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일의 레시피 키친앤소울 시리즈 Kitchen & Soul series 1
이부키 유키 지음, 김윤수 옮김 / 예담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49일은 세상을 떠난 이가 새로운 생을 부여받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49일 동안 망자는 생전의 업에 따라 
다음 세상에서의 인연을 기다리고, 남은 자는 정성을 다해 재를 올려 부디 좋은 곳으로 가기를 기원합니다. 
그렇다면 그 49일동안 떠난 이의 영혼이 아직은 우리 곁에 있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해 봅니다. 
아직은 우리의 모습을 지켜보고, 아직은 우리의 소리를 들을 수도 있겠구나 하고 말입니다.
갑작스러운 이별일지라도 그 시간동안, 미처 못한 할말을 하고, 남아있는 사랑을 보여줄 수 있겠네요.
그리 생각하면 49일은 떠난 이와 남은 이 모두가, 새로운 생을 부여받고 적응하는 기간이겠군요.

<49일의 레시피>는 아주 일방적인 이야기입니다.
떠난 이와 남은 이가 공평하게 치유되고 극복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기를, 부디 좋은 생으로 태어나기를 바라는 남은 이의 간절한 소원이 아니라
부디 행복하기를, 부디 상처를 딛고 일어서기를 바라는 떠난 이의 애틋한  바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떠난 이의 이름이 ’엄마’였으니, 그 애틋함은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지은 지 40년이 되는 목조 이층집은 최근에 바람도 없는데 기둥과 천장에서 
끊임없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집도 울고 있다.


집의 안주인 오토미가 일흔한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이제 세상에 남겨진 가족은 남편 아쓰타와 딸 유리코 둘 뿐입니다. 그날 아침, 아쓰타는 오토미가 싸준 도시락을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소스가 배어나온다고 타박을 하면서 말입니다. 남겨진 도시락을 손에 들고 서있던 오토미의 쓸쓸한 표정은,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 되었고 남편 아쓰타에게는 멍에가 되어 남았습니다.
오토미가 떠난 뒤 2주, 남편 아쓰타는 우유만 마셔가며 놓지 못하는 생을 이어가고 있으며, 딸 유리코는 남편 히로유키와의 이혼을 결심하며 집으로 돌아옵니다. 서로에게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하는 부녀만의 집에, 열아홉살 소녀 이모토가 등장하며 한줄기 햇살같은 빛이 스며들기 시작합니다. 이모토는 오토미의 부탁으로 49일의 기간동안 가족을 돌보며  오토미가 남긴<49일의 레시피>를 공개하고, 남은 가족은 또 한번 「옴마」의 배려에 감동하게 됩니다. 

「옴마」가 남긴 레시피에는 버터가 녹아내리는 고소한 향이 환상적인 라멘 요리법과 스치기만 해도 반짝반짝해지는 청소법, 쫓아버리고 싶은 손님에게 내놓으면 효과만점인 차, 기운이 나는 수프 등 「옴마」의 빈자리를 메울 비법들이 빼곡합니다. 그리고 「옴마」는 차분한 법회보다는 모두 즐겁게 마시고 노래 부르는 대연회를 열면 기쁘겠다는 내용의 <49일의 레시피>를 남깁니다. 남은 가족은 옴마의 레시피를 하나하나 따라하며 조금씩 조금씩 기운을 찾아갑니다.

 

 
조금씩 마음의 기운은 회복되어가지만, 아이가 없는 아내와 아이를 가진 애인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남편 히로유키를 지켜보는 유리코는 쉽게 평온을 찾지 못합니다. 쉽게 일어서지 못하는 딸,  ’사랑이 뭔지 모르겠다’는 딸에게 아쓰타는 제대로 된 대답을 들려주고 싶어 열심히 생각합니다. 그리고 대답을 들려주지요.



"네 마음이 얼마나 쓸쓸한지는 잘 알아. 하지만 그건 다른 누구도 채워주지못하는 거야. 
네 연표의 빈 곳은 네가 움직이지 않으면 메우지 못해."


책의 소재 자체가 엄마의 죽음이라는 슬픈 이야기입니다.
「옴마」의 49재 연회를 마칠 때까지, 눈물을 쏟을뻔한 장면이 불쑥불쑥 튀어나오지만 그런대로 담담할 수 있었는데 아쓰타의 애틋한 부정 앞에서는 도저히 담담할 수가 없어서 그만 눈물이 쏟아졌네요.

 

가라, 라고 아쓰타는 소리를 높였다.
"마음 쓰지 마라, 유리코. 아빠한테까지 마음 쓰지 마라."

인간이 느끼는 절망 중 배우자를 잃은 절망이 가장 크다고 하는데 그 극한의 감정도 자식의 아픔을 보는 일보다는 견딜만 한 걸까요? <49일의 레시피>는 엄마가 남긴 레시피이지만, 꼭 우리네 아버지를 닮은 아쓰타의 깊은 부정을 담고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 나오는  유명한 대목이지요. 
<49일의 레시피>는 남은 가족의 아픔과 슬픔이 치유되기를 온 우주가 도와주는 이야기입니다. 
49일동안 정성을 다해 도와준 노랑머리 이모토와 브라질 청년 하루미의 실체를 추측하며 아쓰타가 눈물 흘리는 장면에선 더더욱 온 우주가 도왔다는 걸 절절히 공감할 수 있답니다.
<49일의 레시피>는 혹독했던 겨울을 보내고 이제 막 봄을 맞은 지금, 초봄과 어울리는 따뜻하고 감동적인 소설입니다.
책장을 넘기면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돼지호빵 냄새가 솔솔 풍겨나오는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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