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회
윌리엄 트레버 지음, 김하현 옮김 / 한겨레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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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트레버의 단편은 조용하고 차분한데 그 조용함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의 바로 그 긴장감 같은 맛이 있다.

태풍의 눈 속의 고요 같기도 하다.

분위기의 차분함과 달리 인물들 사이에선 긴장이 흐르고 왜 이렇게 말할까 왜 이런 상황이 된것인지에 대해 빠르게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겉으로 우아하고 느린 백조지만 물 속 전쟁같은 물장구가 느껴진다고나 할까.

그래서 윌리엄 트레버의 단편은 끝까지 편안하게 느긋하게 읽을 수가 없다. 집중해서 읽는 맛, 신경을 집중해서 읽는 맛, 그것이 윌리엄 트레버의 매력이다.

괜찮아요? 괜찮은 거예요?

말투에 불안한 기색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p.269

여자는 남자에게 괜찮은지를 묻는다. 괜찮아 보이는 사람에게 묻는 질문은 당연히 아니다. 이 질문 하나만으로 비밀스런 만남을 유지하는 이 남녀의 안 좋은 상황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어떤 상황이 벌어졌기에 남자의 불안을 여자가 느끼며 괜찮냐고 거듭 묻는것이며 이 남자는 무어라 대답할까.

그는 그녀의 구겨진 외투 깃을 매만져 주었고 그녀는 그의 넥타이를 고쳐 매주었다. 이런 작은 행동들은, 말로 직접 표현한 적은 없지만 두 사람이 자기들만의 시간에 서로를 소유하는 방식이었다.

p.270

남녀의 만남은 순탄치가 않다. 둘이 함께 산 스페인 구두는 안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둘이 함께 산 의미있는 물건이 몸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은 둘의 선택이, 둘의 만남이 끝나는 시기가 온다는 것을 암시하는것 같기도 하다.

게다가 둘이 함께 한 순간에 지나가는 노파에게 줄 동전을 찾느라 잘 어울린다고 말할 기회도 놓쳤다. 작지만 중요한 순간들을 놓친다는 것 그런 것들이 결별을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다른 사람들의 눈 때문이라고, 그가 말했다.

p.283

그는 자꾸 그녀가 더 나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그녀의 인생을 허비하고 있다고 .

그렇게 그는 사람들의 눈을 거슬려 한다. 사람들의 불륜을 바라보는 눈.

스스로가 죄인임을 상기시켜주는 타인의 눈이 그를 자꾸 옥죈다. 그녀의 말대로 사람들 생각은 정말 중요하지 않은 것일까. 여자의 말은 불편하다. 남자가 받는 불편함이나 고통은 타인의 눈으로서 잘 표현되고 있다. 어디가나 나를 주목할것만 같은 눈, 그런 시선들이 남자가 갖는 죄책감이다. 한마디 말로도 표현될 수 있지만 짧은 눈빛으로도 우리는 감정을 표현 할 수 있다. 밀회를 즐기는 남녀의 모습이 행복하지 않고 편안하거나 로맨틱하지도 않다.

불안과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초조를 작가는 주위의 사물이나 말로도 잘 표현한다.

두 사람은 한 번도 함께인 적 없이 함께 늙어갈 것이고 주름이 그녀의 얼굴을 상하게 할 것이며 기대의 장난으로 두 눈이 흐려질 것이다.

p.285

끝을 알고 있지만 나아가는 남녀의 어두운 마음을 잘 표현한 작품이다. 내면의 심리와 좌절 특히 절망적인 심정을 잘 표현하는 작가다. 일상속의 소소한 기쁨이나 작은 슬픔을 잘 포착해 내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작가의 작품을 읽고 나면 인물의 내밀한 마음속을 여행하고 온 기분이다. 스케일이 크고 감정 표현이 확실한 작가가 있는 반면에 트레버 처럼 섬세하고 내밀하게 잘 묘사하는 작가도 있다. 인물의 눈빛이나 말투 주위의 것들까지 다 신경쓰며 집중해서 읽었던 책이다. 섬세한 책을 일고 싶을때 추천한다.

