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1980년 마리즈의 아버지 정해용이 세상을 떠나면서 시작한다. 그녀가 아버지를 추억하나 싶더니, 곧 바로 1914년 프랑스에서 일어난 전쟁으로 황폐해진 지역 복구를 위해 작업하러 온 한국인 노동자들의 사연을 찾는 2002년 김현우의 이야기로 흘러간다. 그 노동의 현장에 정해용이 있었다. 유학생이었으나 어쩌다 프랑스까지 일하러 온 해용의 사연과 그가 고국에 남긴 연인 단옥의 슬픈 사연이 있다. 그 시절 사람들의 이야기는 하나같이 너무 아프다. 더군다나 단옥처럼 독립운동가 옆에 있던 여인들의 삶은 왜 이리 아픈 지. 자식과 남편의 모진 고생과 죽음을 감내하며,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인생에 눈물이 난다. 낯선 나라 프랑스에서 해용의 삶도 매일매일이 고달프고 한치 앞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무거운 짐은 상하이를 떠나 프랑스로 오는 날, 일본군에게 쫒기던 이가 해용에게 건넨 가방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해용은 그 일로 오랜 시간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린다. 해용은 그저 고향이 그립고 단옥이 그리웠을 뿐이다. 세상은 평행이론 처럼 흘러가는 것 같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일제에 저항하다 죽고 도망다니던 이들과 객지에서 이방인으로 생을 마감한 이들이 있었듯, 시대가 변해 독재시절에도 정권에 반대하던 현우 형 같은 사람과 영원히 피난민으로 불안하게 산 현우의 아버지도 있었다. 시간은 흘렀어도 여전히 그 영역의 이들은 21세기가 된 지금도 존재한다. 격동의 시대를 보낸 이들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파도처럼 휩쓸렸다. 그저 평범하게 사랑하며 살고 싶었을 뿐인데, 세상은 그들 한사람 한사람을 이용도구로 여겼다. 조선의 사정이 가장 안 좋았지만 그것은 왠지 조선인도 일본인도 프랑스인도 비슷해보인다. 기대보다 더 멋지고 깊이가 있는 책이었다. 역사를 바탕으로 하지만 현대를 아우르고 인간의 복잡한 내면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좀더 주목받아서 많은 이들이 내가 느낀 감흥을 같이 느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