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 입은 남자
이상훈 지음 / 박하 / 201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 어떤 추리소설이나 역사소설보다 확실히 지적인 만족감을 주는 재미로 충만한 소설이다. 현실과 과거를 번갈아가면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으며, 이런 설정이 독자들로 하여금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만들어주었다. 하나의 퍼즐조각을 맞춰나가듯 소설은 빠르게 전개된다. 방송국 PD인 진석은 우연히 어린이 과학관에 전시된 비차를 보면서 장영실이 무악산에서 실험했던 비차의 모형과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설계한 그림이 매우 흡사하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가 다큐멘터리로 기획하고 있는 <한복 입은 남자>의 정보를 얻기 위해 신 작가와 들렀는데 그곳에서 엘레나라는 여성을 알게 되는데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진석이 기획하는 것과 엘레나가 알고 싶어하는 것 사이의 공통점이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한국으로 유학 온 엘레나는 안토니오 코레아의 후손이라며 그에게 조상의 유품으로 전해내려오는 비망록을 몰래 맡긴다. 그 비망록에는 3개 국어의 글자와 그림이 복잡하게 담겨있는데 고고학에 일가견이 있는 자신의 친구이자 지하에서 헌책방을 운영하는 강배를 찾아가 해석을 의뢰하는데 이 시점부터 과거와 현실을 오가면서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신분제와 사대주의가 뿌리깊게 내려앉은 조선시대에서 장영실이라는 인물이 태어났다는 것은 어떻게 해석을 내려야할까? 비록 노비의 신분으로 태어났지만 우수한 과학기술을 갖고 있던 그는 갖은 핍밥을 당했지만 새로 부임한 사또가 그를 알아보고 농민들의 가뭄을 해갈하기 위한 방법을 개발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영실을 지원한다. 밤새면서 일에 매달리던 그는 무자위라는 장치를 고안하게 되는데 물의 흐르는 속성과 높낮이를 고려하였고 유속을 활용하는 방법 외에도 장정 둘이 수동으로 돌릴 수 있도록 하는 등 그 당시에 이런 기법들을 어떻게 발명할 수 있는지 읽으면서 매우 신기했다. 순전히 눈으로 보고 들은 것들을 머릿속으로 생각해내서 만들었을텐데 천재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다행히 영실에게 하늘의 길이 열렸는지 그의 기술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기회가 열렸는데 사또 이자청의 추천으로 만복과 함께 대궐 안 활자를 만드는 주자소에 들어갔을 수 있었고, 몇 년 뒤 상의원에 배속되게 된다. 그때가 태종때 만들어진 도천법이 있었기에 가능했었다. 비록 신분이 노비라 미천할지라도 기술과 재능이 있으면 대궐로 불러서 일할 수 있는 한시적인 제도였는데 세종에 이르러서도 그대로 시행된다. 조선시대의 신분제를 보면서 인도의 카스트 제도와 별다를 것이 없어 보였고 명나라를 큰 나라라 칭하며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양반들의 태도를 보며 나라의 자주적인 기틀을 다지고자 했던 세종대왕은 얼마나 마음이 괴로웠을지 짐작된다. 