​심오함이란 이런것이다 라고 알려주는 섬세문학의 결정판.

#윌리엄트레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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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것도 부른다면 - 박보나 미술 에세이
박보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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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나 작가의 책을 처음 읽어 보았다. '태도가 작품이 될 때' 를 읽어보려다가 기회를 놓친 기억이 난다.

미술의 문턱은 낮지 않다. 높다라고 하기엔 높지 않고 낮다 라고 하기엔 낮지 않다.

전문가적인 소양을 겸비해야 이해 할 수 있다고 생각도 되고 내가 느끼는 대로 바라본다 라고 생각도 된다.

하지만 미술관이나 작품을 볼 때 가장 걸림돌은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 같다. 뭘 의도한 걸까.

책을 읽을 때도 처음엔 그랬다. 이 작가가 말하려는게 무엇인가. 하지만 읽다 보니 내 스토리를 써나가는게 중요한 걸 알았다. 미술도 그렇지 않을까. 자꾸 작가의 의도대로 이해해야 제대로 이해한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거기서 벗어나도 된다. 내 스토리대로 작품을 이해하자. 그리고 이런 미술 에세이를 참고하는것, 이것 또한 도움이 된다. 나의 스토리를 넓혀가는 활동으로는 미술에세이 만한것이 없다.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쉽고 재미있다.


1994년 작업 오래된 황금 산 에서 류는 중국인의 미국이주 역사를 표현했다.

p.38


홍류는 중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주한 작가라고 한다. 홍류의 작품 '오래 된 황금 산'은 19세기 중반 미국에서 골드러시 붐이 일었을때 철도건설을 위해 미국으로 온 중국인들의 사고를 표현한 작품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다 수백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를 표현했다. 작가는 두개의 철로를 놓고 철로가 교차되는 지점에 25만개의 포춘쿠키로 산을 쌓아 놓았다. 포춘쿠키 더미는 노동자들의 무덤을 상징한다고 한다. 의미 없이 또각또각 부러뜨리는 포춘쿠키로 작가는 무덤을 표현했다. 포춘쿠키 산을 보고 있노라니 언포춘했던 수많은 노동자들의 절규가 들리는것 같다. 절망스러운 상황을 표현한 홍류의 작품이 후손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는 것이다.


지미 더럼은 자신을 고정된 하나의 주체와 정체성으로 표현하는 것을 기꺼이 거부한다. 다 같은 인디언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고 입체적인 개인으로 한껏 반짝인다.

p.52


표지의 사진은 지미더럼의 '나의 석상인척하는 자화상' 이다.

지미더럼은 미국원주민 출신 작가로 알려졌지만 출신이 문제가 됬다. 미국원주민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미더럼은 이런 논란을 초월한다.

지미더럼이 2004년에 한 퍼포먼스는 관객이 사물을 가져오면 그것을 부수고 확인문서를 써주는 것이었다.

지미더럼의 형식이나 질서를 깨부수겠다는 의지로 느껴졌다.

박보나 작가는 P.57 에서 지미더럼은 '이 모순적인 폭력에 동의하지 않고 새로운 방향을 짚는다' 라고 말한다.

박보나 작가가 소개하는 작품들을 가만히 보다 보니 하나의 공통점이 느껴졌다.

새로운 것들, 기존 질서에 새로움을 던지는 작품들,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주제들 .

지미더럼의 작품이 특히 그랬다. 원주민도 미국인도 아니라고 부정당하는 외로움속에서 그가 행하는 퍼포먼스나 작품들에는 자유로움이나 쿨함또한 느껴졌다.


조은지의 '개농장 콘서트' 는 아주 강력했다.

