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런치, 바람의 베이컨 샌드위치
시바타 요시키 지음, 권남희 옮김 / 예담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읽으면서 따뜻한 기운이 전해지는 소설이었다. 소설에 나오는 등장인물 중 나쁜 사람은 없고 단지 누구에게 말 못할 아픔을 간직한 채 살아온 사람들이 있다. 단순한 요리 소설 혹은 도시에 살다 귀촌한 여자의 고군분투기로 보기엔 뭐랄까 투명한 마음이 느껴졌다. 주인공인 나호는 도쿄에서 나름 성공한 커리어우먼이다. 여성잡지 부편집장으로 일하며, 안정된 직장에서 높은 연봉을 받는 훈훈한 외모의 남편과 결혼까지 했으니 겉으로 보기엔 남부러울 것 없는 중산층이다. 하지만 그녀가 유리가하라 고원으로 내려와 살게 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술·담배도 안하고 겉으로 보기엔 문제 없어 보이지만 치명적인 버릇이 그녀의 결혼생활을 불행하게 만든 것이었다.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비아냥거리며 상처주는 말을 내뱉는 습관 때문에 정신적인 고통이 시달렸던 것이다. 도쿄에서의 모든 생활을 정리하고 카페창업교실에서 배운 뒤 유리가하라 고원 팬션을 헐값에 매입해 카페 송드방을 차리게 되었다.


카페 송드방에서 그녀는 매일매일 유리가하라 고원에서 재배된 채소와 병아리 목장에서 공수받은 치즈와 버터, 우유, 파란하늘 베이커리의 빵과 쿠키로 특별한 런치 메뉴를 만들어낸다. 소설을 읽고 있으면 <리틀 포레스트>라는 일본 영화가 떠오른다. 그 영화도 계절별로 특별한 음식을 만들어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비슷한 느낌일 것 같다. 요리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나올 수 없을만큼 만드는 과정과 식재료들을 세심하게 쓰고 있다. 카페창업교실에서 배웠다고는 하지만 직장생활만 해온 그녀가 유리가하라 고원에서 1년을 살면서 많은 요리를 만드는 모습이 대견하고 정겨웠다. 병아리 목장의 미나미씨와 친하게 지내며 농업센터의 요스케는 신선한 채소를 공급하며 알게 모르게 도움을 준다. 손님으로 온 60대 초반의 남자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 탄생한 베이컨 샌드위치. 마을 사람과 단골들로 인해 점점 발전하는 메뉴들. 나호씨처럼 귀촌을 온 사에씨와 파란하늘 베이커리를 10년간 운영해온 마사미씨가 털어놓은 고충들. 


귀촌에서 사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과 매번 같은 일을 반복해야 하는 지겨움. 릴리필드 호텔이 들어서면서 생기는 마을의 변화들이 잔잔하게 흐른다. 여름과 겨울 두 번 나호를 찾아온 전 남편인 시게루. 나호가 선택한 건 자유로운 행복이었을 것이다. 이혼한 뒤 도쿄에 살았어도 도시의 풍족함을 누렸을텐데 오히려 그 풍요로움에 질렸다고 말한다. 정답은 알려주지 않지만 나호의 선택을 응원한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행복함을 누리는 곳을 찾은 것 같기 떄문이다. 카페 송드방의 적자는 확정되었고 미래는 불투명하지만 분명 열심히 살아가고 살아있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남의 일엔 간섭하지 않는 도시와는 다르게 일상이 공유되는 시골생활이 녹록하지 않지만 그래도 카페 내 사랑방을 만들며 그 속에 녹아들어가고 있다. 오랜만에 잔잔하고 따뜻한 소설을 읽은 것 같다. 서로의 아픔에 귀기울여 들어주고 한 번쯤 귀촌이나 창업을 생각할 때면 삶의 방식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데 카페 송드방에서의 오늘의 런치는 무엇일 지 기대하며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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