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셔스
사파이어 지음, 박미영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나는 열 두살에 아버지의 아이를 낳았다
라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열두살에 아버지의 아이를 낳은 소녀의 이야기.

세상엔 참 이해하기 힘든 일들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 
소설 <프레셔스>는 상식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비상식적인 일을 온몸으로 겪은 흑인소녀의 이야기다. 비상식의 한가운데서 가장 하찮고 천한 취급을 받은 주인공의 이름은, 아이러니하게도 ’프레셔스’이다. 귀하고 값비싸고 소중하다는 의미의 ’프레셔스’. 
 

한 남자애가  나를 못생겼다고 놀렸다. 웃길 만큼 못생긴 얼굴,
그애가 말했다.
"클레리스는 진짜 웃기게 못생겼어." 그러자 그 친구가 맞받아쳤다.
"아냐, 저 뚱보는 눈물나게 못생겼어."

프레셔스는 뚱뚱하고 못생긴, 부모의 폭행과 학대에 시달리는 흑인소녀다.
12살에 다운증후군 딸을 낳았지만 그 아이를 딸이라 해야 할지 동생이라 해야 할 지 알 수 없다.
아버지의 아이이기 때문에. 절대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엄마는 거대한 고래처럼 소파를 차지한 채 프레셔스를 부리고 학대한다. 




나는 덩치가 크고, 말하고, 먹고, 요리하고, 웃고, 텔레비전을 보고, 엄마가 하라는 일은 다한다.
하지만 사진을 찍어 뽑아보면 나는 보이지 않을 거다.
아무도 나를 원하지 않는다.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내가 어떤 존재인지, 사람들이 날 뭐라고 하는 지 알고 있다.
사회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 닦아서 치워버리고, 벌을 주고, 일을 던져 주어야 할 못나고 시커먼 기름때.

지금 프레셔스는 두번째 아이를 임신 중이다.  ’임신은 내 잘못이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프레셔스와 달리 세상은 그녀의 잘못이라 손가락질한다. 프레셔스는 다니던 학교에서 정학을 당하고 임신 7개월의 부른 배를 안고 대안학교에 다니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를 레인이라 불러도 좋아"라고 말하는 레인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읽는 법도 쓰는 법도 몰랐던 프레셔스에게 새로운 날들이 시작된다.



작가란 전달하려는 메세지가 있어야 하며, 독자의 역할은 그 메세지를 가능한 한 철저하게 해독하는 거라고
선생님은 얘기했다. 훌륭한 독자는 바로 너 같은 사람이야. 프레셔스.
점수와 빈칸 채우기는 걱정하지 말고, 그냥 읽고 쓰렴!

단 한개의 단어조차도 제대로 쓸 줄 모르던 프레셔스는 레인 선생님의 도움과 응원을 받아가며 글을 쓰기 시작한다.
옆에 두지 못하는 첫 아이에 대한 슬픔을, 두번째 아이 압둘에 대한 사랑을, 매일 아침 자신의 느낌을, 그리고 미래의 꿈을 써나간다.
마치 영화 <프리티 우먼>의 여주인공 줄리아 로버츠가 형편없는 거리의 아가씨에서 매력 넘치는 우아한 귀부인의 모습으로 변신하는 장면처럼, 프레셔스의 형편없는 알파벳이 감정을 품은 글로 서서히 변신한다. 영화의 그 장면처럼 ’프리티 우먼 워킹 다운 더 스트릿’ 하는 경쾌한 배경음악이 들리는 것도 같다.


프레셔스의 불행은 아버지의 두 아이를 낳고, 엄마의 모진 학대를 이겨내야 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참 옹골지게 불운한 소녀다.
마지막 불행이 자신의 두 아이를 비껴갔다는 사실을 인생 최초의 행운이라 여길 만큼.
이제 그녀는 글을 쓰며 꿈을 꾼다. 



평범한 삶이란 무엇일까? 어머니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삶.
학교 끝나고 친구들이 놀러와서 텔레비전을 보고 숙제를 하는 삶.
엄마의 외모가 정상적이고 엄마가 냄비로 내 머리를 때리지 않는 삶.
두번째 기회에선 내 환상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첫번째 기회는 엄마와 아빠한테 가버렸으니까.

오프라 윈프리가 ’세상의 존재하는 모든 프레셔스를 위한 책’이라 평했다는 광고문구가 인상적이다. 책을 읽으며,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이 여기가 아닐까,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들이 이들이 아닐까 생각했기에 경제적이로든 사회적으로든 이들에게 꿈을 이룬다 혹은 성공하다 라는 단어는 결단코 어울리지 않았다. 성공은 커녕 평범한 삶조차도 힘겨워 보였다.
하지만 ’결단코’라는 단어는 ’결단코’  함부로 써서는 안된다.
비슷한 불행을 당당하게 아니 그깟 불행 따위하며 이겨내고 우뚝 선 오프라가 있지 않은가.
그래서 미국인들이 그녀에게 그리 열광하는 구나 공감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얘기한 세상의 모든 프레셔스에 자신도 포함되었음을, 모든 프레셔스가 자신처럼 힘을 내기를 바라는 진심이 전해진다.




모든 풀잎의 잎사귀 하나에도 
그 위에 몸을 숙이고 "자라라 자라라"하고 
속삭여주는 천사가 있다                                - 탈무드-

책의 서두에 실린 탈무드의 잠언처럼, 프레셔스에게도 몸을 숙이고 속삭여주는 천사 있음을 그녀가 기억하길 바란다.
잠시 그녀의 천사가 잠들때, 천사 대신 속삭임을 부탁받은 이가 어쩌면 나였는지 기억하려 한다.
세상의 모든 ’프레셔스’가 그 이름처럼 ’귀해지는’ 그 날이 오길, 그런 세상이 오길 바라며
누군가의 잠든 천사를 대신하는 일을 잊지 않았는지 돌아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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