가 하는 모든 일에 반기를 든다. 어쩌면 그들의 그런 모습이 에밀리아를 한 번 더 생각하게 하는 능력을 갖게 하지 않았을까 싶다. 가족들은 그 엄격함이 저주받은 둘째 딸로 태어난 에밀리아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에밀리아는 7살 학교에서 가계도를 그리는 수업에서 그녀가 그린 가계도를 본 선생님이 너희 집안 둘째딸들은 모두 미혼이구나 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면서 가문의 저주를 눈치채게 된다. 에밀리아의 할머니 로사와 언니 다리아는 그녀에게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구속하고 잡일을 시킨다. 제빵사인 그녀에게 어느 날 포피이모에게서 함께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나자는 편지가 도착하고 에밀리아의 인생의 변환점이 되는 여행이 시작된다.

여든살인 이모할머니 포피와 저주받은 인생이라고 낙인찍힌 에밀리아, 또다른 둘째딸 루시아나의 시선으로 본 이야기는 우리네 인생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여행을 하면서 겪는 그녀들의 노력은 진짜 저주는 미신을 믿고 자신을 믿지 않는 불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에밀리아의 남사친 매트 이야기까지 소소한 로맨스 이야기도 이 책의 재미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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