시대적으로 잘 맞아떨어진 것인지 일찍이 기술의 중요성을 알았던 세종대왕이 있었기에 낮은 신분이라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었던 장영실도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것은 만들 수 있는 환경적인 토대가 마련될 수 있었고 그 안에서 자격루, 혼천의, 측우기, 신기전, 간의, 풍기대, 수표, 앙부일구, 휴대용 앙부일구, 관천대, 일성정시의, 위부인자를 발명해낸다. 말하자면 세계 최초라고 할 수 있는 건 모두 그의 머리에서 나온 셈이다. 금속활자부터 해시계, 천문기술, 신무기, 농업기구 등 그의 손을 거치지 않고 만들어진 발명품이 없을 정도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훌륭한 과학자가 계속 남아서 후대를 양성하지 못하고 석연치 않은 가마사건 이후에 사라져 버렸다는 점이다. 병조판서였던 이암을 비롯한 친명파는 노비의 신분임에도 정5품 상의원 자리에 오른 장영실을 못 마땅하게 여겼다. 이들이 사랑채에서 나눈 대화가 정확히 그 당시 양반들이 어떤 생각을 품고 있었는지를 여실이 드러내고 있다. 이를 개혁하지 못한 이유때문에 아무리 훌륭한 업적을 낸 사람이라 하더라도 신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대주의의 폐해로 인해 명나라를 넘어선 무언가를 개발하거나 하는 노력을 게을리하거나 멀리하게 된 원인이지 않을까 싶다. 단적으로 문신을 우대하고 과학자같은 중인을 천대한 것을 보면 안타까울 뿐이다. 서양보다 앞선 기술력을 보였음에도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그런 시대에 장영실이 나올 수 있었던 건 우리가 감사해야 할 부분이지 않을까 싶다. 그 장영실이 명나라 유학길에 환관 출신으로 세계 해양을 누빈 정화 대장을 만난 것은 운명이었을 것이다. 일찍이 영실의 천재성을 알아본 장화는 계속 그와 교류하면서 영실이 유럽으로 건너올 수 있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이 소설에서 세종대왕의 둘째 딸인 정의공주와 동래현에서부터 알고 지내던 오누이같은 사이인 미령이라는 존재도 매우 흥미로웠다. 정의공주와의 애틋한 감정은 신분제를 뛰어넘는 일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조선 땅을 떠나는 영실에게 정의공주는 비단보따리를 선물하는데 그 옷이 바로 한복 입은 남자에 등장하는 그 옷인 것 같다. 정화와 함께 피렌체에 온 영실은 일찍이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아직 교황이 지배하는 유럽은 지동설은 곧 사탄의 저주라며 이를 주장하는 사람은 모두 이단으로 매도되었던 시대였다. 정화의 함대가 이탈리아 로마에 당도한 것은 세기의 천재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만나기 위한 운명이 아니었을까? 이 부분이 소설에서 극적이라고 생각되는데 조선시대에서 르네상스가 도래하기 전 유럽에 도착한 동양인의 시선은 과연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다 빈치의 스승으로 장영실은 천문과 기계설계 등 그가 가진 기술을 모두 전수한다. 다 빈치가 화가나 석조 뿐만 아니라 천문학에 천재성을 보인 것도 장영실의 가르침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작가적인 상상력이 들어있음에도 불구하고 꽤 합리적인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세계사적으로보면 다행이라면 다행인 일이겠지만 한국 땅에서 장영실의 기술력이 뿌리내리지 못함은 실로 안타까울 뿐이다. 다 빈치의 손으로 만들어낸 기술 뒤에는 장영실이 10년간 전수한 가르침 덕분이었고, 이는 유럽의 르네상스가 활짝 꽃피는 출발점이 되었다. 동양과 서양의 두 천재가 하나로 만나니 이는 우리 피렌체의 복이라고 말한 로렌초 데 메디치의 말처럼 일찍이 그를 알아본 사람과 후원이 있어야 과학이 발전할 수 있는 큰 원동력이지 않나 싶다.


