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맨부커상 최대 베스트셀러 『파이 이야기』 이후 15년 만에 나온 얀 마텔의 장편소설 『포르투갈의 높은 산』. 신과 믿음, 절망 속 희망, 진실과 허구에 대한 고찰을 몰입감 있는 이야기 속에 풀어냈던 『파이 이야기』를 읽고 난 후라, 이번 책은 또 어떨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파이 이야기』가 광활한 대양에서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싸웠던 한 소년의 처절함과 그 너머의 믿음, 성장과 모험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이번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1904년부터 1981년까지 포르투갈과 캐나다를 배경으로 하여 각기 다른 시대 속 각기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현실과 환상, 진실과 허구를 넘나들며 신비로운 이야기로 펼쳐지고 있다.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1부 '집을 잃다', 2부 '집으로', 3부 '집' 을 소제목으로 하여 각각 다른 개별적인 이야기들로 펼쳐지는 듯 하나, 공통된 단어 '집'이 보여주듯, 그 이야기들은 하나의 방향을 향해 서로 연결되어 우리를 몽환적이고 놀라운 세계로 인도한다. 

1부 '집을 잃다'는 1904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1주일만에 사랑하는 여인과 아들, 그리고 아버지를 잃게 된 토마스라는 사람의 이야기다. 그는 그 때부터 신에 대한 반발심으로 뒤로 걷기 시작했고 신에 대한 분노와 자신의 삶에 대한 슬픔과 절망, 상실과 고독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포르투갈 높은 산으로 향한다.

2부 '집으로'는 1938년 포르투갈 높은 산 근처, 병리학자 에우제비우의 이야기다. 어느 날 밤 늦게까지 부검을 하고 있던 그에게 두명의 여인이 찾아온다. 한명은 그가 사랑하는 아내 마리아, 그리고 다른 한명은 그에게 자신의 남편 부검을 부탁하러온 마리아라는 여인. 그들간의 대화는 낯설고 신비롭고 때론 미스테리하지만 2부는 얀 마텔만의 주제의식을 담고 이야기를 끌어가는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3부 '집'은 1981년 캐나다, 아내를 잃고 삶에서 마주하는 문제들 속에서 고독과 상실감에 시달리던 의원 피터는 미국 한 유인원 연구소에서 만난 침팬지 오도에게 끌리게 되고 캐나다에 그가 이루었던 모든 것을 뒤로 한채 오도와 함께 포르투갈 높은 산으로 향한다. 낯선 언어, 척박한 삶, 그 어떤 쫓김도 없이 자연의 시간을 따라 살아가는 삶 속에서 그는 무엇을 발견하게 될 것인가.

『파이 이야기』에 이어 그는 계속해서 신과 믿음, 삶과 죽음, 허구와 진실, 인간 존재 등에 관한 심도 깊은 주제들을 독자들에게 던져준다. 그는 이야기를 만들어 독자들에게 전해 주었고 그것을 받은 독자에 의해 이 책은 새롭고 더욱 풍성한 이야기로 탄생하게 된다.

책을 쭉 읽으며, '아, 역시 얀 마텔..' 이라 생각할만큼, 처음엔 낯설고 당혹스러울 때도 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더 깊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는 점,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것들을 책 속에서 발견해낼 수 있다는 것들이 참 좋았고, 다시 한번 작가의 재능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재능이 참 부러웠고 그의 다른 소설들도 더욱 궁금해졌던 시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흔들린다 작가정신 시그림책
함민복 지음, 한성옥 그림 / 작가정신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처음 만난 시그림책 『흔들린다』, 첫 인상은 낯설지만 포근했다. "시인은 삶을 옮기는 번역가"라 불리는 함민복 시인의 시 <흔들린다>에 한성옥 작가의 그림이 입혀진 책으로, 시 한 편을 그에 맞는 그림과 함께 엮어 시각적인 깊이를 더해 스며들듯 잔잔한 여운을 남기는 그런 책이었다.

 

 

깊은 무게감이 느껴지는 그림들을 지나, 빈 여백의 공간을 지나, 가끔 마주치는 글들을 읽다보면 그냥 시 한 편을 읽을 때와는 또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무엇보다 그림과 그림, 여백의 공간 속에 행간의 깊이와 인생의 의미를 더 깊게 되새겨 보게 된다.

