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고작 계절
김서해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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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정확한 문장으로 짚어낸다"는 평 때문에 늘 궁금하면서도 애써 외면했던 작가님의 작품이었습니다. 내면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들킬 것 같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을 겁니다. 역시나, 산뜻한 표지와 달리 소설 《여름은 고작 계절》은 유년의 기억처럼 '끈적하고 어두운 여름'의 한가운데로 독자를 끌고 들어갑니다. 이 책은 단순한 성장 소설을 넘어, 경계에 선 이방인의 분열된 자아와 지독한 자기혐오를 통과하는 한 편의 서늘하고 깊은 고백록입니다.

소설의 가장 충격적인 지점은 폭력의 방향성입니다. "때리는 사람이 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마치 자신을 때리는 것처럼"이라는 묘사는 이 모든 분노의 끝이 결국 자기 자신을 향한 혐오였음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한나를 향한 폭력은 동화되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파괴하려는 자기 파괴적 행위의 상징인 셈입니다. 성인이 된 제니의 시점에서 쓰인 이 긴 '회고록이자 반성문'은, 가장 연약했던 시절의 자신과 화해하기 위한 고통스러운 여정 그 자체입니다.


가혹했지만 그래서 더 눈부셨던, 친구가 세상의 전부였던 시절의 애틋함과 잔혹함을 이토록 정교하게 엮어낼 수 있을까요. 소설은 고통의 기록에서 멈추지 않고, "잡아주길 기다리지 말고 팔을 뻗어야 한다"는 능동적인 연대의 메시지로 나아갑니다. 각자의 마음속 '햇빛 한 점 없는 동굴'을 헤매고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은 가장 아팠던 시절을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와 조심스러운 위로를 건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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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와 가나코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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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라는 선택, 그 너머의 절박한 연대에 대하여

책장을 덮고 한동안 숨을 골라야 했습니다. '나오미와 가나코'는 단순한 두 여성의 이름이 아니라, 절망의 끝에서 서로의 손을 맞잡는 '연대'와 '생존'의 다른 이름이었습니다.

백화점에서 감정을 소모하는 나오미와 남편의 폭력에 갇힌 가나코. 평범한 일상 이면에 깊은 어둠을 가진 두 친구는 서로에게 유일한 안식처입니다. 결국 서로를 구하기 위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기에 이릅니다.

그들의 행동은 명백한 범죄이지만, 책을 읽는 내내 그들의 절박함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소설은 범죄를 미화하는 대신, 그 선택이 불러오는 심리적 무게와 내적 갈등을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덕분에 단순한 스릴러를 넘어, 목소리 내지 못하는 피해자를 외면하는 사회 구조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만약 여러분이라면 절망의 끝에서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이 책이 던지는 묵직한 질문과 손을 맞잡는다는 것의 의미를 오래 곱씹게 될 겁니다. 강렬한 여운을 남기는 소설을 찾는 분께 강력히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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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에 대하여 (라틴어 원전 완역본) -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삶을 위한 세네카의 가르침 현대지성 클래식 67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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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출근길 지하철 문이 열리는 순간은, 마치 세상의 모든 숨결이 한꺼번에 밀려드는 것 같다. 숨이 아니라, 뜨겁고 눅눅한 공기. 그 안에는 사람들의 체온, 부주의한 냄새, 그리고 서두름이 섞여 있다. 나는 그 속에 몸을 밀어 넣고 싶지 않은 마음이 그득하지만, 이치에 따라야만 하는 순리처럼 그곳으로 결국 몸을 집어 넣는다. 누군가의 어깨가 거칠게 부딪히고, 발끝이 밟힌다. 미안하다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그저 더 깊이 끼어드는 사람들의 숨소리만 들릴 때, 나는 단단히 입을 다문다. 그러나 그 입술 안에는 이미 화의 첫 불씨가 들어와 있다.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지?” 하루를 시작하기도 전에, 나는 이미 하루를 잃고 있는 기분이 든다.

