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을 돌아볼 때 자기 말만 하는 사람보다는 귀담아 들어주는 사람에게 끌린다. 모모 역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가만히 앉은 채로 따뜻한 관심을 갖고 온 마음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편안하게 찾아와서 온갖 이야기를 하게 된다. 술집 주인인 니노와 미장인 니콜라가 화해하고 니노 술집에서 노인을 받아주지 않아 생겼던 문제도 대화로서 풀렸다. 아이들은 원형극장 터에 앉아 놀았는데 한순간도 지루한 때가 없을 정도로 기발한 아이디어가 새록새록 떠올랐고 특별한 장난감 없이도 오직 상상력만으로 이야기를 만들며 하루 종일 즐겁게 놀곤 했다.
도로 청소부 베포와 관광 안내원 기기를 알게 된 후로 날이 갈수록 이젠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친구가 된다.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기기는 온갖 말을 지어내는 이야기꾼이다. 그 이야기라는 것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둘 다 가난하게 사는 형편은 매한가지였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간다. 제2부에서 등장하는 회색 신사는 자신을 시간 저축 은행에서 나온 영업사원으로 소개한다. 회색 자동차를 타며 잿빛 얼굴을 한 채 항상 작은 시가를 물고 서류 가방을 들고 다닌다. 회색 신사복에 회색 연필을 들고 불쌍한 이발사 푸지 씨에게 시간 낭비에 관해 설명하는 부분이 압권 중 압권이다.
우리가 사는 도시는 콘크리트 회색빛 빌딩으로 둘러싸여 있다. 높은 빌딩과 아파트뿐만 아니라 건축 구조물도 모두 시멘트를 기반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시간에 쫓겨 시간이 부족한 현대인이야말로 시간 도둑인 회색 신사에게 좋은 먹잇감이다. 시간을 체계적으로 계획에 맞춰 살아가야 열심히 사는 거라고 종용하고 시간 낭비하는 걸 게으르고 무책임한 사람(계획성 없는)이라고 치부한다. 밥 먹을 시간도 없어 거르거나 간단한 토스트로 때우고 출근길에 몸을 싣고 마음에 여유가 없기 때문에 누구와 붙잡고 얘기할 시간도 없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은 놀이터가 아닌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맡겨지고 상상력을 키울 시간보다 정해진 놀이와 시간표에 따라 하루를 보내는 일이 많아졌다.
회색 신사의 손에 넘어간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무관심한 채 바쁘게 앞만 보며 걷고 아이들이 시위를 해도 귀담아듣기는커녕 아예 보육원 시설에 맡겨 버린다. 도로 청소부 베포는 자신의 원칙에 따라 쓸고 쉬다가 쓰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쫓기듯 정신없이 빗질만 할 뿐이고 관광 안내원 기기는 이야기꾼으로 명성을 얻어 부와 명성을 얻은 유명인이 되었지만 3명의 비서들로부터 빠듯한 일정을 소화하느라 여유조차 누리지 못하고 그동안 했던 이야기를 돌려 막느라 끌려다닌 듯 산다. 회색 신사에게 시간을 뺏긴 사람들의 모습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과 너무나도 닮아있어서 놀랐다.
호라 박사와 카시오페이아, 모모는 시간 도둑이 회색 신사들로부터 시간을 되찾아 준 뒤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확 바뀌는데 아마 이것이 저자가 우리들에게 던지는 질문이자 메시지가 아닌가 싶다. 마음에 여유를 되찾자 길이 막혀도 웃음을 짓게 되고 사람들과 길에 서서 안부를 묻고 그 흔한 화단의 꽃을 보며 감탄하거나 새에게 모이 줄 시간이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노동자들이 일에 대한 애정을 갖고 편안하게 일할 수 있는 것도 업무 압박에서 오는 스트레스나 회의와 바쁜 일로부터 해방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을 하는 것보다 자기가 필요한 만큼 시간을 내는 것도 삶의 이유와 목적을 명확하게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