 

시 <흔들린다>는 크게 자라 집에 그늘을 드리운 참죽나무 가지를 베어내는 과정을 바라보던 시인이 그 안에서 삶을 발견한 이야기다. 삶은 흔들림의 연속이다. 우리의 삶은 때론 가지치기를 당하며 흔들린다. 가지를 칠 떄마다 우리는 흔들리지 않기 위해 흔들렸고, 흔들렸기에 덜 흔들린다. 그 가운데 우리는 최선을 다해 중심을 잡는다. 모든 삶의 과정은,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리고 흔들려 흔들리지 않으려고 가지 뻗고 이파리 틔우는 일이다. 흔들릴 수 밖에 없는 것이 삶이지만, 흔들리기에 무너지지 않고 중심을 잡으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삶이란 생각을 해본다.

그림과 짧은 글, 그 사이의 빈 여백 속에 인생의 깊은 무게를 느껴본다. 그리고 그 깊음은 잔잔한 여운이 되어 나의 삶에 한 편의 위로가 되어준다.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렸었구나. 흔들려 덜 흔들렸었구나."

이 책은 한 편의 시로 구성된 시그림책이기에 금방 읽을수도 있지만, 한 번 더, 천천히, 느리게, 그림과 여백, 그 여운과 깊이를 느껴보며 읽기를 추천한다. 그러다보면, 포근하게 전해지는 따스한 위로가 온 몸 가득 잔잔히 퍼져 나갈 것이다.




흔들린다 / 함민복

집에 그늘이 너무 크게 들어 아주 베어버린다고
참죽나무 균형 살피며 가지 먼저 베어 내려오는
익선이 형이 아슬아슬하다

나무는 가지를 벨 때마다 흔들림이 심해지고
흔들림에 흔들림 가지가 무성해져
나무는 부들부들 몸통을 떤다

나무는 최선을 다해 중심을 잡고 있었구나
가지 하나 이파리 하나하나까지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렸었구나
흔들려 덜 흔들렸었구나
흔들림의 중심에 나무는 서 있었구나

그늘을 다스리는 일도 숨을 쉬는 일도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직장을 옮기는 일도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리고
흔들려 흔들리지 않으려고
가지 뻗고 이파리 틔우는 일이었구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러스트 파이 이야기 (특별판)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토미슬라프 토르야나크 그림 / 작가정신 / 201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은 있는 모습 그대로가 아니에요. 우리가 이해하는 대로죠, 안 그래요? 그리고 뭔가를 이해한다고 할 때, 우리는 뭔가를 갖다 붙이지요. 아닌가요? 그게 인생을 이야기로 만드는 게 아닌가요?"
... 중략 ...
"고맙습니다. 신에게도 그러길."                                                              - <파이 이야기> 중-


나는 어째서 마지막 그의 말, '신에게도 그러길'이란 말에 처연하고 아린 감정을 느꼈을까. 그건, 이 책을 읽고 읽으며 계속 이 책과 나누어야할 이야기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파이 이야기>. 누구나 한번쯤은 이 책 제목을 들어보았을 것이고, 어쩌면 읽어 보았을 것이고, 혹은 영화화 된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만큼 유명한 작품이지만, 이 책은 결코 쉬운 책은 아니었다. 중학교 때 이 책을 처음 접했던 기억이 난다. 흥미로운 이야기에 매력을 느끼며 읽다가 나름의 충격을 받고 책장을 덮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들었던 의문 하나. '내가 보아왔던 이야기의 진실은 무엇인가.' 그 때는 단순히 어렵기에 이해를 못한건가 싶어 궁금해하다 말았었다.

그렇기에 이번에, 크로아티아 화가 '토미슬라프 토르야나크'의 생동감 넘치는 일러스트를 삽입, 개정된 <파이 이야기> 책을 만났을 때, 반가움과 동시에 낯선 두려움 또한 느꼈던 것 같다. 내가 과연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하지만 "소설의 운명은 반은 작가의 몫이고 반은 독자의 몫이다. 독자가 소설을 읽음으로써 작품은 하나의 인격체로 완성된다."고 얀 마텔 작가가 이야기해주어, 용기를 내 책을 펼쳤다. 그리고.. 책을 읽는 내내, 이 책을 진지하게 다시 읽어보지 않았더라면 정말 후회했을 거란 생각을 했다.

