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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는 대로 낭만적인 - 스물여섯, 그림으로 남긴 207일의 세계여행
황찬주 지음 / 흐름출판 / 2023년 10월
평점 :
'집 나오면 개고생'이라는 혹자들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전역 후 7개월간의 세계 여행에 필요한 천만 원의 예산을 마련하기 위해 휴학계를 낸 뒤 낮에는 건축 설계 사무소에서 일하고, 밤부터 새벽까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차근차근 계획을 실행에 옮길 준비를 한다. 군 복무 중 알게 된 10개월 후임인 K가 전역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대장정에 오르기 위한 절차를 밟는다. 여행 준비에 필요한 서류와 예방 접종, 배낭에 넣을 장비까지 꼼꼼하게 준비해야 한다. 이미 고생할 각오를 했기에 배낭여행을 떠나는 동안 여러 불편사항도 감수할 수 있었다. 예기치 않은 돌발 상황과 날씨 때문에 고생은 필연적으로 따라왔지만 청춘이기에 감내하며 여행을 이어나갔다.
솔직히 고생스럽지만 세계 여행을 떠난 이 둘의 여행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이미 다녀온 기분이다. 서울에서 출발해 중국, 베트남, 태국, 인도, 이집트, 튀르키예,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 스페인, 브라질, 볼리비아, 페루 등 4대륙을 횡단한 207일의 세계 여행은 그 자체로 대단한 일이다. 만약 세계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면 평생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과의 인연을 만들었고 새로운 땅과 세상을 볼 기회를 얻었다는 건 흔치 않다. 여행하는 내내 틈틈이 그림을 그렸는데 사진보다 감성적이었다. 207일의 세계 여행을 마치고 난 뒤 무엇을 얻어왔는가는 그리 중요치 않다. 이미 평생에 남을 추억과 경험을 쌓으며 나를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학업이나 취업보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지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직접 가보지 않았다면 열리지 않았을 세계와 조우했을 때 그 기분은 현실을 잠시 잊게 만든다. 여행 에세이의 묘미는 간접 경험을 선사하는 데 있다. 내가 겪은 일도 아닌데 마치 같은 일을 함께 한 기분이 든다. 세계 여행에 대한 환상을 내려놓고 본다면 인생처럼 변곡점도 많고 우리가 미리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그 판단이 매우 중요하다. 만약 편하게 여행할 생각이었으면 크루즈 유람선을 타거나 자동차를 이용했을 것이다. 천만 원으로 7개월을 여행해야 했기에 경비는 최대한 아껴야 한다. 쓸데없이 지출되지 않도록 나라별 환율과 물가도 계산해둬야 한다. 493 페이지에 달하는 이 에세이를 읽는 동안 잠시 잊고 있었던 여행의 낭만이 떠올랐다. 여행이라는 건 그 어떤 선입견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아름다운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