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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어두운 걸 좋아하십니까 : 상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5년 7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열살도 채 되지 않은 때의 여름날, 에드거 앨런 포의 글을 읽으며 처음 느꼈던 그 축축하고 음산한 매혹을 기억한다. 인간의 이성이라는 얇은 판자 아래 출렁이는 광기와 불안의 심해. 어린아이의 순수한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고도의 어두움. 친구에게 한 웹진을 추천했던 날에는, 감성적이고 섬세함에도 그런 분위기의 글보다는 찬바람이 씽씽부는 글을 생각보다 좋아하는 것 같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정유정 작가의 잔혹한 소설들을 가장 좋아함도, 가끔 보이는 차갑고 어두우며 감정은 배제된 듯한 작품들을 보고 찬사를 쏟아냄도. 여름엔 그 심해와 어두움의 균열을 들여다보는 쪽을 선호해왔다. 올여름, 스티븐 킹의 『더 어두운 걸 좋아하십니까』를 집어 든 것은 어쩌면 에드거 엘런 포의 검은고양이를 꺼내들었던 것과 비슷한 기억일 것이다.
으스스하고 습하며, 겨울보다 가끔은 춥게 느껴지는 여름의 실내공기와 더없이 완벽하게 공명하는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다시 한번 확신했다. 때로는 가장 절망적인 어둠을 담아낸 작품이야말로, 역설적으로 소설의 역할을 가장 충실히 해내고 있다는 것을. 뜬구름 잡는 희망이나 작위적인 위로는 현실의 어떤 균열도 메우지 못한다. 실은, 오히려 너무나 희망적이고 개연성 없게 밝은 작품을 보면 작금의 현실을 짓밟고 외면하는 것 같아 불편할 때도 있다. 현실은 본래 그런 것이 아니기에. 가끔은 직면해야하는 것이 있다고 느끼며, 오히려 킹이 파고드는 균열의 순간들이야말로 우리 삶의 본질에 가깝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책을이곳저곳 들고다니며 상권을 다 읽어낸 나는, 하권을 펼치고 싶은 마음과 한편으로는 여기서 멈추고 싶은 마음을 동시에 느꼈다.
평생을 함께한 두 친구가 서로의 성공이 사실은 훔친 재능의 힘으로 이루어낸 것이었음을 알게 되는"재주 많은 두 녀석"의 서늘한 진실은, 우리가 쌓아 올린 성취와 관계의 토대가 얼마나 허약한지를 폭로한다. 그들의 비밀은 평범한 일상에 숨겨진 거대한 싱크홀과 같아서, 그 존재를 아는 것만으로도 발밑이 아찔해진다.
"대니 코플린의 악몽"은 나의 이런 믿음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단 하룻밤의 불길한 꿈이 한 평범한 남자의 삶을 어떻게 송두리째 집어삼키는가. 대니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다. 그저 ‘보았을’ 뿐이다. 하지만 그가 본 어둠의 파편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가며 신뢰, 관계, 사회적 자아를 모두 불태워 버린다. 이것이 바로 내가 소설에서 보고 싶은 장면이자 소설에게 기대하는 역할이다. 외부의 힘이 아닌, 내면에서 비롯된 작은 균열 하나가 어떻게 세계 전체를 무너뜨리는지에 대한 집요하고 생생하다 못해 잔인하게 느껴지는 기록. 악몽이 너무나 길었다. 이런 긴 악몽을 쓰는 사람이, 세계가 어둠을 직면하게 만든다고 느낀다. 그렇게 직면된 꿈과 현실의 균열에서 우리는 조금 더 나은 날을 발견하며 희망을 찾고 상상을 꿈꿔도 좋다. 더 개연성 있는 우리만의 희망을 향해. 타인이 써내려간 희망이 아닌, 균열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써내려갈 희망을.
스티븐킹이 찬사를 보냈다는 표지를 한참이나 쳐다봤다. 킹의 인물들은 희망을 향해 달려가지 않는다. 그들은 덮쳐오는 어둠 속에서 잠식당하거나, 겨우겨우 숨을 쉬거나, 혹은 어둠의 일부가 되어버린다. 밝고 따뜻한 곳이 아니라, 가장 어둡고 스산한 곳에 진실이 있는 것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소설의 위대함을 느낀다. 스티븐 킹은 "더 어두운 걸 좋아하십니까?"라고 묻지만, 사실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미 어둠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그의 소설은 그 사실을 외면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할 용기를 줄 뿐이다.
에드거 앨런 포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던 나의 여름밤은, 킹의 이야기들을 통해 비로소 완전한 형태를 갖추었다. 이보다 더 소설다운 소설이, 이 여름에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