그만큼 이 책은 매력적이고, 또한 유쾌하기까지 하다! 난 이토록 재미있고 유쾌한 내용이 있는지 처음 알았다. 읽으며 때때로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같이 고뇌하기도 하고, 희망을 품기도 하며, 인생과 같이 표류하는 배 안에서 함께 절망하기도 하며, 책에 빠져들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책이, 저 먼 바다의 또 다른 세상 속 이야기이자 동시에 나의 이야기같이 느껴졌다.

 

동물의 모습, 그들과의 공존 속에 태평양 바다를 표류하는 이야기를 통해 인생에 대해 말하고 있는 책,< 파이 이야기>.

인도 폰디체리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는 현대적 인도인 아버지와 독서광 어머니, 운동을 좋아하는 라비 형과 함께 살아가는, 신을 사랑하는 아이 파이. 그들은 경제적 이유로 인도의 삶을 뒤로 하고 행복을 찾아 캐나다로 이주할 결정을 내리게 된다. 다른 나라에 팔 몇몇 동물들과 함께 화물선을 타고 태평양을 건너던 중 폭풍 속에 배는 좌초하게 되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8미터도 채 안되는 구명보트 위에는 파이와 하이에나, 얼룩말, 오랑우탄, 그리고 뱅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만이 남아 있었다. 절망과 공포 속에서 두려움과 공존하며 삶을 이어가고 신과 함께 삶을 만들어가는 파이 이야기는, 아름답고 강렬한 일러스트와 함께 새로운 충격과 감동을 선사해주었다.

 삶은 완벽하기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삶은 처절하고 처연한 고통 속에서 더욱 빛나는 법이다. 그리고 삶을 빛나게 하는 것은 믿음과, 절망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희망이다. 표류하는 좁은 공간 속에 삶을 지속해가는 그 고통이, 다만 파이만의 이야기는 아니란 생각을 했다. 단순하고 막연한 희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처절한 생존기 속에 인간의 본능과 신에 대한 신념이 동시에 공존하면서 생을 이어가기에, 그렇기에 삶의 밑바닥에서 희망의 빛을 더욱 강렬하게 뿜어내는 것이다.

아직 온전히 이 책을 이해했다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끝자락에서 '신에게도 그러길'이란 말에 마음이 아렸던 것은, 나 또한 신을 사랑함과 동시에 동물적 본능에 충실할 수 밖에 없는 한 인간일 뿐이기 때문이리라. 또한 더이상 '진실'이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삶은 하나의 이야기이고, 그것은 자신의 해석과 선택에 의해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어쩌면 내가 원했던 뚜렷하고 분명한 진실은 인생 속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기에 삶은 아름다울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 이야기 가운데 신과 함께한다면, 그것은 더 의미있는 무언가가 될 수 있겠지.

읽으면 읽을수록 새로운 이야기가 샘솟는 소설이라는 평에 동감한다. 이야기 속에 수많은 이야기거리가 넘쳐 흐른다는 것은 대단한 축복이다. 책을 덮는 순간, 다시 이 책을 읽고 싶어 다시 책을 폈다. 지친 몸을 누이며 이 책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알지만 모르는 그 이야기들이 더 알고 싶어서 또 책을 펼수 밖에 없었던, 정말 강렬하고 멋지고 아름다운 책이다. 이런 작가의 재능이 참 부러웠던, 시간들.

개인적으로 영화도 좋았지만, 아무래도 원작인 책이 더 좋은 것 같다. 영화는 책에 대한 감독의 해석이 들어간 상상력이 펼쳐져 있어 그것을 받아들이며 거기에 멈출 때가 많지만, 책을 읽으면 나만의 상상력을 끊임없이 새롭게 펼쳐갈 수 있어 더 매력적인 것 같다. 그만큼 풍성한 이야기가 넘쳐나는 책.