이렇게 나의 감정만으로 하루를 망치고 나면, 모든 불안과 불만이 나를 지배한 아침 8시가 시작된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감정에 휘둘려 하루를 망칠 수 없다고, 상황에 관계없이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거라는 믿음이 어딘가에서 주어졌을 때, 현대지성에서 나온 현대지성클래식 시리즈의 67권인, "화에 대하여" 라는 책을 만났다.


이 책은 크게 7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구성을 4개로 편하게 소개해보려고 한다. 먼저 '분노에 대하여'라는 장에서는 실제 분노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분노를 다시를 수 있는지에 대해 상세하게 나누어 설명한다. 그리고는, 좀 더 나아가 분노를 잠재우는 큰 용기인, '관용에 대하여' 라는 장에서 세네카는 우리의 인간의 본질적 평화와 용서에 대해 설명한다. 그 뒤에, "평정심에 대하여"라는 장을 통해 우리는 불안을 통한 분노를 벗어나 어떻게 평정심을 유지하고 불안을 줄일지에 대해 설명하여 준다. 마지막으로, "현자의 항상심에 대하여"라는 장에서 마무리를 짓는데, 이는 참으로 고전 철학에서 읽을 수 있을법한 이야기라 매우 흥미로웠다. 마지막 박문재님의 해설을 꼭 읽는 것을 추천한다. "불안과 분노가 나를 뒤흔들 때 세네카가 전하는 단단한 삶의 기술"이라는 해설의 표제에 알맞게. 이 책을 알주 전체적으로 크게도 바라보고, 미시적으로 설명해주시며 이 책을 이해하며 읽어가기 좋은 길잡이가 되어주기도 한다.


나는 이제 아침마다 마음속으로 작은 문장을 되뇐다. ‘이건 내가 동의하지 않을 감정이다.’ 문장을 통해 하루의 문이 조금은 다르게 열리곤 한다. 화를 다스린다는 것은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과의 계약을 해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순간, 나는 나의 해석과 동의를 선택할 수 있다. 화를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은, 나의 하루를 나 자신에게 돌려주는 행위다. 세네카가 말했듯, 화는 잠시의 광기이지만, 그것을 내어준 순간, 우리는 그 광기의 노예가 된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그 노예의 삶을 살고 싶지 않다. 세네카는 2천 년 전에 이 사실을 알았고, 나는 이제야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그리고, 아마도 인생의 절반 이상은 이런 배움의 반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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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어두운 걸 좋아하십니까 : 상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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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열살도 채 되지 않은 때의 여름날, 에드거 앨런 포의 글을 읽으며 처음 느꼈던 그 축축하고 음산한 매혹을 기억한다. 인간의 이성이라는 얇은 판자 아래 출렁이는 광기와 불안의 심해. 어린아이의 순수한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고도의 어두움. 친구에게 한 웹진을 추천했던 날에는, 감성적이고 섬세함에도 그런 분위기의 글보다는 찬바람이 씽씽부는 글을 생각보다 좋아하는 것 같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정유정 작가의 잔혹한 소설들을 가장 좋아함도, 가끔 보이는 차갑고 어두우며 감정은 배제된 듯한 작품들을 보고 찬사를 쏟아냄도. 여름엔 그 심해와 어두움의 균열을 들여다보는 쪽을 선호해왔다. 올여름, 스티븐 킹의 『더 어두운 걸 좋아하십니까』를 집어 든 것은 어쩌면 에드거 엘런 포의 검은고양이를 꺼내들었던 것과 비슷한 기억일 것이다.


으스스하고 습하며, 겨울보다 가끔은 춥게 느껴지는 여름의 실내공기와 더없이 완벽하게 공명하는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다시 한번 확신했다. 때로는 가장 절망적인 어둠을 담아낸 작품이야말로, 역설적으로 소설의 역할을 가장 충실히 해내고 있다는 것을. 뜬구름 잡는 희망이나 작위적인 위로는 현실의 어떤 균열도 메우지 못한다. 실은, 오히려 너무나 희망적이고 개연성 없게 밝은 작품을 보면 작금의 현실을 짓밟고 외면하는 것 같아 불편할 때도 있다. 현실은 본래 그런 것이 아니기에. 가끔은 직면해야하는 것이 있다고 느끼며, 오히려 킹이 파고드는 균열의 순간들이야말로 우리 삶의 본질에 가깝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책을이곳저곳 들고다니며 상권을 다 읽어낸 나는, 하권을 펼치고 싶은 마음과 한편으로는 여기서 멈추고 싶은 마음을 동시에 느꼈다.


