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 - 스리 라마나 마하리쉬의 가르침. 개정판
데이비드 갓맨 지음, 정창영 옮김 / 한문화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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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 라마나 마하리쉬가 깨달음에 이르는 최고의 방법으로 권하고 있는 '참자아 탐구'라는 것은 결코 쉽지가 않다. 그 방법에 대하여 라마나 마하리쉬는 할 수 있는 한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지만, 수행의 틀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특히 나와 같은 완벽한 명상 초보자에게는 더- 여러 번 읽어 봐도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만 들 것이다. 명상 입문서들을 뒤적거리면서 나는 확실히 참자아 탐구는 명상의 최고단계라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 어려워 보이는 참자아 탐구도 하다 보면 요령을 알게 된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밀어붙이는 것이다.

스리 라마나 마하리쉬는 '그대의 가슴 속에 신의 빛으로 가득한 무한한 공간이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을 어떻게 잊어버릴 수 있을까. 이 책을 읽고 충격과 감동을 받은 후에는 결국 그 가르침대로 따르고 행할 수 밖에 없다. 느낄 수 있는 자라면 모두가 그러할 것이다.

이 책은 분명히 초보자를 위한 명상입문서는 아니다. 그러나 그 가르침은 실용적이다. 명상이 몸에 익지 않은 초보자를 위한 입문서로는 민정암의 '우리는 명상으로 공부한다'를 추천한다. 대입 수험생을 위한 집중력과 명상 안내서이지만, 나는 명상입문서로 그보다 더 좋은 것을 보지 못했다.

몸과 숨과 마음의 단계를 밟아서 명상을 생활화하고 참자아 탐구로 자신이 무엇인지를 깨우쳐 나간다면, 모든 구도자들의 꿈인 '이 생에서 해탈한다'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을까 하고 감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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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미에 PART 2 - 이토준지 공포만화 콜렉션 4
이토 준지 지음 / 시공사(만화)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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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사랑하는 남자들로부터 토막살인을 당하지만 다시 살아나는 절세미녀 괴물 토미에. 언제 죽임을 당할지 모르는 운명임에도, 늘 뻔뻔하고 제멋대로인 이 여주인공은 묘하게 매력적이다. 

토미에를 사랑하는 남자들이 그녀의 몸을 자르고 싶어한다는 설정은 남성이 여성의 몸에 대해 가지는 욕망 즉 성욕의 가학성이 만화적으로 과장된 것이다. 여자 캐릭터들도 토미에의 매력에 끌려들고 그녀의 말의 권위에 사로잡히지만 토미에를 토막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살인의 가해자들은 죄를 저지른 후 죄의식에 발광하지만 피해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살아나서 복수를 하고, 자기를 죽인 남자의 시체를 파먹고 새로운 몸으로 부활한다.

허영심 많고 겸손이라고는 모르는 이 미녀가 매력적인 것은 그녀가 살인의 대상이 아니라 철저히 자기 욕망의 주인으로서만 살아가기 때문이다. 토막나 죽는 것 따위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남자들을 써먹는다. 대상성보다는 주체성이 부각된 여성캐릭터를 남성만화에서 만나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인데, 그 주체적인 여성캐릭터를 대상으로 포획하는 행위가 남성들의 살인이라는 것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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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위한 변명 - 구도의 춤꾼 홍신자의 자유롭고 파격적인 삶의 이야기
홍신자 지음 / 정신세계사 / 199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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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삶의 치열함만큼 굉장한 흡인력을 가진 책이었다. 한달음에 읽어내려가다가, 뒷부분의 어느 한 곳에서 시선이 멈췄다. "이런 동성애자들을 딱히 건강하고 정상적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단적으로 병적이라고 할 수만도 없다."

동성애자로서 내가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말은 '비정상이다' 라는 말이다. 이 말은 동성애자는 자연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고, 지구의 아들과 딸이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들이 아무리 생명과 자연을 사랑한다고 해도 동성애자는 자연을 거스르는 변태라는 의미가 담긴, 어쩌면 우리들에게는 짐승이라는 욕설보다 더 비참한, 냉혹한 말이다.

동성애자를 건강하고 정상적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병적이라고만 단정할 수도 없다는 말은 결국 '이성애자만이 정상적이고 건강하다'의 동어반복이다. 홍신자는 이 말에 이어 이성애만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뜻의 언설을 몇번 더 계속한다. 인도에서 3년간의 뼈를 깎는 고행을 거쳐서 공(空)을 체험한 수행자라고 해도, 뼈속 깊이 뿌리박힌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영혼이 맑고 자유로워 돌이 웃는 모습까지 보인다는 이런 사람에게도- 진정으로 서로 사랑하는 모든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며, 사랑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정상이라는 건강한 믿음(그 믿음이 건강하지 않다면 대체 무엇이 건강할 것인가?)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말인가? 나는 절망을 느꼈다. 다른 인간의 예술세계와 구도역정에 관한 책에서, 나를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게 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으므로 그 절망은 깊었다. 내가 아무리 나를 보지 않으려고 해도 나는 도처에서 나를 발견한다. 사람들에게서 인정받지 못했던 동성애자인 나를 내가 외면해 보려고, 깨달음에 이르려 수행을 하고 '마음은 없다' '에고는 없다. 나와 너의 분리는 허상이다'라는 선지자들의 말씀을 믿어 나를, 내 마음을 없애려고 부단히 노력해왔다. 이 책을 읽었던 것도 에고를 부수고 나에게서 해방되는 길을 더 알기 위함었다. 그런데, 아무리해도 나는 여기 이 자리에 있고, 이 나에게서 도망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깨달은 수행자도 이러할진대, 수행은커녕 자기 마음조차 들여다보지 않으려고 하는 수많은 세속의 인간들은 그 교만과 편견이 얼마나 뿌리깊은 것이려나...과연 세상이 변할 수나 있을까... 내가 소외받는 것도, 나의 분노와 슬픔도 세상처럼 변함이 없는 것인가... 나는 책을 손에서 채 놓지 못하고서 잠깐을 울었다.

