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현수 작가의 첫 단편소설집 '대리인' 이 나왔다. 총 7편의 임팩트있는 단편이 모여있다. 한영인, 이성모 문학평론가들이 해설과 추천사를 남겨 주실만큼 신뢰하시는 작가라서 그의 단편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다. 역시나 단편이 주는 울림과 여운이 가시질 않는다. 가장 인상깊었던 작품으로 나는 <대리인>과 <팝업창> 을 꼽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현대인의 부조리와 불편함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대리인> 은 '윤과장, 그냥 모른 척하고 있어' 라는 말로 모든 것을 설명한다. 알아도 모른 척해야 한다고 말하는 뱀의 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알거나 알려고 하면 사직서를 내야하는 곳이 회사다. 오히려 그들은 피해자의 위치를 선점하며 눈감는다. 허수아비 같은 존재지만 그 자리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은 많다. 선택받은 허수아비는 꾸준히 콩고물을 받아 먹을 수 있다. 많은 이들은 허수아비를 선택한다. 허수아비는 안전하고 안락하다. 그러나 간혹, 자신이 진흙탕으로 걸어들어 갈 것을 알면서도 위험을 감수하고서 뛰어드는 사람들이 있다. '모른 척' 할 수 없었던 사람들, 그들의 선택을 응원하지만 그들이 앞으로 짊어져야 할 짐들이 뻔히 보여 안타깝기도 하다. <팝업창> 역시 또 다른 현대인의 삶을 여실히 보여준다. <대리인> 의 윤과장이 허수아비의 삶에 괴로워했다면 <팝업창>의 상환에게는 배부른 소리로 들렸을 것이다. 용기도 가진 자들만이 낼 수 있다. 어디까지 떨어져야 하는 지도 모르는 밑바닥에서는 무모하고 염치가 없으며 수치가 일상이다. 자신을 막다른 곳까지 내모는 상환이라면 허수아비 자리는 감지덕지다. 상환의 이야기는 열린 결말이지만 우리는 결말을 알 것같다. <대리인> 의 윤과장 이야기에는 미세하게나마 희망을 꿈꿀 수 있지만 <팝업창>의 상환에게는 그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다. <대리인>과 <팝업창>은 서로 다른 이야기지만 하나의 이야기로 연계된다. <대리인>의 수많은 뱀의 혀들이 만든 세상에 상환같은 이들이 살기 때문이다. 슬프고 안타깝다. 누구나 막다른 골목의 끝, 아포리아의 세계까지 밀려날 때가 있다. 내가 윤과장이라면, 내가 상환이라면 그 순간, 우리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