이 책의 끝자락에서 마음이 아팠다. 그와 동시에 나는 삶에 대한 또다른 의미를 발견한 것 같다. 아직 그것을 무어라 분명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절망과 고독의 끝자락에 있다면, 삶에 대한 의미 혹은 이유를 발견하고 싶다면 이 책이 어떤 실마리를 줄 것이라는 것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예상대로 풀리지 않는 세상일을 우리가 어쩔 수 있을까? 다가오는 삶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 살 수밖에 없는 것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 - 박상 본격 뮤직 에쎄-이 슬로북 Slow Book 2
박상 지음 / 작가정신 / 201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독특한 유머 코드를 가진 박상 작가의, 본격 뮤직 에쎄-!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
최근 일도 많고, 읽는 책들도 생각할 거리를 잔뜩 던져주어 슬슬 답답하던 찰나에 이 책을 만났다작가와 제목이 낯설기도 했지만, 표지의 작가의 말을 읽자마자 웃음이 피식 터져나왔다.


"언젠가부터 좋아하는 음악의 노랫말이 잘 기억나지 않기 시작했다. 웃기게 된 건지 바보가 된 건지 잘 모르겠지만 둘 중 하나일 거다. 할 수 없이 기억나지 않는 부분의 단어를 '오뎅'으로 바꿔서 부르곤 했다.
   ...
그러다 보니 아는 노랫말에도 '오뎅'을 집넣어서 부르는 인간이 되고 말았다. 웃기게 된 건지 바보가 된 건지 잘 모르겠지만 둘 중 하나일 거다.
어른들은 늘 내게 말했다. 말은 씨가 되니까 조심해야 한단다.
나는 생계가 막막해 인천공항 면세 구역의 한 어묵 가게에서 최근까지 '오뎅'을 팔았다. 다국적 진상 손님이 많아 정말 '오뎅' 같았다. 잘 기억나지 않지만
「짝짝이 오뎅과 고양이와 하드락」2006년 동아일보 신춘오뎅에 당선되며 등단하고 소설집 『이원식 씨의 오뎅폼』, 장편소설 『오뎅이 되냐』 『15번 진짜 오뎅』 『예테보리 오뎅탕』 등을 출간한 것 같다."
  - 작가의 말

 

자칫 진지할 수 있는 작가의 말을 이렇게 '오뎅'스럽게 전해오는 글을 읽고 오랜만에 책을 쓴 작가가 궁금해졌다. 작가의 사진을 보며, 생각보다 깔끔(?)하고, 여유로운 웃음이 있는 사람이란 생각을 해보았다.

이런 독특한 색깔을 가진 작가가 쓴 글은 어떠할까. 음악 에세이라고 하지만 음악과 여행, 기억과 일상이 조합된 이 글들은 어떠할지, 목차를 보며 생각했다. 목차엔 흥미를 끄는 제목들과 익숙한 곡, 또는 전혀 낯선 곡들이 오밀조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가장 첫 시작은 미우새에서 박수홍이 굳이 찾아가 알게 된 이비자 섬에서의 이야기였다.

 

 

피식 거리며 책을 읽다 불현듯 그 노래를 들어보고 싶었다. 각 장에서 작가가 듣고 느꼈던 그 느낌들을 똑같이는 아니더라도 좀 더 친밀하게 느껴보고 싶었다. 그렇게 감정을 공유해보려는 시도에, 음악만큼 좋은 통로가 또 어디있을까..?

각 챕터마다 작가가 들었던 곡이 적혀 있었고, 노래를 찾아 틀어 놓은 후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었다. 때론 음악으로 그 이야기들을 이해해보기도 하고, 글의 유머에 키득거리기도 하며, 음악과 글이 합쳐져 전해지는 끈적끈적한 감정 속에 한동안 가슴이 시큰거리기도 했다.
다양한 음악이 흐르는 에피소드들의 공통점은, 어떤 순간에도 세상을 마주하는 자신만의 유머를 놓치지 않는 작가의 모습. 사뭇 진지하고 허무할 뻔한 나의 인생에도 그런 재치가 있었으면 하는 부러움이 생겼다. 그리고 그런 독특한 유머를 따라 다양한 장소와 시간, 감정들을 여행해볼 수 있어 즐거웠다.

병맛 코드라길래 정말 가볍게 읽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진했고, 인생의 독특한 맛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었다. 하지만 자칫 지나치게 진지해지려하면 김나훔 작가의 일러스트로 유쾌하게 넘길 수도 있고, 각 음악을 들으며 눈을 감고 쉬었다 갈 수도 있었다.

