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크 픽션
배상민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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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하게 손님도 없는 만화가게 주인으로 살면서 적당히 벌고 만화를 보는 지금이 실패한 인생은 아니라고 자위하는 초짜 영화감독. 그 시작은 지극히 평범했지만 읽을수록 점점 더 이야기에 빠져드는 흡입력이 느껴지는 힘이 있는 작품이었다. 작가주의 영화감독을 표방하며 영화 제작을 꿈꾸지만 번번히 후배에게 밀려 시나리오 입봉도 못하던 와중에 드디어 영화를 찍을 기회가 찾아온다. 하지만 그 조건은 자신과 동거동락하며 지낸 무명 배우인 성숙의 빚을 갚기 위해 사채업자가 제안한 대로 찍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채업자가 제시한 2천 4백만원으로 영화를 만들어야 했는데 그것이 바로 성숙의 빚과 이자를 합한 금액이었던 것이다. 그 돈으로는 영화 장비 하나 제대로 쓸 수 없는 형편이었고, 생각해낸 것이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찍고 편집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러다 자주 냉면집에서 배달을 시키며 봐온 배달원 '삼룡'을 캐스팅하게 된다. 연기를 배운 적도 없고 단지 액션영화를 찍기에 몸이 좋다는 이유에서다. 게다가 캐스팅 비용도 줄일 수 있었던 것이다. 사채업자가 원한 강렬한 액션신을 찍으려면 촬영장소 섭외와 많은 액스트라가 필요했다. 하지만 저예산 영화였기에 황 감독은 철거촌 현장으로 삼룡을 투입하기에 이른다. 이 부분이 사실 제목과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페이크 픽션> 영화라는 프레임 안에 실제 상황을 담는 그 웃픈 상황이 소설 속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상황 자체가 그렇게 몰고 간 것이겠지만 필름에 담긴 현장은 실제로 벌어지는 우리들의 현재 모습이었다. 삼룡은 처음에 영화를 찍기 위해 철거현장에서 연기를 하지만 직접 눈 앞에서 펼쳐진 철거민들의 비참한 모습 앞에서 생각을 바꿔 용역업체에 맞춰 싸우게 된다. 촬영된 현장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아무리 용역업체에 고용된 사람이라고 하지만 그들 앞에 철거민들은 한낮 방해물에 불과할 뿐이다. 각목으로 때리는 소리, 비명 지르는 소리, 욕설 소리가 뒤엉켜 피 냄새가 진동하는 현장에서 마주친 곳에 윤리나 도덕 혹은 법이 존재하기는 할까? 항상 우리나라는 정신적인 루트가 아니라 이렇게 용역 업체의 힘을 빌려 비정상적인 루트로 자신들의 권력과 힘으로 힘없는 사람들을 밀어부칠까? 우리나라가 발전하면서 겪은 씁쓸한 현실이고, 지워지지 않는 상처이다. 누가 불법을 저지르고 있으며 검찰과 경찰 그리고 나라는 누구를 먼저 보호해야 하는가? 철거 현장에 대한 묘사는 마치 현장 다큐멘터리를 보듯 리얼했다. 시민을 보호해야 할 경찰이 오히려 철거민들을 밀어부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용역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방탄복과 곤봉, 방패로 완전 무장한 경찰특공대의 모습에서 역시 법은 내쫓으려는 자들의 편에 서는구나 하는 소설 속 묘사처럼 아직까지 우리에게도 생생한 기억이다.


무겁거나 어둡지만은 않은 재미와 현실에 대한 비판들이 잘 버무려진 책이다. 소설은 픽션을 다루고 있지만 현실은 논픽션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 나온 이야기들이 허구일까? 아니면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이 허상인 것일까? 자본주의와 경제발전에 가려진 우리들의 어두운 그림자를 밝혀낸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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