뜬장에 갇혀있는 개들 앞에서 노래와 연주를 하는 작가의 퍼포먼스인데 연주하는 사람과 그런 사람을 보는 개들의 모습과 그 뒤로 높이 솟아 있는 아파트가 묘하게 놓여있다.

이 작품을 보며 개들의 삶 , 개들을 사육하는 삶, 그리고 그런 환경을 바라보는 작가의 마음이 어떤것일까 생각해보게 됬다. 컹컹 짖는 개들의 뜬장 앞에 선 작가의 노래는 어떠했을까. 마음이 무거워진다.


전혀 상관없는 사물들로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소리가 자연의 음을 대체하는 광경은, 그동안 우리가 진짜라고 믿어왔던 모든 생생한 영상 이미지들이 가짜일수도 있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p.98


박보나 작가의 '코타키나 블루1' 의 작품 에서는 폴리아티스트 이창호씨가 여러가지 사물을 이용해서 자연의 소리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옆방에서 사람들은 들려오는 소리로 여러 자연경관을 상상한다.

내가 실재라고 믿었던 것들이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소리라는것을 사람들이 깨닫게 되는 순간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할까 궁금해졌다.

아 가짜였네 라고 말할까 아니면 아닌데 내가 들은 소리는 진짜 자연의 소리였는데 라고 말할까 아니면 다 사기 라고 말할까. 자기가 듣고 싶은대로 듣고 자기가 생각하고 싶은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싶은대로 말하는 악질 현대인들 몇몇이 떠오른다. 실재로 들은것이라 본것이라 우겨 가짜뉴스들을 생성해내는 무책임한 인간들도 떠오른다.

무엇이든지 만들어낼수 있는 시대다. 인공이 자연을 대체할 수 도 있는 시대다. 우리가 본것 과 들은 것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무엇이 중요할까. 내가 보고 들은것만이 진짜라고 우기는 아집이 결국은 나를 파괴하는 시대지만 사람들은 잘 모른다. 나의 덫이 나를 잡지 않게 되기를. 제발 인정할 수 있는 용기들을 갖게 되길 바란다.

아 뭐지. 박보나 작가의 에세이를 읽다 보니 생각이 자꾸 확장된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을 직접 다 보고 듣고 싶어진다.

태도가 작품이 될때 도 찾아봐야겠다. 그리고 이 책에서 언급된 다른 작가들의 작품도 찾아봐야 겠다.

좋은 책 한권이 주는 굉장한 영향력이란.



#이름없는것도부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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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밤의 애도 - 고인을 온전히 품고 내 삶으로 돌아가기 위한 자살 사별자들의 여섯 번의 애도 모임
고선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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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심리학박사 고선규가 쓴 자살사별자들의 애도모임 기록이다.

처음 지인의 죽음을 접했을 때가 생각난다. 그녀는 푸른 이십대였다. 그녀의 까르르한 웃음을 기억하는 나로선 죽음이 믿기지 않았다. 사람들의 어리둥절이 기억에 남는다. 왜. 도대체 왜

자살사별자들은 의문으로부터 시작한다는 저자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슬프고 참담한 이별과 동시에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에 대한 이유가 아마 가족을 괴롭힐것이다. 죽음에 더해 죽음의 이유까지 받아들여야 하는 가족의 무게는 얼마나 마음을 억누를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저자는 자살사별자들의 상담을 기록했다. 가족들이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이는지 또는 어떻게 이해해가는지 아니면 이해하려고 노력하는지에 대해 말한다.

부모를 잃은 사람이거나 형제를 읽은 사람들이 떠난 가족의 삶을 알아가려고도 하고 고인의 지인을 만나기도 한다. 고인에 대해 말하는것조차 힘들겠지만 가족들의 노력도 이 책에서 서술한다.

자살사별자들의 노력들, 잊으려는 노력이나 또는 잊지 않으려는 노력또한 쉽지 않다. 일터로 돌아가거나 오랜만에 지인을 만난자리에서 가족의 죽음을 어떤식으로 전달할까 때문에 어려워지기도 한다.