 

책을 읽고 나니, 이 책은 음악 에세이라기보단, 음악과 여행, 그리고 인생에 대한 복잡 미묘한 이야기였다. 그러고 보니 인트로가 다시 생각난다.

"저는 웃기는 것에 매혹을 느끼며 살아왔습니다. 인생이란 것도 웃기는 것의 아름다움과 그 허무 사이의 진창을 헤매는 시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모아놓고 보니 웃기기는커녕 외롭고 쓸쓸한 이야기를 해버린 것 같습니다만, 부디 외롭고 쓸쓸한 걸로 웃긴 책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울적해지는 게 인생 아니겠습니까.
그럼, 모쪼록 달콤한 사랑이 쩍쩍 달라붙는 날들 되시길."

 

 

외롭고 쓸쓸하고 울적한 인생 속에 달콤하고 끈적한 여행과 음악, 인생과 사랑을 이야기하는 박상 작가의 책은, 쓸쓸하고 쌀쌀해지는 가을, 음악과 함께 읽어보기에 즐거이 추천한다. 
느리게, 자신만의 속도로, 음악과, 또 내 안에 담겨진 이야기들과 함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고 싶어서, 가고 싶어서 - 내게 왜 여행하느냐 묻는다면
박세열 글.그림.사진 / 수오서재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보고 싶어서, 가고 싶어서" / 박세열 / 수오서재


한때 여행은 그 나라의 명소를 방문해 인증 사진을 찍거나, 유명 맛집을 탐방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자랑하기 위해 특별한 곳, 또는 멋진 곳을 찾아다니거나, 그렇지 않으면 수동적으로 주어진 대로 정보를 따라 여행하거나, 이런 식이 많았다. 어쨌거나 무언가를 또 성취해야 되는, 목적지향적인 그런 여행이었다. 하지만 근래에 여행이란,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보는 것', '느리지만 천천히', '목적없이 발걸음 향하는 대로' 뭐, 그런 것이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효율적이고 많은 것을 '얻는 것 같은' 그런 여행이 아닌, 정보 습득과 성취가 아닌, 느리고 비어있고 실수투성이일지라도 자신만의 걸음으로 빈칸을 채워가는 여행을 한, 또 한명의 사람이 여행 에세이를 썼다. 이 책을 읽으며 잠시 숨을 고르고 사람 사는 맛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만큼 맛이 깊고 짙었던 책이었다.

 

각 사진과 그림, 이야기마다 여행지가 적혀 있지만 그렇다고 그 나라의 명소나 특별한 장소에 대해 설명하고 있지는 않다. 저자는 그 장소에서 만났던 '사람'과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때론 에피소드를 통해, 때로는 기억의 단상들을 통한 짧은 글로.

좋았던 글귀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들었던 생각을 적어본다

 

#.

"여행의 80퍼센트'만' 맞아도 그건 불행한 여행이라고요. 그러니까 너무 고민하지 말아요. 그렇게 계획한 대로 생각한 대로만 여행을 하면 얼마나 지루할까. 심심할까. 생각해온 여행 중에서 한 70 퍼센트만, 아니 그보다도 덜 해보려고 해봐요. 의외의 일들이 일어날 여지를 만드는 거죠. 그럼, 그 빈틈 사이에서 재미있는 일들이 일어날 거예요. 그리고 여행이 끝나고 행복했다고 이야기하겠죠."
-p 32,33


여행을 다녀와 가장 행복했고 오래 기억이 남았던 순간은, 길을 헤매고 고생하면서도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할 때, 그냥 지나칠 뻔했던 그런 순간을 우연히 마주할 때, 또는 그 길 위에 있던 순간 그 자체였다. 반면 내가 이 돈 주고 어렵게 여행을 왔는데, 본전은 찾아야지! 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찾아다니고 목적지를 향해 달렸던 여행은, 많은 것을 얻은 듯 했지만 정작 돌아오는 길은 '내가 뭐했지?'란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여행은, 의외의 일들이 일어날 여지를 만드는 것. 그 빈틈을 그곳이 채우도록 비워놓는 것.
여유를 가지고 삶의 빈 공간을 만들어 가는 것이 여행.

