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 (출간 15주년 기념 백일홍 에디션) - 박완서 산문집
박완서 지음 / 열림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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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님은 '남들이 말하듯 전원생활은 조금도 평화롭지 않지만 그녀가 선택한 삶이기에 견뎌낸다'고 말한다. 그녀의 삶은 6.25전쟁을 겪은 세대여서가 아니어도 참으로 처절한데 그 삶을 견뎌내고 노후에 전원생활을 선택한 것이 평화로운 삶을 위해서라고 한다. 독자로서 내가 글로 만난 박완서님은 처절한 삶 안에서 예술을 꿈꾸고 자기나름의 마음을 글로 적어내려가는 따뜻하고 평화로운 마음을 가지고 계신다. 많고 많은 농기구 중에 그 어떤 나라에도 없다는 호미를 가장 좋아하는 농기구로 소개한 그녀의 글에서 인터넷 기사로 본 외국에서 핫한 한국물품 중에 호미가 꼽혔던 것이 기억난다. 하늘로 떠나시기 전 이 뉴스를 읽으셨을까?

얼마 전 열매를 보겠다고 긴 화분에 3개 심어둔 고추 모종의 진딧물을 떼어내느라 손가락에 스카치테이프를 붙이고 노안때문에 안경도 벗어둔채로 한바탕 난리를 쳤다. 약도 뿌리고, 정성을 들여도 진딧물은 계속 생긴다. 자연친화적으로 산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마당의 말벌집을 마당의 수돗물 호수로 공격해 떼어내고서는 공포심이 적의로 변해, 밤에 악몽을 꾸면서 언제 이렇게 적의를 느꼈는지를 반성할 수 있는 사람은 작가님 뿐일듯 하다. 이 봄, 아파트 베란다에 위치한 에어컨 실외기의 비둘기 집을 짓는 모습에 식겁해서 긴 작대기로 나뭇가지 하나하나를 밀어내었다. 비가 안 와서인지 냄새를 맡고, 다시금 나뭇가지를 하나씩 물어다 놓는 비둘기들 때문에 한동안 힘들었다. 물청소가 안되니 물걸레로 닦아내고, 그 사이사이 페트병을 끼워놓는 나름의 묘수를 내었다. 하지만, 나는 전혀 죄책감따위는 없었는데 작가님은 그 위험하다는 말벌집을 처마 밑에서 없애고는 몇날며칠을 괴로워하셨다고한다. 내게는 자연과 함께 살아갈 마음 가짐이 절실함을 느낀다.

작가님의 글을 읽으면서 또 하나 얻는 즐거움은 유명하신 예술가 박수근선생님, 이이화선생님, 이문구선생님 등과의 얘기이다. 작가님의 인연으로 독자인 내가 괜히 아는 분들 이야기를 듣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핑크색 표지에 웃는 작가님의 모습이 정겹다. '호미'라는 표지의 제목과 꽃들이 책 초반에 만나는 작가님 집 마당의 꽃인듯 해서 가슴이 따뜻해진다.

우리 곁을 떠나셨지만, 여전히 작품으로 남아 가슴을 따뜻하게 보듬어주는듯 하여 읽는 내내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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