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파이 이야기 (특별판)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토미슬라프 토르야나크 그림 / 작가정신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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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있는 모습 그대로가 아니에요. 우리가 이해하는 대로죠, 안 그래요? 그리고 뭔가를 이해한다고 할 때, 우리는 뭔가를 갖다 붙이지요. 아닌가요? 그게 인생을 이야기로 만드는 게 아닌가요?"
... 중략 ...
"고맙습니다. 신에게도 그러길."                                                              - <파이 이야기> 중-


나는 어째서 마지막 그의 말, '신에게도 그러길'이란 말에 처연하고 아린 감정을 느꼈을까. 그건, 이 책을 읽고 읽으며 계속 이 책과 나누어야할 이야기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파이 이야기>. 누구나 한번쯤은 이 책 제목을 들어보았을 것이고, 어쩌면 읽어 보았을 것이고, 혹은 영화화 된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만큼 유명한 작품이지만, 이 책은 결코 쉬운 책은 아니었다. 중학교 때 이 책을 처음 접했던 기억이 난다. 흥미로운 이야기에 매력을 느끼며 읽다가 나름의 충격을 받고 책장을 덮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들었던 의문 하나. '내가 보아왔던 이야기의 진실은 무엇인가.' 그 때는 단순히 어렵기에 이해를 못한건가 싶어 궁금해하다 말았었다.

그렇기에 이번에, 크로아티아 화가 '토미슬라프 토르야나크'의 생동감 넘치는 일러스트를 삽입, 개정된 <파이 이야기> 책을 만났을 때, 반가움과 동시에 낯선 두려움 또한 느꼈던 것 같다. 내가 과연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하지만 "소설의 운명은 반은 작가의 몫이고 반은 독자의 몫이다. 독자가 소설을 읽음으로써 작품은 하나의 인격체로 완성된다."고 얀 마텔 작가가 이야기해주어, 용기를 내 책을 펼쳤다. 그리고.. 책을 읽는 내내, 이 책을 진지하게 다시 읽어보지 않았더라면 정말 후회했을 거란 생각을 했다.

그만큼 이 책은 매력적이고, 또한 유쾌하기까지 하다! 난 이토록 재미있고 유쾌한 내용이 있는지 처음 알았다. 읽으며 때때로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같이 고뇌하기도 하고, 희망을 품기도 하며, 인생과 같이 표류하는 배 안에서 함께 절망하기도 하며, 책에 빠져들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책이, 저 먼 바다의 또 다른 세상 속 이야기이자 동시에 나의 이야기같이 느껴졌다.

 

동물의 모습, 그들과의 공존 속에 태평양 바다를 표류하는 이야기를 통해 인생에 대해 말하고 있는 책,< 파이 이야기>.

인도 폰디체리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는 현대적 인도인 아버지와 독서광 어머니, 운동을 좋아하는 라비 형과 함께 살아가는, 신을 사랑하는 아이 파이. 그들은 경제적 이유로 인도의 삶을 뒤로 하고 행복을 찾아 캐나다로 이주할 결정을 내리게 된다. 다른 나라에 팔 몇몇 동물들과 함께 화물선을 타고 태평양을 건너던 중 폭풍 속에 배는 좌초하게 되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8미터도 채 안되는 구명보트 위에는 파이와 하이에나, 얼룩말, 오랑우탄, 그리고 뱅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만이 남아 있었다. 절망과 공포 속에서 두려움과 공존하며 삶을 이어가고 신과 함께 삶을 만들어가는 파이 이야기는, 아름답고 강렬한 일러스트와 함께 새로운 충격과 감동을 선사해주었다.

 삶은 완벽하기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삶은 처절하고 처연한 고통 속에서 더욱 빛나는 법이다. 그리고 삶을 빛나게 하는 것은 믿음과, 절망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희망이다. 표류하는 좁은 공간 속에 삶을 지속해가는 그 고통이, 다만 파이만의 이야기는 아니란 생각을 했다. 단순하고 막연한 희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처절한 생존기 속에 인간의 본능과 신에 대한 신념이 동시에 공존하면서 생을 이어가기에, 그렇기에 삶의 밑바닥에서 희망의 빛을 더욱 강렬하게 뿜어내는 것이다.

아직 온전히 이 책을 이해했다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끝자락에서 '신에게도 그러길'이란 말에 마음이 아렸던 것은, 나 또한 신을 사랑함과 동시에 동물적 본능에 충실할 수 밖에 없는 한 인간일 뿐이기 때문이리라. 또한 더이상 '진실'이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삶은 하나의 이야기이고, 그것은 자신의 해석과 선택에 의해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어쩌면 내가 원했던 뚜렷하고 분명한 진실은 인생 속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기에 삶은 아름다울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 이야기 가운데 신과 함께한다면, 그것은 더 의미있는 무언가가 될 수 있겠지.

읽으면 읽을수록 새로운 이야기가 샘솟는 소설이라는 평에 동감한다. 이야기 속에 수많은 이야기거리가 넘쳐 흐른다는 것은 대단한 축복이다. 책을 덮는 순간, 다시 이 책을 읽고 싶어 다시 책을 폈다. 지친 몸을 누이며 이 책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알지만 모르는 그 이야기들이 더 알고 싶어서 또 책을 펼수 밖에 없었던, 정말 강렬하고 멋지고 아름다운 책이다. 이런 작가의 재능이 참 부러웠던, 시간들.

개인적으로 영화도 좋았지만, 아무래도 원작인 책이 더 좋은 것 같다. 영화는 책에 대한 감독의 해석이 들어간 상상력이 펼쳐져 있어 그것을 받아들이며 거기에 멈출 때가 많지만, 책을 읽으면 나만의 상상력을 끊임없이 새롭게 펼쳐갈 수 있어 더 매력적인 것 같다. 그만큼 풍성한 이야기가 넘쳐나는 책.

이 책의 끝자락에서 마음이 아팠다. 그와 동시에 나는 삶에 대한 또다른 의미를 발견한 것 같다. 아직 그것을 무어라 분명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절망과 고독의 끝자락에 있다면, 삶에 대한 의미 혹은 이유를 발견하고 싶다면 이 책이 어떤 실마리를 줄 것이라는 것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예상대로 풀리지 않는 세상일을 우리가 어쩔 수 있을까? 다가오는 삶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 살 수밖에 없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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