 

#.  

"... 여행은 참 뚝배기 같네요. 그러니까요, 뚝배기를 끓이면서 간이 안 맞다고 버리고 다시 하진 않잖아요. 거기에 소금도 더 넣고 파도 더 썰어 넣고, 된장도 풀어 넣고. 그렇게 상황에 맞춰서 맛을 만들어내죠. 여행도 버스를 놓쳤다고, 사기를 당했다고 해서 이번 여행 망쳤다고 처음부터 다시 하는 게 아니라 그 상황에서 다시 재미있게 지내보려고 노력하잖아요. 버스터미널에서 옆 사람이랑 이야기도 해보고 갑자기 행선지를 바꿔보기도 하고. 그런 게 결과적으로 더 재미있는 일들로 이어지게 하고 좋은 사람들도 만나게 해주고. 그렇게 제 여행이 더 즐거워지고 완성돼가는 기분이에요. 그래서 여행이랑 뚝배기랑 닮았다는 말이죠. 그렇게 여행이랑 사람 사는 일상도 비슷하겠죠?
여행 오기 전까지는 자꾸 '새로 대학 가고 싶다, 새로 스무 살로 돌아고 싶다. 새로 시작하고 싶다'를 입에 달고 살았는데, 이제 그냥 있는 상태에서 제 방식대로 간 잘 맞춰보렵니다."
- p 44,45


여행은 뚝배기와 같은 것. 주어진 상황에 맞춰 맛깔나는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 그렇게 스스로 이야기를 완성해가는 것. 그것이 여행의 맛, 삶의 맛.

 

#. 

 

중간 중간 귀여운 아이들, 아련한 풍광들, 그리고 손으로 하나하나 그린 그림들로 페이지가 채워진다. 저자만의 색깔과 여행의 모습이 채워진다.

#.
 

때론 길을 잃은 그곳에서 따뜻함을 만난다. 여행도, 삶도 그러하다. 그저 보고 싶어서, 가고 싶어서 가는 여행이라지만, 여행을 통해 삶의 맛을 보는 이야기들이 참 좋다.

#.
 

"그 안에는 미얀마가 있었고, 태국의 목이 긴 카렌족 아가씨가 있었고, 캄보디아의 얼굴들이 있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이 그림 속 풍경들, 사람들을 오래 바라보았을 것이고 떠올렸을 것이다."
-p92


나의 시선과 마음이 오래 머무는 여행. 
이런 여행을 해보고 싶다. 많은 것을 보지 않아도, 사소해도, 오래도록 머물며 바라보고 마음에 담아보는 그런 여행.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닌, 오래도록 바라보는 여행.

 

 

#. 

"한때는 다른 여행자의 이야기를 지나치게 갈구했었다. 그리고 그들처럼, 빨리 익숙해지고 싶었고 그럴듯해 보이고 싶었고 여권의 입국 도장이 가득하길 바랐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첫 여행은 첫사랑이었더라. 미숙하고 실수뿐이었던 시간. 그래서 더 아름다운. 그러나 그땐 그걸 알지 못한 딱 한 번의 소중한 기억."
-p95


이 책을 읽다보면 지난 나의 여행들을 떠올리게 된다. 여러 여행지를 다녀보며, 때론 남들을 부러워하며 많은 곳을 가려했고 때론 여유롭게 지도도 없이 발이 닿는대로 걸어보기도 하며, 때론 일행의 일정에 떠밀리듯 다녀도 보며, 그 모든 순간이 아련한 추억이 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그러나 가장 좋았던 여행은 아무래도 발 닿는대로, 그렇게 함께 다녔던 여행.


#.
 

"건강히 겸손하게, 그리고 매 순간 행복하게 여행하길."
-p 131


이 말 앞에 오래동안 머물러 있었다. 남들보다 더 여행을 잘하고 싶은 마음,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고 그럴듯하게 보여줄 무언가를 만들어낼 여행을 향한 욕심이 오히려 여행을 버겁게 만드는 것. 그런 경험 속에 '겸손하게' 여행을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잠시 생각해본다.
아직 완전히 다 알 수는 없겠지만, 그 말을 마음에 새겨본다.

