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 - 출간 50주년 기념 개정판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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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구나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동화 같은 책이다. 읽고 나서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교훈과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을 동시에 지적하고 있다. 모모가 어디로부터 왔는지 아무도 알 지 못한다. 이야기의 시작은 커다란 도시의 남쪽 끝머리에 무너진 작은 원형극장으로부터 출발한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극장이었던 그 주변으로 누추해져가는 오두막집과 밭들이 깔려있고 소나무 숲이 빽빽하게 심어진 곳이다. 모모가 그 원형극장에 살기 시작하자 달라지기 시작한 점이 있었다.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주는 모모는 마을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어갔다.

"모모의 집에는 손님이 끊이지 않게 되었다. 모모 곁에는 언제나 누군가가 앉아 열심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모모가 필요하지만 직접 찾아올 수 없는 사람은 모모를 부르러 사람을 보냈다. 아직 모모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마을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아무튼 모모에게 가 보게!'"

p. 21


우리 주변을 돌아볼 때 자기 말만 하는 사람보다는 귀담아 들어주는 사람에게 끌린다. 모모 역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가만히 앉은 채로 따뜻한 관심을 갖고 온 마음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편안하게 찾아와서 온갖 이야기를 하게 된다. 술집 주인인 니노와 미장인 니콜라가 화해하고 니노 술집에서 노인을 받아주지 않아 생겼던 문제도 대화로서 풀렸다. 아이들은 원형극장 터에 앉아 놀았는데 한순간도 지루한 때가 없을 정도로 기발한 아이디어가 새록새록 떠올랐고 특별한 장난감 없이도 오직 상상력만으로 이야기를 만들며 하루 종일 즐겁게 놀곤 했다.


도로 청소부 베포와 관광 안내원 기기를 알게 된 후로 날이 갈수록 이젠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친구가 된다.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기기는 온갖 말을 지어내는 이야기꾼이다. 그 이야기라는 것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둘 다 가난하게 사는 형편은 매한가지였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간다. 제2부에서 등장하는 회색 신사는 자신을 시간 저축 은행에서 나온 영업사원으로 소개한다. 회색 자동차를 타며 잿빛 얼굴을 한 채 항상 작은 시가를 물고 서류 가방을 들고 다닌다. 회색 신사복에 회색 연필을 들고 불쌍한 이발사 푸지 씨에게 시간 낭비에 관해 설명하는 부분이 압권 중 압권이다. 


우리가 사는 도시는 콘크리트 회색빛 빌딩으로 둘러싸여 있다. 높은 빌딩과 아파트뿐만 아니라 건축 구조물도 모두 시멘트를 기반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시간에 쫓겨 시간이 부족한 현대인이야말로 시간 도둑인 회색 신사에게 좋은 먹잇감이다. 시간을 체계적으로 계획에 맞춰 살아가야 열심히 사는 거라고 종용하고 시간 낭비하는 걸 게으르고 무책임한 사람(계획성 없는)이라고 치부한다. 밥 먹을 시간도 없어 거르거나 간단한 토스트로 때우고 출근길에 몸을 싣고 마음에 여유가 없기 때문에 누구와 붙잡고 얘기할 시간도 없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은 놀이터가 아닌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맡겨지고 상상력을 키울 시간보다 정해진 놀이와 시간표에 따라 하루를 보내는 일이 많아졌다.


회색 신사의 손에 넘어간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무관심한 채 바쁘게 앞만 보며 걷고 아이들이 시위를 해도 귀담아듣기는커녕 아예 보육원 시설에 맡겨 버린다. 도로 청소부 베포는 자신의 원칙에 따라 쓸고 쉬다가 쓰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쫓기듯 정신없이 빗질만 할 뿐이고 관광 안내원 기기는 이야기꾼으로 명성을 얻어 부와 명성을 얻은 유명인이 되었지만 3명의 비서들로부터 빠듯한 일정을 소화하느라 여유조차 누리지 못하고 그동안 했던 이야기를 돌려 막느라 끌려다닌 듯 산다. 회색 신사에게 시간을 뺏긴 사람들의 모습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과 너무나도 닮아있어서 놀랐다.


호라 박사와 카시오페이아, 모모는 시간 도둑이 회색 신사들로부터 시간을 되찾아 준 뒤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확 바뀌는데 아마 이것이 저자가 우리들에게 던지는 질문이자 메시지가 아닌가 싶다. 마음에 여유를 되찾자 길이 막혀도 웃음을 짓게 되고 사람들과 길에 서서 안부를 묻고 그 흔한 화단의 꽃을 보며 감탄하거나 새에게 모이 줄 시간이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노동자들이 일에 대한 애정을 갖고 편안하게 일할 수 있는 것도 업무 압박에서 오는 스트레스나 회의와 바쁜 일로부터 해방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을 하는 것보다 자기가 필요한 만큼 시간을 내는 것도 삶의 이유와 목적을 명확하게 알려준다.


"아이들은 길 한복판에 나와 놀고, 아이들이 비키길 기다릴 수밖에 없는 운전자들은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차에서 내려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사람도 있었다. 어디서나 사람들이 서서 다정하게 말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안부를 자세히 물었다. 일하러 가는 사람도 창가에 놓인 꽃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거나 새에게 모이를 줄 시간이 있었다. 의사들은 환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정성껏 돌볼 시간이 있었다. 노동자들은 일에 대한 애정을 갖고 편안하게 일할 수 있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가능한 한 짧은 시간에 가능한 한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저마다 무슨 일을 하든 자기가 필요한 만큼, 자기가 원하는 만큼의 시간을 낼 수 있었다. 시간이 다시 풍부해진 것이다."

p. 360


어떻게 아무리 바빠도 아이나 사람들과 이야기 들어줄 시간이나 놀아줄 시간도 없을까? 회색 시간을 가져간 시간들은 저축이 아니라 죽은 시간을 뺏어가는 것이다. 시간은 저축할 수 없으며 그때가 아니면 안 되는 일들도 많다. 가둬버린 시간 속에선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도 없고 바닥난 레퍼토리를 비슷하게 만들어 돌려 막기에 급급할 뿐이다. 아이들은 서로 함께 어울려서 무슨 놀이든 해야 재미있고 상상 속 세계를 펼칠 수 있고 어른들은 시간에 끌려다니지 않아야 신경이 날카로워지지 않는다. 저자가 주는 교훈은 현재도 유효하며 시간이 주는 의미를 다시 되새겨보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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