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의 묘
전민식 지음 / 예담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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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는 도굴꾼들의 이야기인 듯 싶었다. 황창오, 도학, 중범은 야밤에 산 속에서 도굴을 하고 있었으나 누군가에게 들켜 달아난다. 황창오와 중범은 다행히 도망치는데 성공하지만 도학은 끝내 사로잡혀서 두 팔을 포박한 상태로 있는데 군인들에게 붙잡힌 것이다. 그의 운명은 시대와 함께 지나가게 되는데 이 소설의 배경은 바로 군부 독재 중이였던 1970년대 말이다. 도학은 자신의 아버지인 황창오의 이름을 빌려 지프차를 타고 가던 도중 라디오에서 대통령이 시해 당했다는 소식을 얼핏 듣게 된다. 1979년 10월은 독재가 끝나는 시점과 불안한 정세가 공존했던 시기였다. 풍수지리와 혈을 짚을 줄 아는 지관을 통해 인간의 끝없는 권력욕과 무덤을 파헤치는 9일간의 암투를 다룬 소설이다. 소설의 소재와 배경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한 번 읽게 되면 그 흡입력이 대단해서 정신없이 읽어나가게 된다. 아무래도 시대적인 배경을 이해하면서 읽으니 그 시절의 긴장감과 불안함이 전해져오는 것 같다.


이 소설을 이끄는 지관 세 부자가 나오는데 풍수지리계에서 꽤 잘 알려진 황창오와 그의 아들 황중범, 양아들인 도학이다. 황중범과 도학은 어릴 적부터 아버지에게 풍수지리와 혈 등을 배우면서 성장하였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이들은 배다른 형제지간이며 라이벌 의식을 느낀다. 지관이었던 황창오가 도굴꾼으로 전락하게 된 건 궁핍한 생활고를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예전에 명당에 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권력자들은 도학을 통해 좋은 명당자리를 찾게 되고 이미 자리잡은 무덤도 파헤친다. 단지 좋은 명당자리를 위해서. 서사적인 필력 뿐만 아니라 풍수지리를 도입하여 사람들의 생과 사에 대한 뼈저린 말도 소설을 통해 전해주고 있다.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죽은 자의 묘를 파헤치면서까지 좋은 자리를 차지하여 후일에 있을 부귀영화를 누리겠다는 산 자의 허망한 욕심이 가능했던 시대에 대한 이야기다. 


부끄러운 과거 역사가 잘 스며들어 있다. 그 시절을 경험하지 못한 후대에겐 1979년 10월 대통령이 저격당한 후 장례가 치러지는 기간인 9일간의 일들을 통해 여전히 잊어서는 안될 이야기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권력을 쥐면 모든 것이 가능했던 시대. 단지 남의 무덤을 도굴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그 시절의 아픔을 경험한 자들의 이야기이자 우리들의 역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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