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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숙과 제이드
오윤희 지음 / 리프 / 2024년 11월
평점 :
2019년의 제이드는 돌아가신 엄마를 추억한다. 시애틀과 텍사스에서는 보기 드문 아시아 여성이었던 어머니,
다른 외모와 어눌한 영어실력으로 어딜가나 눈길을 끌고 그 시선을 묵묵히 견뎌냈던 어머니.
그 먼나라에서 전쟁고아였던 엄마는 할줄 아는 거라곤 영어밖에 없는 아빠를 따라 미국으로 왔다.
백인과 황인의 혼혈로서 제이드의 삶도 녹록치는 않았지만 엄마는 미국 가족들에게도 인정받지 못했고 친구도 없었다. 그저 교회만이 위안이었다.
딸로써 제이드 눈에 엄마는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었다. 엄마는 아빠의 폭력성에 순종했고, 외도를 하고도 병이나서 돌아온 아빠를 간호했다.
그리고 우리는 1971년 부터 영숙의 발자취를 함께 걷는다. 제이드가 모르는 영숙의 과거에는 아빠 존을 마지막까지 챙기는 이유도 있다. 제이드가 추억하는 어머니와 어머니가 아닌 영숙 그 자체의 삶은 많이 다르다.
1971년 봄날,
영숙은 또래보다 작았던 열 다섯 나이에 식모살이를 들어가 3년을 살았지만, 그 집 아들의 강간시도에 도리어 꼬리를 쳤다며 쫒겨난다.
그 시절 가난한 계집의 삶은 으레 그러했다. 식당에서 일한다고 가보니 흘러 들어간 곳은 미군 기지촌 성매매업소다. 살아있는 사람들만 오는 지옥에 자살한 여자의 옷을 입고, 수치심도 아픔도 잊게 해주는 알약을 받아 먹으며 영숙은 그렇게 삶을 이어간다.
영숙으로 상징되는 그곳 모든 여성들의 삶은 지옥이다. 전쟁과 가난은 가장 약한 여성과 아이들을 죽음보다도 못한 지옥에서 살게 한다.
존은 영숙을 그 지옥에서 나올 수 있도록 해주었고 잠시나마 엄마로써, 아내로써 평범한 여인의 삶을 살도록 해주었기에 그녀는 많은 것을 참고, 순종하고 살았었나 보다.
한국 현대사는 아픔의 역사다.
죽음조차 흔했던 때, 먹고 산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했던 시절에는 어느 곳이고 인권이니 하는 배부른 푸념은 없었다. 그래서 가난한 나라, 기지촌 양공주라 불리며 천대받던 그녀들의 사연이 시리도록 마음아프다.
그저, 다시는 이런 역사가 반복되지 않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