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위한 변명 - 구도의 춤꾼 홍신자의 자유롭고 파격적인 삶의 이야기
홍신자 지음 / 정신세계사 / 199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저자의 삶의 치열함만큼 굉장한 흡인력을 가진 책이었다. 한달음에 읽어내려가다가, 뒷부분의 어느 한 곳에서 시선이 멈췄다. "이런 동성애자들을 딱히 건강하고 정상적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단적으로 병적이라고 할 수만도 없다."

동성애자로서 내가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말은 '비정상이다' 라는 말이다. 이 말은 동성애자는 자연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고, 지구의 아들과 딸이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들이 아무리 생명과 자연을 사랑한다고 해도 동성애자는 자연을 거스르는 변태라는 의미가 담긴, 어쩌면 우리들에게는 짐승이라는 욕설보다 더 비참한, 냉혹한 말이다.

동성애자를 건강하고 정상적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병적이라고만 단정할 수도 없다는 말은 결국 '이성애자만이 정상적이고 건강하다'의 동어반복이다. 홍신자는 이 말에 이어 이성애만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뜻의 언설을 몇번 더 계속한다. 인도에서 3년간의 뼈를 깎는 고행을 거쳐서 공(空)을 체험한 수행자라고 해도, 뼈속 깊이 뿌리박힌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영혼이 맑고 자유로워 돌이 웃는 모습까지 보인다는 이런 사람에게도- 진정으로 서로 사랑하는 모든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며, 사랑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정상이라는 건강한 믿음(그 믿음이 건강하지 않다면 대체 무엇이 건강할 것인가?)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말인가? 나는 절망을 느꼈다. 다른 인간의 예술세계와 구도역정에 관한 책에서, 나를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게 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으므로 그 절망은 깊었다. 내가 아무리 나를 보지 않으려고 해도 나는 도처에서 나를 발견한다. 사람들에게서 인정받지 못했던 동성애자인 나를 내가 외면해 보려고, 깨달음에 이르려 수행을 하고 '마음은 없다' '에고는 없다. 나와 너의 분리는 허상이다'라는 선지자들의 말씀을 믿어 나를, 내 마음을 없애려고 부단히 노력해왔다. 이 책을 읽었던 것도 에고를 부수고 나에게서 해방되는 길을 더 알기 위함었다. 그런데, 아무리해도 나는 여기 이 자리에 있고, 이 나에게서 도망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깨달은 수행자도 이러할진대, 수행은커녕 자기 마음조차 들여다보지 않으려고 하는 수많은 세속의 인간들은 그 교만과 편견이 얼마나 뿌리깊은 것이려나...과연 세상이 변할 수나 있을까... 내가 소외받는 것도, 나의 분노와 슬픔도 세상처럼 변함이 없는 것인가... 나는 책을 손에서 채 놓지 못하고서 잠깐을 울었다.

짐승이라는 소리를 듣든 비정상적이고 병들었다는 소리를 듣든 나는 살아있는 인간, 인간이다. 그러므로 내가 죽을 때까지 바뀌지 않을 세상의 부조리를 보며 절망하든지 나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며 희망을 가지든지 어느 쪽인가를 선택할 권한은 내게 주어져 있는 것이다. 좋은 세상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라는 앞서 깨달은 구도자들의 말을 믿으면서 나는 세상의 어둠보다 내면의 빛을 쳐다보기로 결심했다. '나는 여성의 몸으로 붓다가 되리라'에서, 깨달음을 향해 매진하는 남성 승려들의 성차별적 사고 때문에 소외당하고 절망하는 여성승려들의 이야기를 읽었던 게 기억났다. 남성들이 영원과 무한을 향해 달려나가면서도 무의식에 뿌리박힌 성차별적 사고를 버리지 못하는 것처럼 이성애자들 역시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무의식 속에 갖고 있을 터였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거였다. 홍신자든, 내 주위의 누구든.

타인의 무의식을 내가 어쩌지 못한다. 나는 나만을 변화시킬 수 있을 따름이다. 내가 패배하지 않는 방법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열정과 자유를 가지는 것 밖에는 없다. 인도에 가서 고행은 하지 않겠지만 나는 한없이 자유롭고 순수하게 살아가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