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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용복 재판정 참관기 - 330년 전, 울릉도·독도를 놓고 벌인 조선 어부의 국제 소송전! ㅣ 재판정 참관기 시리즈
김흥식 엮음, 위수연 그림 / 서해문집 / 2024년 10월
평점 :
서해문집에서 출판하는 청소년 역사 재판정 참관기 시리즈의 5번째 책은 '안용복' 이다. 330년전, 울릉도 독도를 놓고 벌인 조선어부의 국제소송전이 있던 곳으로 가보자.
안용복은 조선 후기 부산출신으로 1650~60년대생으로, 당시 30대 중반~40대 초반으로 추정된다.
안용복은 무려 세번의 재판을 치른다.
첫번째는 울릉도가 일본땅이라고 주장하는 일본인들에게 끌려가 피고인 신분으로 받은 형사재판,
두번째는 안용복이 울릉도,독도가 조선 영토임을 주장하여 직접 일본에 건너가 제기한 소송으로, 일본어민을 문제삼은 민사재판이자 울릉도 독도 영유권 문제를 공론화한 국제재판,
세번째는 안용복이 정부 허락없이 일본으로 건너가 외교적 소동을 일으킨 데에 대한 고국법정과의 형사재판이다.
교통도 좋지않고 말도 문화도 다른 당시 상황에서 평범한 어부가 겪은 일이라기에는 파란만장하다.
그는 울릉도에 전복과 미역이 많다는 소문에 돈을 벌기 위해 갔다가 잡히게 되는 데 그것이 시작이었다.
이 일은 조선조정도 일본 쓰시마번도 울릉도,독도에 대해 상기시키는 계기가 되며 많은 서신들이 오간다.
그리고 1696년 1월9일.
에도막부는 '일본인의 죽도도해를 금지한다' 는 공식결정을 내리며 일본인의 죽도접근과 어업이 불법행위로 규정되어 죽도=울릉도 는 조선의 영토임을 인정했다.
그런데 4개월 뒤, 그는 뜻을 공유하는 동료 10인과 함께 스스로의 의지대로 다시 일본에 찾아간다. 이번에는 원고이자 조선의 대리인이다.
그는 이때 '죽도도해금지령'이 내린 것을 모르는 상태였는 데, 쓰시마번에서 이를 조선에 통보하지 않고 묵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을 찾아간 일로 안용복은 조선으로 돌아와 사형선고 까지 받지만 그의 행동이 울릉도 영유권을 탈환하고, 일본과의 외교관계를 재설정한 활약상이 있었기에 유배형으로 감해진다.
그후로 조선 조정은 울릉도와 독도의 영유권을 분명히 하며 경계를 강화하는 등 체계적 관리에 돌입한다.
역사를 보다보면 결정적 순간들이 있다.
안용복의 일화는 바로 울릉도, 독도의 결정적 순간이다.
평범한 어부 안용복이 독도에 대해 주장할 때, 그의 말과 행동이 오랫동안 역사에 남아 전해질 줄은 그는 몰랐을 것이다. 정치인도 지식인도 아닌 그는 단지 조선 바다의 어부로서 어떤 자신의 상식대로 행동했다. 그런 그의 기록이 몇몇 역사서에 남아 전해지고 지금까지도 울릉도, 독도 영유권 분쟁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감탄할 만한 일이다.
안용복의 일처럼 가끔은 정부가 아닌 개개인이 큰 일을 하는 경우가 있다. 독도 문제 만큼은 모든 국민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