여섯번의 상담에 참여한 사람들은 젊은 사람들이다. 이른 나이에 자살 사별자가 된 젊은이들의 마음은 어떤가 감히 알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자살 사별자들이 기억하는 장례식은 산 사람의 잔칫집같은 장례식도 아니고,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례식도 아니다. 낯설고 불편하며 혼란스러운 장례식이다. 그래서 고인을 잘 배웅하지 못하는 장례식이다.

p.71

연두색이 진하지 않아서 처음엔 읽기 힘들었다. 안경을 꼭 쓰고 읽어야만 하는 부분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살 사별자들의 어려운 마음을 읽는것은 이렇게 힘든 일이구나.

쉬운 마음으로 접근할수 없는, 공을 들여야 하는 부분인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분은 임산부에게 주는 핑크 배지처럼 '애도중'이라는 배지를 달고 다니고 싶다고 했다

p.132

위로 하려는 어떤 노력이 가 닿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로라고 아는척하는 주위사람들의 무심함에 마음을 다친 사례들이 나온다. 정말 위로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면 아예 말걸지 않도록 '애도중' 아래 말걸지 마세요 라는 문구 하나더 추가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타인을 위로하는데도 노력이 필요하다. 기다려주는 것 지인의 속도를 이해해주는것이 얼마나 큰 일인줄 모르고 아무말이나 던지는 사람들의 무심함이 속상하다.

가족의 자살로 받은 상처에 주위사람들의 말에 받은 상처까지 난타를 당하고 있는 자살 사별자들의 마음이 많이 신경쓰인다.

떠난 사람을 서로에게 소개하고 그사람을 우리 곁에 초대해 다시 기억하는 것이 '리멤버링' 이며 애도는 리멤버링의 과정이다. 죽음이 삶의 일부이듯, 세상은 묘지위에 있고 죽은 자는 산자의 틈 속에서 영원히 살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애써 지우려 하지 말자.

p263.

마음에 관한 문제는 어떠한 결론도 해결책도 없다. 그저 내 마음이 편한대로 흘러가게 두는것 뿐이다. 조금 더 상처받지 않고 그나마 나은방향으로. 애써 지우려 하지 않는 자살사별자 가족들의 여러가지 노력들을 나의 지인처럼 마음을 집중하여 읽었다. 이들이 이 젊은이들이 제발 각자의 방법으로 이해하고 조금만 더 편안해지길 바란다.

슬픔은 연결의 감정이다. 누군가를 잃은 그 자리에서 사별자는 다시 누군가와 단단하게 연결되어야 한다.

p.270

자살 사별자들의 마음을 이해할수 있는 책이었다. 세상에는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는 책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 자신의 감정을 비워내고 가는 자살 사별자들의 삶을 응원한다.

다시 누군가와 단단하게 연결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이 가장 와 닿는다. 자살 사별자들이 세상과 연결 될수 있게 내 손을 내밀어야 겠다. 나로 인해 그들이 세상과 연결되었으면 한다.

#여섯밤의애도

#고선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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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의 집 - 불을 켜면 빵처럼 부풀고 종처럼 울리는 말들
안희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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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연 시인은 내게 필사의 기쁨을 알려준 시인이다.

시를 힘들어 하는 나는 시를 읽을 때 너무 힘이 든다.

시를 시로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꾸 뜻을 캐기 때문인것 같다.

이 단어는 어떻게 쓰인건지 어떤 것을 함축하고 있는 것인지. 갑자기 이 단어가 왜 나온건지.

제대로 받아들이고 싶어서 자꾸 캐고 분해한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학창시절 시교육이 그랬음이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한 페이지 넘기기가 힘들고 자꾸 그 단어에만 머물다 시집을 덮곤 했다.

어느 날 큰 맘먹고 어떤 서점에서 하는 시집 필사프로그램을 선택하고 내가 고른 시집이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이다.