#.
 

여행 에세이를 읽으며 아련한 기분을 느낀 것은 또 처음이다. 어쩌면 내가 보았던 그 장소가 사진 속에 담겨 있기에 그럴수도 있고, 또 어쩌면..

작가가 가보았던 그곳을 다시 보며, 내가 왜 그 때의 아름다운 그 순간을 잊고 지냈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일수도 있다. 눈을 감고 가물가물, 흐릿해진 기억을 애써 더듬고 찾아야 떠올릴 수 있는 그 순간들, 그렇기에 더 아련한 기억들.

아그라의 시장판을 헤치며 삼엄한 경비를 지나 마주한 타지마할 앞에서 느꼈던 경탄, 타지마할 옆에 한없이 앉아 그것을 바라보며 시간이 멈추길 바랬던 시간들. 푸르른 벽들의 아름다움, 인도의 신비로움과 꿈과 같았던 그 시간들은, 정말 꿈과 같이 일상으로 돌아온 후 어슴푸레 기억 너머로 사라져갔다.
나는 설렜던 그 순간들을 왜 잊고 살았을까.

이 책을 보며 그런 아련함이 다시 떠오른다. 그리고, 다시, 가고 싶어진다.
다음엔 좀 더 오래도록 머물고 싶다. 오래도록 마음에 그 순간을 머무르게 하고 싶다.

 

#. 

 

"이렇게 여행의 감동은 늘, '그곳'이 아닌 그곳에 가는 길 위에 있다." -p192

#.  

"어느 도시에 '가봤다'가 아니라 '살아봤다' 라는 것은..." - p236,237

#. 

"여행 그 순간보다도 더 중요한 건 여행 후에 남을 기억일지도 몰라." -p324,325

#. 

"막상 여행이 끝나고 나니 가지 못한 곳이 아쉽지는 않았다. 다만, 조금 더 오래 머물지 않았던 곳들이 아쉬울 뿐이었다. 다음에는 조금 더 느리게 여행을 해야겠다." -p393


*

여행을 마친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일상을 여행처럼 산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나 또한 늘 다짐하고 다짐하지만, 일상에 돌아오면 어느 순간 여행의 기억은 흐릿해지고, 바쁘고 분주한 나날들로 삶을 빼곡하게 채워가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여행의 맛을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다시 여행의 삶을 갈망하게 될 것이란 것을, 그리고 매 순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저자는 스케치북을 들고 서울의 한 장소를 향한다. 나는 다시 한번 하늘을 바라보고 익숙해 주의깊게 바라보지 않았던 일상의 순간들을 다시 한번 바라본다.

그러면서 일상을 여행처럼 산다는 것은 어쩌면 일상을 겸손히, 매 순간 행복하게 살아가고, 때때로 무의미해보이는 비생산적인 일을 하면서 자신의 삶에 여유를 준다는 것, 그런 것이 아닐까? 한번 생각해본다.

이 책은 여행을 통한 삶의 이야기다. 그저 보고 싶어서, 가고 싶어 우린 여행을 떠나지만 그곳에서 우린 삶의 또다른 맛을 보고 돌아오기도 한다. 저자는 여행의 여정 속에서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으며 '사람'을 만났고, 그들과 함께 삶을 나누는 시간을 보낸다.

여행을 좋아하지만 낯선 이들에 대한 두려움과 수줍음이 많아 말을 걸어보지 못하고 내가 보고 싶었던 것들, 경험하고 싶었던 것들만 보고 듣고 느끼며 올 때가 많았는데, 이 책을 읽으며 여행에서 사람을 만난다는 건 여행의 또 다른 맛이란 생각을 한다.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새로운 설렘을 느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의 대화, 내가 일방적으로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아닌, 그곳의 삶에 맞닿아 보는 것의 즐거움을 느껴보고 싶다.
소통하는, 사람 냄새 가득했던 여행이 부러웠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은 여전히 두렵기도 하지만.. 이런 맛을 직접 경험해보고 싶게 만드는 그런 책이었다. 느리고, 빈틈 많은 여행을 떠나고 싶다.

따뜻하고 편안하고, 아련한 떨림을 주는, 그런 책, '보고 싶어서, 가고 싶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