537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은 뒤에 참고문헌이 실린 것처럼 저자가 10년간 꼼꼼하게 조사하고 자료를 모은 덕분에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드는 소설로 재탄생되었다. 이를 계기로 장영실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졌으면 좋겠다. 우린 아직 그가 언제 태어나서 죽었는지 조차 모른다. 왕실이나 양반 외에는 기록으로 남기지 않기 때문에 후대에선 이를 알 도리가 없다. 그의 우수한 과학기술은 지금 보아도 경이로울 뿐이다. 이제라도 우리 땅에서 태어난 우수한 과학자와 발명품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알아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흥미로운 역사소설을 속도감있게 읽은 책이라 누구에게든 자신있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반 오소킨의 인생 여행
페테르 우스펜스키 지음, 공경희 옮김 / 연금술사 / 201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참 특이한 책이다. 어릴 적엔 <백 투 더 퓨처>같은 영화나 SF 공상과학소설을 읽으면서 과거나 미래로 간다는 상상만으로도 즐거웠던 때가 있었다. 타임머신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과거로 돌아가서 내 인생을 바꿔보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들은 모두 상상력의 산물일 뿐 현실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가 없다. 한 번 결정되고나면 돌이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걸로 현재의 순간들이 만나 미래에 펼쳐질 운명과 우연들이 겹쳐 인생이 된다. <이반 오소킨의 인생 여행>에 등장하는 이반 오소킨은 자신이 사랑하는 지나이다가 민스키 대령과 결혼한다는 소식에 극심한 절망감을 느낀다. 어디서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되돌릴 수만 있다면 바꾸고 싶다. 오소킨은 얼마전부터 알고 있던 마법사를 찾아가는데 그 마법사는 계속 난 이미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 과거로 돌아가면 지나이다와의 사랑을 뺏기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서 12년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마법사에게 요청했는데 정말 12년전 기숙사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게 된다. 자신은 마침 꿈인 것 같다고 속으로 생각하지만 14살로 되돌아간 오소킨은 과거에 자신이 행동한대로 움직이는 현실에서 살아가게 된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생각은 그대로라는 것이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정황을 기억하고 있으면 독백으로 어떤 사건이 벌어지면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속으로 생각을 말한다.


몸은 14살 소년이지만 생각은 26살 오소킨이다. 이 점이 가장 흥미로운 부분으로 부제가 잘 설명해주고 있다. 지금의 기억을 모두 가진 채 인생을 산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지게 될까? 그래서 제목도 이반 오소킨의 인생 여행이라 이름 지었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시간은 흐르는대로 갈 뿐인데 인생을 다시 살게 되면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훤히 보이기 때문에 자신을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 같다. 근데 오소킨은 왜 현실을 극복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과거로 돌아가면 엉망이 된 인생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을거라고 확신하고 있을까? 그건 주인공의 정신이 나약해서인지도 모른다. 설령 사랑하는 애인이 다른 남자와 결혼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지라도 슬픔은 슬픔으로 걷어내고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가야 했을텐데 주인공은 그러지 못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항상 완벽하려고 해도 잦은 실수와 실패를 반복한다. 인생은 완벽할 수도 없고 완벽하게 되지도 않는다. 우리의 뜻대로 세상이 움직여주지 않듯 한 번 살아가는 삶이 각본에 짜여진대로 일어나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인생은 한 번 살아볼만하다고 한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고 있더라면은 류시화의 유명한 시집 제목이다. 이반 오소킨처럼 우리도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고 있었더라면 인생은 달라졌을 것이다. 이 책은 우리의 인생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책으로 독특한 주제가 매력적인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설로 떠나는 영성순례 - 이어령의 첫 번째 영성문학 강의
이어령 지음 / 포이에마 / 201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어령 박사의 저서들은 참 맛깔나게 쓰면서도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문체가 간결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책에서 언급한 작품들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는 명작들이다.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말테의 수기, 탕자, 돌아오다, 레미제라블, 파이 이야기까지 문학작품들 속에서 기독교적인 영성을 들을 수 있는 책이다.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작품의 명성이 자자했지만 완독해본 적이 없다. 이 책에 나온 줄거리만 알아도 충분히 전체적인 느낌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고전들은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서 그 책을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느낌이 강하다게 드는가보다. 반드시 자신이 종교를 갖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이 책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작품을 깊이 있게 읽는데 도움을 주며, 일단 읽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다른 편견을 접어두고 문학 속 등장인물과 줄거리에 대한 해석은 미쳐 생각해보지 않았거나 읽으면서 놓친 부분을 편하게 읽을 수 있다. 