물론 시집 한 권 필사를 다 마치지 못했지만 삼분의 일이나 완성했다. 너무 읽고 싶은데 자꾸 집중이 안되는 마음 그것이 시에 대한 나의 마음이다. 안희연 시인의 산문집이 나오자마자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산문을 읽으면 내가 미처 읽지 못한 시인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을것 같은 욕심이 생겼다.

코알라에게는 코알라의 잔이 있고 나무늘보에게는 나무늘보의 잔이 있고 나에게는 나에게 어울리는 잔이 있다는 것. 그것이 운명의 한계로 오인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가 잔의 외형이나 크기로 인해 차별당하거나 파괴당하지 않도록 서로가 서로의 규모를 존중하면서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단어의 집 p.25

나에게 어울리는 나의 잔을 찾는 과정 나는 그게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코알라의 행동을 인정헤주고 나무늘보의 속도를 이해해 주는 그리고 나 또한 어울려 잘 살아가면서 나의 잔을 만들어가는 일.

계속 남이 가진 잔들이 신경쓰이고 부러워지는 요즘인데 이 문장에 오래 머물렀다. 안희연 시인처럼 나도 잠시 책을 덮고 생각해 빠졌다. 이거 생각보다 쉽지 않은데. 나의 잔은 왜 이렇게 작은지. 왜 크리스탈이 아닌지. 왜 단단하지 않은지..왜 내 잔속에 채워지는 것들은 이렇게 허술한 것 투성이인지.

어떻게 나를 끌어올려야 할지 모르는 요즘, 계속 실패경험을 하고 있는 요즘 이 문장이 나에게 잠시 깁스 같은 역할을 한다. 마음의 인대가 다친것 같아 한껏 비틀거리고 있다. 빨리 낫기 만을 바랬지만 결국 중요 한게 바뀌지 않으면 나는 또 인대를 다치겠지. '나에게는 나에게 어울리는 잔이 있다는 것' 이 문장이 결국 나에게 깁스가 된것 같다.

" 하지만 날아오른 풍선은 날아가는 시간만큼 다른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 p.29 "

생활은 구체적인 결정과 책임들로 굴러가는 것이고 그래서 엄중할 수밖에 없으니 적어도 소망만큼은 추상의 자리에 두고 싶은 까닭이다.

p.82

작가의 소망은 살짝 추상적이었다. '다정해지기' 나 '알록달록해지기' 라던지. 다소 혼란스러웠다. 내가 알고 있는 계획은 증거로 증명할 수 있는 것들이었는데 다이어트 해서 몇키로그램 빼기 라던지 평균 몇점 올리기 라던지 영어 자격증 따기 라던지. 매해 말에 또 지키지 못했다며 자조하곤 했는데 그리고 그런 숙제와도 같은 계획들은 가뿐하게 이월되곤 했었는데 나를 한계로 몰아가는 계획들이 그 동안 나를 얼마나 옥죄어 왔는가 알게 됬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것 나의 잔을 만드는것 자체가 알록달록 해지기 위해서 아니였던가. 왜 이렇게 수많은 증거들을 수집하고 그 증거들로 내가 열심히 살았다고 증명하려 했었는지. 또 한번 깨닫는다.

"아는 이야기는 언제든 모르는 이야기가 된다. p.94 "


내가 진실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 이면에는 항상 다른 이야기들이 있다. 내가 얼마나 내가 보고 싶은것만 보고 살았는지 듣고 싶은것만 기억하고 싶은것만 기억하고 살았는지에 대한 사유다.

작가는 어릴적 어머니의 교통사고 기억을 끄집에 내는 과정에거 다른 사실들을 알게 된다. 나의 안온한 기억 속에 다른 사람의 희생이 있었던 걸 아는 순간. 얼마나 미안해졌을까 아마 내가 갈색이 되도록 울고 싶어졌을꺼다.

