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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내 여행자-되기 ㅣ 둘이서 3
백가경.황유지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8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쓴 후기입니다.
다크 투어로 투영되는 공간과 맞닿아 그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시인인 백가경과 문학평론가인 황유지는 같은 공간을 그들만의 시선으로 아픔이 머문 관을 스스로 걸어들어간다. 인천, 의정부, 삶터, 안산, 이태원, 일터, 광주, 서대문, 고향, 등단길 등 기억을 기억으로 기억하는 삶이 존재했었던 지난 사건들을 마주할 때 서서히 잊혀가는 상처가 쓰리게 아려온다. 사뭇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 우리는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기억은 애써 떠올리지 않으려고 한다. 아니 정면으로 대면할 용기가 부족한지도 모르겠다. 동일방직 사건, 기지촌 여성 실태, 세월호 침몰 사고, 이태원 압사 사고, 5.18 민주화 운동, 서대문 형무소 - 유관순 열사 등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기억도 존재한다.
도시를 걷다 보면 간혹 기억의 관에 갇힌 공간이 다가올 때가 있다. 분명 그 사건들은 벌어졌고 영원히 기억에서 지울 수 없는 당사자와 유가족이 존재한다. 끊임없이 기억해 내고 잊지 말아야 할 이유는 똑같은 일들이 반복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외면하고 잊어버리는 순간 역사는 왜곡되고 진실은 묻혀버리기 때문이다. 명확한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고 책임자에 대한 합당한 처벌이 즉각 이뤄졌다면 오랜 세월 아픔을 거리에서 외치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는 담담하게 글로 기록했지만 직접 현장을 걸으며 목소리를 듣고 둘러보는 동안 차오르는 감정을 차분하게 억누르는 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관내 여행이라고 하지만 즐거운 여행일 수 없는 이유다. 다들 각자 나름대로의 사연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기억을 되살리는 건 때론 잔혹하기 때문이다.
"나의 작은 투쟁은 이런 것이다. 하나의 진실에 다가서는 공부를 일상적으로 꾸준히 하기. 진실을 가려내는 눈을 기르기. 특정 집단이 시간을 끌며 대중의 망각을 유도한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음을 끝끝내 증명하기. 계속 말하기. 계속 쓰기. 작든 크든 계속 투쟁할 수 있는 위로와 에너지를 얻으러 여기저기 다니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보잘것없을지도 모른다. 기껏 해봐야 진실을 왜곡하는 자들에게 진실을 외치고 잊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는 것밖에 없다. 그저 옳은 일이고 올바른 생각이기 때문에 진실의 편에 설 뿐이다. 증명된 역사는 거짓을 말하거나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다. 사건의 전모를 속속들이 알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해방 후 우린 늘 강자들에 의해 짓밟혀 온 기억을 갖고 있다. 진실과 정의는 사람들에게 외면받고 강제로 추방당했다. 한동안 피해자들은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속앓이를 하며 입단속을 해야 했다. 사건의 기억을 되살리고 계속 알리는 작업은 의미 있는 일이다. 과거가 있기 때문에 현재와 오늘이 존재하듯 저자와 함께 관내 여행자가 되어 다시금 곱씹을 수 있었던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