평생을 함께한 두 친구가 서로의 성공이 사실은 훔친 재능의 힘으로 이루어낸 것이었음을 알게 되는"재주 많은 두 녀석"의 서늘한 진실은, 우리가 쌓아 올린 성취와 관계의 토대가 얼마나 허약한지를 폭로한다. 그들의 비밀은 평범한 일상에 숨겨진 거대한 싱크홀과 같아서, 그 존재를 아는 것만으로도 발밑이 아찔해진다.


"대니 코플린의 악몽"은 나의 이런 믿음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단 하룻밤의 불길한 꿈이 한 평범한 남자의 삶을 어떻게 송두리째 집어삼키는가. 대니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다. 그저 ‘보았을’ 뿐이다. 하지만 그가 본 어둠의 파편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가며 신뢰, 관계, 사회적 자아를 모두 불태워 버린다. 이것이 바로 내가 소설에서 보고 싶은 장면이자 소설에게 기대하는 역할이다. 외부의 힘이 아닌, 내면에서 비롯된 작은 균열 하나가 어떻게 세계 전체를 무너뜨리는지에 대한 집요하고 생생하다 못해 잔인하게 느껴지는 기록. 악몽이 너무나 길었다. 이런 긴 악몽을 쓰는 사람이, 세계가 어둠을 직면하게 만든다고 느낀다. 그렇게 직면된 꿈과 현실의 균열에서 우리는 조금 더 나은 날을 발견하며 희망을 찾고 상상을 꿈꿔도 좋다. 더 개연성 있는 우리만의 희망을 향해. 타인이 써내려간 희망이 아닌, 균열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써내려갈 희망을.


스티븐킹이 찬사를 보냈다는 표지를 한참이나 쳐다봤다. 킹의 인물들은 희망을 향해 달려가지 않는다. 그들은 덮쳐오는 어둠 속에서 잠식당하거나, 겨우겨우 숨을 쉬거나, 혹은 어둠의 일부가 되어버린다. 밝고 따뜻한 곳이 아니라, 가장 어둡고 스산한 곳에 진실이 있는 것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소설의 위대함을 느낀다. 스티븐 킹은 "더 어두운 걸 좋아하십니까?"라고 묻지만, 사실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미 어둠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그의 소설은 그 사실을 외면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할 용기를 줄 뿐이다.


에드거 앨런 포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던 나의 여름밤은, 킹의 이야기들을 통해 비로소 완전한 형태를 갖추었다. 이보다 더 소설다운 소설이, 이 여름에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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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마트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 일하는 나와 글 쓰는 나 사이 꼭꼭 숨은 내 자리 찾기
하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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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이 책의 문장들은, 단순한 ‘조언’이 아니라 ‘인식의 실마리’로 다가온다.
‘꼭꼭 숨은 내 자리’라는 표현 속에는 지금껏 내가 붙잡지 못했던 어떤 중심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에 더 가까운 질문이다.
나는 어떤 자리에 있어야 나로서 숨을 쉴 수 있는가. 나는 어떤 문장을 통해 나를 말할 수 있는가.

지금 이 시기에 이 책을 펼친다면, 아마도 나는 내 마음가짐이 내 마음가짐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고 새로 배우게 되리라는 예감이 든다.
그것은 새로운 정보나 기법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를 더 정직하게 바라보는 방식일 것이다.

이 방식은, 언젠가 내가 다시 ‘일하는 나’와 ‘글쓰는 나’를 넘나들 때, 더 이상 그 둘을 대립시키지 않도록 도와줄 것이다.
둘 사이에 숨어 있던 ‘진짜 나’의 자리를, 조심스레 꺼내 들 수 있도록.
나의 무어한 마음가짐이, 나의 어떠한 마음가짐에게로 가닿을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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