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메타버스를 단순한 가상의 세계가 아닌 현실과 연결될 수 있는 세계로 바라보고 있다.
인간의 감각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시뮬레이션 하고, 현실의 정보를 디지털 정보로 변환하고 그 반대의 작업들을 해낼 수 있게 되었을 경우에 어떤 사건들이 벌어질 수 있을까에 대한 지극히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상상을 보여주고 있다.
DNA 정보가 TCGA의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고, TCGA의 배열과 중첩이 한 생명체의 모든 정보들을 담고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언젠가는 모든 DNA를 디지털 정보로 치환해 저장할 수 있는 세상이 올 수 있다는걸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상상을 2권에서 풀어내고 있다.
실제로 이 책에 나온 것처럼 사이버 세상의 바이러스가 현실의 바이러스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CRISPR(유전자 가위) 기술이 만들어져서 DNA를 편집할 수 있게 되었다는걸 감안하면
기존에 무해했던 바이러스를 사이버 세상의 바이러스가 가진 디지털 정보에 기반해 조작할 수 있을 것이고,
동일하지는 않지만 디지털 세상의 바이러스가 가진 특성을 현실에서도 만들어낼 수 있을 지 모른다.
소설은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이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현실은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을까?
블랙선 앞에서 스노크래시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바이러스와 마약과 종교가 무슨 차이가 있냐고 이야기했던 1권의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가 이해되었다.
그리고 그 말이 가지는 무서운 의미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현실에서 종교가 어떤 의미인지, 그게 마약이나 바이러스와 무슨 차이가 있는지...
어쩌면 사람의 현실 인식을 조작하고 행동과 생각을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는 정말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사실 이런 복잡한 이야기보다는 작중에 등장하는 초소형 컴퓨터와 현실과 연결되는 메타버스를 좀 더 집중해서 다시 살펴봐야 할 것 같다.
현재 초기단계인 메타버스를 30년 전에 예측했던 작가가 설명하는 메타버스의 발전된 모습은
아마도 향후에 현실화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이고,
작가가 이야기한 초소형 컴퓨터도 현실화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이다.
현실의 발전 방향에 대해 깊이 있게 예측할 수 있다면, 우리는 기회를 잡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속물적인 생각도 들었다.
이 작품을 현재에 읽으면서 재미는 사실 좀 덜했다. 이미 경험해본 것, 혹은 경험해볼 가능성이 높은 것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으니까.
그렇지만, 30년 전 작품이라는 것을 감안할 수록 놀라운 것 투성이였다.
만약 30년 전에 이 작품을 읽었고, 그 이후에 지금의 세상을 봤다면 아마 이 책을 예언서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혹시라도 이 작품을 읽고 작가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닐 스티븐슨의 최근작인 세븐이브스 시리즈를 꼭 읽어보기 바란다.
장대한 스케일의 인류 멸종 스토리를 흥미로운 역사서처럼 풀어주는 소설이다.
너무 현실적이라 소설을 읽는 동안 지구로 오는 소행성 정보들을 찾아봤을 정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