내가 바라보는 면 뒷편으로는 다른 이들의 노고와 희생이 있을 수도 있다. 내가 무심코 받아먹었던 달콤한 음식들 이면에 어떤 고생들이 있었는지 갑자기 더듬어 생각하게 된다.

결국 내가 살아가면서 보다 성실하게 기록해야할 것은 숱한 실패담 사이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비김의 순간들 이 아닐까.

p.156

나는 실패가 더 많은 삶을 살고 있고 앞으로도 크게 성공할 자신도 없다. 그냥 묻어가는 정도로의 승리정도면 된다. 남을 짓밟아 승리하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연달아 패배하고 싶지도 않은데 이런 '비김' 이라는 입장은 나같은 사람들에게 최적의 진단인 듯 하다. 비김이라니 정말 근사한 말이다. 비겼으니 다음에 이기면 되고 지금 진게 아니니 다음에 또 져도 크게 상처 받을것 같지 않은 판정.

앞으로도 이겼어도 비긴것이라고 졌어도 비긴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들이 많아질 것 같다. 욕심없이 늘 비기고만 살고 싶다. 안희연시인의 산문집 여러곳에서 나는 내게 필요한 깁스를 제공 받았다. 비틀 비틀 했었는데

시인의 여러가지 사유들이 나를 지지해준다. 이런 지지를 받는 책 오랜만이다.

(한겨레출판 하니포터1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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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움과 너의 아름다움이 다를지언정
최현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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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 회색표지에 콕콕 박힌 발자국같은 보라색 글자들을 만져봤다. 예쁘다. 책이 예쁘다. 소장하고 싶은 책 표지다.

진한 어둠속에 누군가 보라색 글자들을 쿵쿵 찍고 간것 같다.

식물의 엑스레이 사진같다. 다 들여다보이는. 사람의 속을 투명하게 비춰주는. 누구나 겉모습은 다르지만 엑스레이 사진만은 대동소이 할 듯하다. 재물이나 명예가 엑스레이에 비치지는 않으니까. 그러고 보면 다 비슷한데 왜 우리는 이렇게 아둥바둥하나 라는 도돌이표같은 질문에 봉착한다.

색깔을 뺀 이 표지를 바라보며 이 계절에 눈이 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나무 근처에 날리는 흰 움직임은 생명체일까 눈일까 아니면 붓터치일까. 아니면 누구의 숨일까.



'나의 아름다움과 너의 아름다움이 다를지언정' 뒤에는 어떤 문장이 올까.

서로를 인정하자? 둘다 아름답다? 시인의 단어가 와야 할텐데 정서에 시가 없는 나는 알맞은 문장을 못찾겠다.

시인의 산문은 예쁘다. 한마디 한마디가 곱고 단아하고 예쁘다. 같은 현상을 봐라봐도 시인의 시선은

날뛰지 않고 '자자 진정하고..' 로 마음을 한번 가다듬고 쓰는것 같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아싸 기뻐 를 외치며 모든 문장에 감정을 고스란히 거울처럼 쏟아 놓는 나로서는 시인의 산문앞에서는 조금 주저한다.

시인의 산문을 테이블 위에 놓고 또 말했다. 자자 진정하고 침착하고 흥분 가라 앉히고 화도 들뜸도 좀 누르고 시인의 산문을 읽어보자고. 여긴 나같은 분위기 아니니까는.

고작 여섯 평이었지만, 어떤 우주는 여섯 평으로도 충분했다.

p.18

시인의 우주는 여섯평이었다. 독립을 해서 살았던 여섯 평의 우주에서 시인은 많은 일을 겪는다. 독립은 쉽지 않다. 그냥 몸만 떨어져 나가면 될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지만 경제적으로도 매우 힘들어지고 노동도 겹겹이 다가온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 미처 대처하지 못했던 상황들이 매일매일 한건씩 찾아온다. 사춘기를 벗어나 성인이 됬다고 다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던 치기는 생활 앞에서 무너진다. 세상은 친절하지 않았다는걸 느끼게 된다. 하지만 돌파구를 찾으며 내 세계도 강해진다. 나의 진지를 구축하는일 적이 쳐들어와도 비가 새도 바람이 불어도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내어줄것은 내어주는일, 내어준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일, 그리고 기회를 봐서 내것을 취하는일. 그렇게 내 성을 쌓아가며 영토를 넓히는것. 그런 독립은 여섯평이어도 충분하다.

