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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절반을 지나면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 - 흔들리는 오십을 위한 철학의 지도
바르바라 블라이슈 지음, 박제헌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12월
평점 :
동양에서는 오십의 나이를 논어에 나오는 '지천명(知天命)'이라고 부른다. '하늘이 내게 준 소명을 알게 된다' 는 뜻으로 '하늘의 뜻을 안다' 는 말이다.
이 책의 저자도 오십이 되면 철학자가 된다고 하는 걸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십이라는 나이가 되면 그러한가보다.
요즘 오십은 '중년' 이다.
중년이라는 말에서 느껴지듯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도, 마무리하기도 애매하다. 물론, 그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단테
, 톨스토이, 시몬 드 보부아르 조차 50세를 악몽으로 여기고 위기의 시간이라며 힘들어 했던 것을 보면 늙음의 초입에 서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두려움이다. 그 초입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급격히 느껴지고, 모든 인간이 그리고 나도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는 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하늘의 뜻이고 철학자가 되는 이유이다.
철학은 죽음을 배우는 과정이다.
그러나 영생의 삶을 꿈꾼 진시황은 끝이 있었지만 순간을 사는 이는 불멸이다. 여기에 혼돈을 벗어날 답이 있다.
순간을 영원처럼 사는 것!
스피노자는 '후회하지 않으면 자유로워 진다' 고 했다. 그저 매순간 후회없이 산다면 불멸이 아닐까?
중년이면 인생경험이 쌓이고 세상을 보는 눈이 깊고 넓어진다. 그러나 그 전에 자신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고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열심히 살아왔지만 내가 바라던 곳이 아닌 낯선 곳에서 길을 잃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나 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 순간, 남은 삶이라도 진짜 '나' 로 살아갈 수 있다.
살면서 돌아보니 나이를 먹었다고, 오십이 되었다고 다 어른인 것은 아니었다.
나이들수록 욕심이 많아지고 군림하려 드는 이들이 많아서 젊은이들보다도 못한 이들도 많았다. 그런 이들을 보면 안타까워진다. '나이' 가 빛을 발하려면 그만큼 지혜롭고 현명해야 한다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 아집을 부린다면 우물 안 개구리보다도, 갓난 아기보다도 못한 나이가 된다.
이 책을 보며 여전히 내가 가진 욕망과 시기심, 원망, 불안이 떠올랐고 부끄러워졌다. '나잇값' 이라는 말은 거저 주어지는 게 아니었다. 이 얼마나 엄중한 말인지를 늘 생각하고 스스로를 돌아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