'까라마조프 형제들'의 육필원고나 삽화, 사진 등은 적절하게 요소마다 삽입되었으며, 작가에 대한 설명도 반드시 챙겨읽자. 엄청난 책 두께 때문에 포기한 책도 있으며, 호흡이 길어서 전체적으로 작품을 이해하지 못한 채 서둘러 완독한 책도 있다. 이어령 교수가 첫번째 영성문학 강의에서 선별한 작품들은 완독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더욱 선입관없이 읽을 수 있었다. 이어령 교수가 짚어주는 얘기들은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이 있다. 저자는 소설 속에 영성과 신앙에 대한 부분들을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어한 것 같다. 레미제라블은 신부가 등장하거니와 용서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할 얘기가 많을 것 같은데 일반 독자가 읽는 것과 이어령 박사가 보는 시선은 좀 다른 것이라는 짐작이 든다. 워낙에 유명한 작품들이고 이미 영화화되었기 때문에 대략적인 부분을 알고 있을 독자들은 이어령 박사의 깊고도 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해석을 내려놓는 부분에 집중하다보면 작품의 참맛을 알게 되고, 일부러라도 찾아서 읽고 싶게 만드는 것 같다.


소설에서 하나님과 영성을 발견하는 것이 목적이라지만 여러모로 다른 작품들을 알 수 있어서 여러 번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 아직 겉핥기 식으로 책을 읽어온 것은 아닌가 반성도 되면서 다시 작품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책이 강의형식으로 쓰여져서 더 친절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작품 속에 숨겨진 영성의 의미를 알게 되는 계기로 삼아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윌 그레이슨, 윌 그레이슨
존 그린.데이비드 리바이선 지음, 김미나 옮김 / 자음과모음 / 2014년 9월
평점 :
품절




전형적인 성장소설의 형식을 띄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소재는 약간 게이스러운 느낌이 있다. 십대때는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생각도 하게 되지만 책에 나오는 경험은 해보지 못한 것 같다. 누가봐도 평범했고 뭔가 새로운 걸 시도해보지 않은 채 어른이 되기만을 기다렸던 것 같다. 솔직히 이 책을 두 명의 작가가 썼다는 걸 알려주기 전에는 눈치채지 못했다. 책을 읽을 때도 그걸 의식할 겨를도 없었고 딱히 구분이 가지도 않았다. 존 그린과 데이비드 리바이선이라는 작가가 윌 그레이슨이라는 이름을 가진 두 주인공을 각각 썼다는 독특한 방식의 소설이다. 처음에 등장하는 윌 그레이슨에겐 타이니 쿠퍼라는 친구가 있다. 키가 무려 2미터가 넘고 146킬로그램에 달하는 몸무게가 위압적인 그는 학교에서의 모습과는 달리 수영장이 딸린 거대한 저택에 사는 부잣집 아들이다. 특이하게도 게임이라면 질색을 하는데 학교에서는 윌 그레이슨과 친구 사이로 잘 지낸다.


남자친구들 간의 우정을 넘어서 게이라고 불릴 정도로 애정 농도가 짙은 부분이 나와서 질색이긴 하지만 다행히 챕터를 번갈아가면서 다른 윌 그레이슨에 대한 이야기가 진행되니 그럭저럭 참고 넘길 수 있다. 또 다른 윌 그레이슨은 어미니와 같이 사는데 가정형편이 어렵다. 그에겐 마우라라는 여자친구가 있는데 요즘 세대의 아이들은 적극적인지 서슴없이 같이 자고 싶다는 말을 먼저 말한다. 그런 마우라에게 마음이 떠나버린 윌 그레이슨은 넷상에서 연락을 주고받는 아이작에게 오히려 호감을 가지고 있는데 그 약속장소에서 아이작은 사실 마우라라는 사실을 듣게 되는데 그 곳에서 우연히 자신과 같은 이름의 윌 그레이슨을 만난다는 설정이다. 두 작가가 소설을 쓸 때 의도한 부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은근히 이런 요소때문에 다음 상황이 궁금해지긴 하다. 서로의 성격이나 연예관이 전혀 다른데다 성장 배경도 다른 이들이 겪는 에피소드들은 매우 현실적인 부분들이 많아서 피식거리게 된다.