짐승이라는 소리를 듣든 비정상적이고 병들었다는 소리를 듣든 나는 살아있는 인간, 인간이다. 그러므로 내가 죽을 때까지 바뀌지 않을 세상의 부조리를 보며 절망하든지 나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며 희망을 가지든지 어느 쪽인가를 선택할 권한은 내게 주어져 있는 것이다. 좋은 세상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라는 앞서 깨달은 구도자들의 말을 믿으면서 나는 세상의 어둠보다 내면의 빛을 쳐다보기로 결심했다. '나는 여성의 몸으로 붓다가 되리라'에서, 깨달음을 향해 매진하는 남성 승려들의 성차별적 사고 때문에 소외당하고 절망하는 여성승려들의 이야기를 읽었던 게 기억났다. 남성들이 영원과 무한을 향해 달려나가면서도 무의식에 뿌리박힌 성차별적 사고를 버리지 못하는 것처럼 이성애자들 역시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무의식 속에 갖고 있을 터였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거였다. 홍신자든, 내 주위의 누구든.

타인의 무의식을 내가 어쩌지 못한다. 나는 나만을 변화시킬 수 있을 따름이다. 내가 패배하지 않는 방법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열정과 자유를 가지는 것 밖에는 없다. 인도에 가서 고행은 하지 않겠지만 나는 한없이 자유롭고 순수하게 살아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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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7 - 애장판, 완결
CLAMP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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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일학년땐가 이 만화를 참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난다. 얼마 전 이 만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읽어보았다. 사람들의 사랑을 파괴하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불가능한 세상을 만드는 폭력적 권력의 실체가 사실은 사랑이었다는 것은 현실에서는 물론 어느 사회를 통해서도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는 만화적 허구다. 권력에 저항하며 사랑을 유지하려는 인간의 몸짓과 권력에 복종하며 힘을 아름다움으로 받드는, 그리하여 그 복종 때문에 자신의 사랑마저 파괴하고 마는 인간의 나약함을 병립적으로 보여주면서 끝내 살아남는 것은 사랑이라는 결론을 내리지만 그 결론에 수긍하기에는 뒷맛이 씁쓸하다. 권력이 결국 사랑에 의해 발생되고 폭력이 사랑을 사수하려는 시도라면, 사랑을 파괴하는 폭력이나 그것에 저항해 사랑을 유지하기 위한 싸움이나 둘 사이에 가치적 차이는 없어지게 된다. 권력은 어느 것이건 타인을 지배하려는 욕망에서 기인하며 결코 사랑에서 비롯할 수는 없다. 권력이 사랑에서 비롯했다는 '성전'의 허구는, 결국 권력을 전복시키려는 시도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패배주의의 다른 표현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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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법 제1조 1
박무직 지음 / 아선미디어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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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좀더 큰 판형으로 하는 편이 좋았을 것이다. 여성의(성판매 여성의) 나체가 더없이 아름답고 섹시하게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판매 여성의 입장에서 세상의 부조리를 고민하겠다는 의도로 그려졌지만, 성적으로도 풍부하게 표현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여체의 묘사가 너무나 훌륭하다. 그런데 그 점 때문에 작품의 본래의도는 퇴색되었다. 성적인 풍부함(그 풍부함은 물론 성구매 남성만이 향유할 수 있는 것이다)을 위한 몸의 노출은 부조리한 세상을 몸을 팔며 생존해야 하는 성판매 여성의 고뇌와 합치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만화가 사회과학 서적이 아닌 한 그 불합치가 비난의 대상은 되지 않는다.

작가가 일년간이나 고민해서 만들었다는 '강간씬'을 박무직 자신은 자랑스러워 하고 있는 것 같다. 허나 여성들 중에 이 강간씬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폭력적이지만 성적 쾌감을 불러일으키지 않'게 하기 위해서 최대한 폭력적으로 묘사되었고 피해자가 얻어맞는 소리와  비명을 지르는 말풍선도 많다. 강간을 성적쾌감의 요소가 아닌 사람에 대한 '폭력'으로 전달하기 위해 이렇게 많은 장치들이 필요하다는 것이 경악스럽다.

원작인 영화가 어떠한지는 모르겠지만 이 만화는 잘 만든 만화다. 소수자에 대한 박무직의 애정과 문제의식도 높이 사고 싶다. 하지만 나는 이 만화에서 이 만화가 문제화하지 않은 다른 부조리와 현실의 문제들을 발견한다. 그것은 소수자인 나의 문제의식이며, 인간에 대한 애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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