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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마지막 히어로
엠마뉘엘 베르네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1월
평점 :
영화 <록키 3>의 메인 타이틀곡인 'Eye of the Tiger'는 전주 부분을 들을 때면 뭐든 다 해낼 것만 같은 기운이 솟아난다. 개인적으로 <록키 1>의 메인 타이틀곡인 'Gonna Fly'가 제일 잘 어울리지만 엠마뉘엘 베르네임 <나의 마지막 히어로>의 주인공인 리즈는 1983년 1월 어느 날 저녁, <록키 3>을 영화관에서 본 뒤로 록키처럼 현실 앞에 굴복하지 않고 꿈을 향해 의과대학 공부를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한다. 겨우 '100페이지'에 불과할 정도의 양이라 몇 시간이면 다 읽을 정도다. 그나마 이다혜 기자와 이종산 소설가의 대담이 수록되어서 엠마뉘엘 베르네임 작가와 이 소설의 내용을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외롭거나 의욕이 없을 때 'Eye of the Tiger' LP판을 턴테이블에 걸고 실베스터 스탤론이 출연한 작품은 빠짐없이 보기 위해 혼자 영화관에 간다. 급기야 남자들만 가득한 스포츠클럽에서 권투를 배우고 우연히 거울 제조업자인 장을 만나 사랑을 키워 결혼하고 두 아들을 낳으며 행복한 날을 보낸다.
그녀가 세운 개인 병원도 나날이 잘 되어 간다. <록키 3>을 본 이후로 영원히 실베스터 스탤론의 팬이 된 그녀는 그를 위해 적금을 붓는 등 덕질을 이어간다. 어떠한 부가 설명 없이 베르네임 특유의 짧고 간결한 문체로 이야기를 이어가기 때문에 더욱 집중해서 읽어야 했다. 이다해 기자와 이종산 소설가의 대담집에서 그 이유를 듣고 알게 된 부분이 있었는데 리즈의 남편인 장이 실베스터 스탤론을 위해 적금을 붓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면서 화를 내기보다는 얼굴을 파묻고 웃는 장면이었다. 그가 얼마나 리즈를 사랑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느끼도록 해준다. 극도로 절제된 짧은 문장은 매우 빠른 속도감을 주는데 100페이지 안에 필요하다 싶은 모든 내용을 넣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실베스터 스탤론으로 인해 그녀의 삶의 모든 것이 극적으로 변화되었다. 자신의 우상을 바라보며 꿈을 키워간 사람들을 이야기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목표를 이룰 수 있게 동기부여를 주는 멘토인 셈이다.
베르네임은 실베스터 스탤론에게 헌정하듯 <나의 마지막 히어로>에서 실베스터 스탤론의 작품들을 죄다 챙겨 보며 줄줄이 영화명이 나오고 있다. 나는 이토록 한 배우에게 꽂혀서 수십 년간 빠져든 기억은 별로 없다. 세월이 지나면 관심사가 옮겨지기도 하는데 스탤론이 가난에 쪼들릴 경우를 대비해 그녀가 버는 수입의 10퍼센트를 계좌에 입금한다. 십일조를 바치는 것도 아닌데 그 돈이 쌓이면 상당한 액수가 아닌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과연 내 삶에 영향을 준 인물이 있었는가에 대해 생각해보니 나의 마지막 히어로는 없었다. 그 흔한 팬카페에 가입하거나 설령 가입했어도 열성적으로 활동한 것도 아니었으니 덕질을 하는 사람들로 이해할 정도다. 갑자기 병으로 짧은 생을 살다가 갔지만 이룰 수 있는 것을 이루고 남편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실베스터 스탤론에게 유증을 맡기는 등 자신의 뜻대로 충실히 산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책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