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다
고정순 지음 / 제철소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릴 때 그러니까 동네에서 뛰어놀던 그 시절의 모습이 떠오르게 한 책이었다. 저자처럼 소래포구를 떠나 영등포로 상경한 것은 아니지만 같은 시대를 지나온 사람만이 공유할 수 있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읽으니 경제적으로 힘들었지만 엇나가지 않고 순수하고 밝게 자라온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그 당시만해도 서울에서 별무리를 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보름달이 뜨면 어찌나 밝고 크던지 가끔은 별똥별이 떨어지는 것도 볼 수 있었다. 힘들고 어려운 유년 시절은 그래도 자연을 느끼며 놀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도 어릴 때부터 많은 일들을 겪어오면서 살아왔다는 게 느껴졌다. 


지금은 유치해보여도 어릴 때는 왜 그리 창피했었는지. 또래 아이들과의 비교나 시선이 그렇게 신경 쓰였나보다. 내가 사는 집이나 아버지의 직업이 부끄러웠던 때 나는 철없는 아이였다. 작은 일에도 쉽게 상처받고 자존심은 다치기 싫었던 내 유년이 떠올랐다. 고정순 산문집 <안녕하다>은 영등포에서 자란 시절을 서술한 책이다. 그때 겪었던 에피소드들을 엮어냈고, 하나하나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다. 특별할 것도 없고 그떈 그랬었지하며 넘기는 과거와 현실을 이어주는 끈이다. 현재 내가 느끼는 감정, 내가 의미있는 행동들은 모두 과거의 기억과 연결되어 있다. 그 시절의 내가 처한 상황들은 나비효과처럼 날아와 현실을 사는 내게 영향을 주는 것처럼.


누구나 자신이 겪은 특별한 에피소드들을 갖고 있을 것이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눈 앞에는 아직 개발되기 전 동네의 모습이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아직 키 작은 내게 세상은 커다란 모험 장소였고 내일은 어떤 일이 펼쳐질 지 모르는 그런 곳이었다. 풍족하게 자라지는 못했지만 순수한 감성이 남아있던 그때가 그립다. 아닐로그 시절에는 새로운 기술이나 제품이 나오면 그저 신기해했었고, 놀라운 일들로 가득차 매일매일이 즐거웠다. 이 산문집도 어릴 적의 나와 오늘을 사는 나를 잇댄 채 저자는 이렇게 되뇌이는 것은 아닐까? '그곳은 힘들고 이곳은 외롭다.' 저자가 영등포를 고향으로 생각하듯 내게도 자라고 난 동네에 대한 기억들이 많다. 지금은 또 어떻게 변했을 지 오랜만에 찾아갈 때면 아직도 남아있는 흔적들이 반갑다. 글 중간에 저자가 그린 그림은 글과 맞아떨어진다. 오늘도 안녕하며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