두 작가에 대한 정보나 그들이 쓴 작품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나름 위트있고 재치넘치는 대사들이 넘쳐난다. 요즘 10대들이 주로 쓰는 욕설도 어색하지 않게 번역되어서 읽는 묘미가 느껴졌다. 그간 성장소설도 많았는데 우리들보다는 자유분방하게 생각도 많이 하고 성에 대해서 매우 개방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무엇보다 그냥 평범한 성장소설이 아니라는 점과 게이라는 다소 호불호가 갈리는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하이틴 영화를 보듯 유쾌하게 읽은만한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데미안 열린책들 세계문학 227
헤르만 헤세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워낙 유명한 헤르만 헤세의 소설이며 <데미안>은 이미 국내에서도 여러 출판사에서 출간된 책이다. 번역가에 따라서 책에 의미하는 바가 조금 다르게 들리기도 하는데 이번에 읽은 <데미안>은 열린책들 세계문학 227번의 책이다. <어린 왕자>는 읽어 봤어도 그의 다른 작품인 <데미안>은 제대로 완독해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데미안>이라는 책 제목은 많이도 들어왔던 것 같다. 이 책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읽히는 고전 중의 고전으로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싱클레어라는 소년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어느 날 프란츠 크로머 일행과 어울리던 중 그들에게 내팽겨쳐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과수원에서 사과를 훔쳤다는 이야기를 그럴 듯하게 꾸며서 말을 했고 마치 진실인냥 굴었다. 이제 그들 무리에 끼일 수 있다는 생각에 안도하고 있었지만 프란츠 크로머는 그 이야기를 빌미로 2마르크를 주면 아버지에게 알리지도 않고 경찰에 신고하지 않을거라고 한다. 아마 어릴 때라면 그런 협박이 유효하게 작용해서 잔뜩 겁과 두려움에 질려버릴거다. 싱클레어는 저금통을 깨서 갖다주지만 2마르크에는 턱없이 부족한 돈이다. 계속 크로머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급기야 아파서 앓아 눕게 된다. 그러다 그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준 친구가 전학오게 되는데 바로 막스 데미안이라는 이름을 가진 또래보다 어른스러운 친구였다. 


데미안을 독특한 세계관으로 세상을 해석하곤 하는데 싱클레어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충격을 받게 된다. 어찌보면 싱클레어의 지금까지 형성한 세계관은 일반적으로 옳다고 느끼는 그런 세계관이었다면 데미안에게 받은 영향은 사회가 금지시 여기는 위험한 도발을 담고 있다. 성경 속 카인에 대한 해석만 놓고보면 매우 파격적이다. 두 세계관 사이에서 싱클레어는 방황하면서 성장하게 된다. 지금까지의 삶에 익숙하고 편안함을 느꼈던 싱클레어는 기존의 세계관을 고수하게 되는데 학교 졸업하고 세월이 흘러서 다시 데미안을 만나게 된다. 싱클레어가 스스로 자신의 세계관을 허물고 새로운 세계관을 받아들이기까지 10여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안전하다고 생각한 세상에 머물면서 의미있고 가치있는 삶을 위해 한발짝을 내밀지 못한 채 우린 얼마나 후회 속에서 많은 갈등을 해야했을까? 나 역시 그렇게 살아오다 전혀 해보지 못한 분야에 도전해보기도 하면서 스스로의 삶을 깨뜨려본 경험이 있다. 그건 자신이 어떻게 마음을 먹고 후회없는 삶을 살 마음의 준비가 되었냐에 달려있는 것 같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큰 영향을 주는데 책 전반에 흐르는 메세지가 바로 독자들에게 묻는 것만 같다.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준 쪽지에는 이런 글이 쓰여져 있는데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 힘겹게 싸운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시스다.' 데미안은 일찍부터 철든 철학자였는지 싱클레어가 스스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라고 한다. 


요즘처럼 불확실성의 시대, 혼돈과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인간은 자신의 삶을 성찰하면서 깨닫는다고 하는데 우리에게 늘 데미안같은 존재가 있었던 것 같다.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친구의 얘기를 듣고 영향을 주고 받는다. <데미안>은 여러 번 곱씹어도 좋을만큼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작품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