게다가 시인의 곁에는 불광천이 있었다,

물을 따라 걷는 일은 무한히 지루할 수 있는 동행자와 걷는 일이니까. 물의 방향으로 걸었다.

p.19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에는 관점이 가장 중요하다. 나에게 생긴 일을 어떤 식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날 있었던 나의 비극은 배움이 될 수 있고 나의 희극은 겸손이 될 수 있다. 내가 더 성장하는일, 나에게 다가온 일들을 소화시키는일 그런 일들을 이 글들을 통해 배웠다.

큰 사거리의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차들이 나를 향해 빵빵거리기 시작했다. 놀라서 차를 보니 어떤 운전자가 내 뒤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목줄을 어떻게 끊고 왔으며 언제부터 따라왔는지 모를 커피색 흰 양말 강아지가 아주 해맑게 나를 보며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오다가 어디 개나리 화단에서 구르고 왔는지 들줄기에 노란 꽃잎을 잔뜩 묻히고서는.

p.101

정 없게 버려진 강아지를 우연히 발견하고 작가는 고민한다.

키울 수 있는 형편이 됬으면 고민하지 않았겠지. 가족이 한명 더 생기는 일이니 신중하고 애써 안고 싶은 마음을 누르는 거겠지. 아쉽게 돌아서는 발걸음이 어떻게 떨어졌을까. 봄은 찬란한데 걸음은 초라했을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만남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강아지는 자기와 같이 살 사람의 마음을 알아봤는지 묶어 놓은 줄을 끊고 작가를 따라왔다. 줄을 끊고 따라가는 길은 쉽지 않았을거다. 아직 2개월된 강아지 였으니 다리들이 짧았을거고 느렸을거고 사람을 따라가는 길에 구르고 헛디딜만한 비탈들이 있엇을테니. 필사적인 추격을 작가는 알아봤을것이다.

선물같이 꽃잎을 잔뜩 묻힌 강아지는 그 순간 작가에게로 와서 코코가 된다.

동물을 길에 버리는 마음도 버려진 동물을 외면할 수 없어서 발이 안떨어졌던 마음도 가족이 되고 싶어 구르며 따라갔던 강아지의 마음도 그리고 울컥하며 안았을 작가의 마음도 봄을 지나가는 온 마음이 읽혀진다.





그렇다.

나도 상계동에 살았다. 작가는 지금은 노원 롯데백화점이 된 미도파 백화점을 추억했다.

내가 조금 더 먼저 살았으니 잠시 라떼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내가 처음 상계동에 가서 본것은 노원역이다. 당시 아파트가 들어설 자리에 지어진 모델 하우스를 보러간건지 아파트가 지어질 위치를 보러 간것인지는 기억 나지 않지만 내가 처음 본 기억은 노원역이다. 노원역 뿐이었으니까.

끝도 안보이는 황폐한 땅위에 노원역만 있었다. 그 날은 비가 와서 땅마저 질퍽했다. 그 질퍽한 땅을 걸으며 여기에 아파트가 들어선다고. 라며 믿기지 않는 광경 들을 봤던것.

