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사랑한 시대의 예술, 조선 후기 초상화 - 옛 초상화에서 찾은 한국인의 모습과 아름다움
이태호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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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과 같은 형태의 카메라가 개발된 시점은 1936년대라고 한다. 그 이전 시기의 서양에서는 카메라 옵스쿠라같은 광학기구를 이용해 입체감과 원근감을 구현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실제 눈을 통해 보는 것 달리 이 기계는 "그림을 그릴 줄 모르는 사람도 이 장치를 사용하면 연필로 사물의 윤곽을 쉽게 그릴 수 있다고"고 물리학자 포르타의 말에서 보듯 풍경을 묘사하는데 있어서 화가들에게 꽤 유용하게 썼음을 알 수 있다. 기존보다 생동감 넘치는 풍경화들이 나오게 된 배경에도 궤를 같이하고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메라 옵스쿠라가 발전하면서 더욱 사실성이 강조되었고 구체적인 묘사가 가능했다. <사람을 사랑한 시대의 예술, 조선 후기 초상화>에서 이런 부분을 언급한 건 흥미로운 일이다. 조선시대엔 대표적으로 정약전의 집에 카메라 옵스쿠라를 설치하고 이기양의 초상화를 그린 사례가 대표적이지만 어떤 화가가 그렸는지는 밝혀진 바가 없다고 한다. 


동양화는 주로 풍경이나 해학물, 가례의식, 역사 상상화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편인데 정교하게 그린 초상화를 박물관에서 직접 보면 놀라움을 자아낼 정도로 섬세하게 그렸다. 그 시대의 인물들의 모습을 유추해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이면서 전체적으로 흘러나오는 풍모와 지위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카메라로 찍어도 큰 차이는 없을 것 같다. 대부분의 초상화는 당대 최고로 칭하는 화가들이 주로 그렸는데 흥미로운 점은 조선 후기 1780년대 카메라 옵스쿠라를 활용했을 가능성이다. 그 근거로 이명기가 그린 초상화의 입체적인 표현과 손을 드러낸 포즈, 투시도법에 근거한 바닥의 사선처리를 들고 있다. 의습을 보면 명암이 발견되는 점으로 미루어보면 명확한 인물의 축소비율과 형식미는 눈대중으로만 그릴 수 없다는 판단이다. 정약용을 통해 들여온 카메라 옵스쿠라가 이렇게 초상화에서 다양하게 활용되었다는 점을 알았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소득이다.





조선후기 초상화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치있는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서양의 카메라 옵스쿠라가 조선시대에까지 영향을 끼쳐 초상화에도 활용되었다는 점은 분명 흥미로운 일이다. 위 작품은 <채제공 65세 초상> 금관조복본으로 1784년 이명기가 그렸으며 보물 제1477호 개인소장 중인 작품이다. 비단에 수묵채색을 하였고 수염 한 가닥, 바닥의 문양까지 매우 사실적으로 그렸다. 유지초본과 흑단령포본이 남아있으니 어떤 방식으로 그렸는지 대강 알아볼 수 있다. 서양 미술에만 익숙해져서 조선시대의 그림은 고리타분에 여겨왔던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조선시대 후기에 성행한 초상화의 역사와 많은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현재 남아있는 것만이라도 후대에 잘 보존해주길 바란다. 전쟁과 환란에 불태워져 소실된 작품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소중한 문화자산을 알기 위한 노력과 더불어 지킬려고 하는 노력이 함께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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