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페스트에 감염되면 치료가 불가능하고 곧 죽음에 이르는 무서운 질병이라 공포와 절망이 도사릴 수밖에 없었다. 시가 폐쇄되었기 때문에 외부와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은 전보 외는 없었고 철도나 선박도 끊겨버렸다. 총 5부로 구성된 이 책은 1부에서 쥐 소동으로 인한 혼란스러운 상황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마치 중세 시대를 연상시키기라도 하듯 쥐 벼룩이 흑사병을 전파시킨 공포가 오랑 시에 엄습하고 있었다. 1부 2장부터 주요 등장인물들인 베르나르 리유(의사), 장 타루, 파늘루 신부, 랑베르(신문기자), 조제프 그랑(시청 말단 공무원), 코타르, 리샤르, 카스텔, 수위 미셸 영감 등 속속들이 등장한다.
서술자의 관점에서 주로 베르나르 리유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쓰였지만 장 타루의 수첩에 적힌 부분도 상당히 많은 지분을 차지한다. 각 등장인물들이 전대미문의 전염병에 맞서 어떤 생각과 행동을 보이는지 잘 보여준 책이다. 특히 파늘루 신부의 설교 논조가 바뀐 시점이 극적이다. 아무 죄도 없이 페스트에 걸린 오통 판사의 자녀가 고통스럽게 죽음을 맞이한 이후였기 때문이다. 또한 신문기자인 랑베르는 잠시 머문 오랑 시를 탈출하기 위해 백방으로 알아보다 포기하고 보건대에서 활동하는데 이 소설에서 유일하게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 인물이다. 페스트가 종식되고 시의 문이 열린 뒤 열차 플랫폼에서 그토록 사랑하던 연인과 재회하고 뜨거운 포옹을 나눴으니 말이다.
읽으면서도 정말 코로나-19 때처럼 사람들이 취한 행동과 상당히 유사해서 놀랐고, 조그만 전기 자동차 2대가 천막 사이로 커다란 냄비를 싣고 다니는 장면도 특이했다. 감염 의심자를 수용소 같은 곳에 격리시키고 혈청 실험을 지속하는 부분도 상당히 흡사하다. 무엇보다 감염되었을 때 보이는 증상을 아주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후반부에 가면 주요 등장인물이 하나둘 죽음을 맞이하는 부분도 상당히 의미심장하게 쓰였다. 종교와는 무관하게 전염병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닥쳐오는 질병이며, 혈청 맞는 시기를 넘기거나 부주의한 순간 언제든 걸릴 가능성이 높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뛰어난 묘사와 유려한 문체 등 번뜩이는 문장들이 많았음에도 이상하게 완전히 몰입해서 읽지는 못했다. 뭔가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장면보다는 등장인물에서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 것도 있고 뭔가를 장황하게 설명하려고 한 부분에서 맥을 놓친 것 같다. 전반적인 소설을 이해하려면 우선 작품 해설을 정독하길 추천한다.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페스트가 전쟁 상황과 상당히 유사하게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하니 지나친 부분도 새롭게 보인다. 인간이란 존재는 예기치 못한 존재에 대해 느끼는 공포감이 상당하다. 그것이 죽음으로 직결되는 전염병이고 시가 폐쇄된 상황이라면 과연 우리는 온전하게 버틸 수 있을지 생각해 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