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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대공황 - 80년 전에도 이렇게 시작됐다
진 스마일리 지음, 유왕진 옮김 / 지상사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과거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어보지 않았기에 그 무시무시한 위력을 알고 있으면서도 전쟁은 실감나지 않았다. 그래서 최근 러시아와 그루지아의 전쟁으로 세계 3차 대전을 염려하는 사람들을 보며 ‘설마, 그렇게까지 될라고...’하며 느긋했는지도 모른다. 첨단무기로 무장한 군인들의 전쟁은 두말할 것도 없이 끔찍하지만, 이러한 전쟁에 버금가는 공포가 있으니 바로 경제상황의 악화다. 수십 년이 흘렀어도 전쟁에 대한 불안이 사라지지 않고 있으나, 전쟁은 말 그대로 무기를 손에서 내려놓고 손을 잡으면 바로 평화에 대한 꿈을 꿀 수 있다(전쟁을 몸소 체험하신 분들은 절대 동의하지 않겠지만... ).
그렇지만 경제는? 세계대공황으로 피폐해진 사람들의 생활상이나 정신적인 고통, 배고픔 등은 강력한 지도자의 ‘대공황 끝’을 외치는 연설이나 나라와 나라 사이가 잘해보자며 어깨를 마주한다고 해서 그 즉시 고픈 배가 채워지거나 잃었던 직장을 되찾을 수 없다. 10여 년 전에 IMF를 직접 겪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 체감지수가 더 높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경제상황의 악화로 인한 결과는 전쟁과 같으면 같았지 덜하지는 않을 것 같다.
얼마 전에 출간된 ‘세계대공황’에서는 과거를 거울삼아 현재의 세계 경제의 위기를 벗어날 방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물론 과거의 세계대공황은 세계대전에서 기인했기에 오늘날과 꼭 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적절하지 못한 정부의 개입이나 지도자의 잘못된 선택이 현재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을 지금의 경제정책 입안자들이 꼭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통화, 금융, 경제정책 등 이러한 분야에 대해 전공을 하지 않은 평범한 내가 읽고 소화하기엔 조금 버거운 감도 있지만, 금융업에 종사하면서 경기악화를 피부로 체감하고 있는 현실을 살고 있기에 몸에 좋은 약을 먹는다는 생각으로 책을 읽었다.
오늘 아침에도 인터넷을 통한 방송에서 끝없는 경제 불황으로 인해 가사를 책임진 여성들의 건강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는 기사를 접했다. 치료비가 걱정돼 아파도 병원을 가지 않거나 조기검진이 중요한 검사를 미루고 있다고 한다. 가까이 있는 시화공단과 반월공단에서는 주 4일 근무, 주 3일 근무 이야기까지 나오며,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근심으로 웃음이 사라진 고객들을 대할 때면 나 역시 불안해지긴 마찬가지다. 과거 IMF가 다시 닥칠지 모른다는 우려는 거의 현실화된 것이다.
아이를 낳아본 엄마들은 모두 알고 있다. 첫째 아이를 낳을 때는 그 고통이 얼마만큼 큰지 알 수 없기에 멋모르고 아이를 낳지만, 둘째 아이의 출산을 앞두고는 과거의 고통을 떠올리며 잔뜩 겁을 먹게 된다. 이미 한 번 불황의 늪을 지나온 사람들이라지만 그 고통에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또 같은 고통을 겪어야할지도 모른다는 것에 끝 모르는 불안이 엄습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 기억하자. 겁냈던 것이 무색할 만큼 대부분의 경우 둘째아이의 출산과정이 첫째 때보다 훨씬 덜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지금 이런 희망이라도 없으면 하루하루를 살아가기가 더욱 버거울 것이다.
부디 경제정책을 만들고 시행하는 이들이 과거를 거울삼아 이 위기를 하루라도 빨리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었으면 하는 지극히 서민적인 바람을 가득 품게 만든 무겁지만, 실 날 같은 희망을 안겨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