질퍽하고 아무 것도 없는 넓고 넓은 진흙밭을 봤던 나는 몇년 뒤 아파트만 지어진 상계동에 이사왔고 상가도 거리도 조성되지 않았던 신도시를 정 없게 걸어다녔다. 어느 날 우리동네에 백화점이 지어진다고 아이들이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동네에 백화점이 지어진다니 그것도 미도파 백화점이. 미도파 백화점은 명동에나 가야 볼 수 있었던 고급 백화점 아니었던가. 드디어 백화점이 오픈하는 날, 감히 들아가보지 못하고 그 반짝임 찬란함에 기죽어 한참이나 지나 엄마손을 잡고 들어갔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다렸다는 듯이 노원의 번화가가 만들어졌다.

나와 바슷한 시기의 기억을 공유해주어서 고향친구 만난듯이 반가웠다. 내가 미도파 백화점이 신기해서

상계동의 황폐함을 기억하고 있는 나로서는 이런 새 문물이 신기해서 바라보고 있었을 때 작가는 이 미도파 백화점을 잘 이용하고 즐겼던것 같아 우리가 마치 한 장소에 있었던 건 아닐까 잠시 생각해보았다.


당신에게 첼로는 가고 싶은 곳이었을까요

어쩌면 어딘가에서 아직 첼로를 연주하고 있을까요 나도 언젠가 첼로를 끌어안고 그런 음악을 연주하고 있을까요

첼로를 연주하는 자세는 마치 사람이 사람을 안아주듯이 껴안는 모습이니까요.

P.176

정미경 작가의 '새벽까지 희미하게' 에 나오는 송이 라는 인물은 나무를 안고 충전을 한다. 기운을 받는 행위같은것이다. 커다란 나무를 안는 마음. 나무가 주는 편안함. 그런 순간이 충전이라고 믿는 송이의 마음이 갑자기 떠올랐다.

나무의 향기, 울퉁불퉁한 결, 혹은 냄새 아니면 살아있으되 충고하지 않고 가만히 들어만주는 일방적인 소통에 송이는 위로받았을까 생각했었는데 작가의 시선속에 송이의 마음 또한 생각난다.

앞으로 첼로 연주를 듣고 볼때는 최현우 시인이 떠오를것 같다. 첼로를 사람이 사람을 안는것같다고 표현했던 그 시인은 지금 어디에서 어떤 작품을 쓰고 있을까 라고.

그래서 그렇게 첼로의 소리가 낮았구나. 음 난 괜찮아. 안아줘서 고마워 나도 내소리를 내볼께 하며 낮게 속삭이는 소리같았구나.

첼로 소리마저 다르게 들리게 될것 같다. 또 한번 내 세계가 업그레이드 된다.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안은 작가만의 무게로 이 산문집은 즐겁다. 또 슬프다. 코코를 생각하게 되고 죽은자도 생각하게 되고 이젠 사용할 일 없는 이성에 대한 설렘도 떠올려보게 된다. 부모와 독립과 가난과 추억도 있다. 정의도 있다.

사랑의 자세를 가지고 세상과 모두에게 화평하여지자고 말하는 건 너무나 허무하고 맹랑한 생각이라는 걸 안다. 철없고 우습다. 우리는 각자 하나의 우주고 섞일 수 없는 고유의 세계다. 그러나 언젠가 한 번쯤은 각자의 극장 속에서 상대의 무게를 조금 지탱해주는 저린 어깨가 될 수는 없을까.

P.220

작가가 말한다 나를 잊으면 사랑이 되고 너를 잊으면 이별이 된다고(P.209)

이 문장을 몇번이나 다시 읽는다. 나를 잊고 그리고 너를 잊고 그리고 너를 잊었던 것을 다시 잊고

그렇게 우리는 몇번이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단단해지는 나는 이제 사랑이 두렵지 않다. 너와 내가 다르고 너와 내가 모두 아름답다는 걸 배웠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아름답다.

나의 아름다움과 너의 아름다움이 다를지언정 거기에 우열은 없다. (P.42)

#나의아름다움과너의아름다움이다를지언정

#하니포터

#도서리뷰

#최현우

#최현우시인

#한겨레출판

한겨레출판 서평단 하니포터1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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