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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 - 박상 본격 뮤직 에쎄-이 ㅣ 슬로북 Slow Book 2
박상 지음 / 작가정신 / 2017년 9월
평점 :
독특한 유머 코드를 가진 박상 작가의, 본격 뮤직 에쎄-이!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
최근 일도 많고, 읽는 책들도 생각할 거리를 잔뜩 던져주어 슬슬 답답하던 찰나에 이 책을 만났다. 작가와 제목이 낯설기도 했지만, 표지의 작가의 말을 읽자마자 웃음이 피식 터져나왔다.
"언젠가부터 좋아하는 음악의 노랫말이 잘 기억나지 않기 시작했다. 웃기게 된 건지 바보가 된 건지 잘 모르겠지만 둘 중 하나일 거다. 할 수 없이 기억나지 않는 부분의 단어를 '오뎅'으로 바꿔서 부르곤 했다.
...
그러다 보니 아는 노랫말에도 '오뎅'을 집넣어서 부르는 인간이 되고 말았다. 웃기게 된 건지 바보가 된 건지 잘 모르겠지만 둘 중 하나일 거다.
어른들은 늘 내게 말했다. 말은 씨가 되니까 조심해야 한단다.
나는 생계가 막막해 인천공항 면세 구역의 한 어묵 가게에서 최근까지 '오뎅'을 팔았다. 다국적 진상 손님이 많아 정말 '오뎅' 같았다. 잘 기억나지 않지만
「짝짝이 오뎅과 고양이와 하드락」이 2006년 동아일보 신춘오뎅에 당선되며 등단하고 소설집 『이원식 씨의 오뎅폼』, 장편소설 『오뎅이 되냐』 『15번 진짜 오뎅』 『예테보리 오뎅탕』 등을 출간한 것 같다."
- 작가의 말
자칫 진지할 수 있는 작가의 말을 이렇게 '오뎅'스럽게 전해오는 글을 읽고 오랜만에 책을 쓴 작가가 궁금해졌다. 작가의 사진을 보며, 생각보다 깔끔(?)하고, 여유로운 웃음이 있는 사람이란 생각을 해보았다.
이런 독특한 색깔을 가진 작가가 쓴 글은 어떠할까. 음악 에세이라고 하지만 음악과 여행, 기억과 일상이 조합된 이 글들은 어떠할지, 목차를 보며 생각했다. 목차엔 흥미를 끄는 제목들과 익숙한 곡, 또는 전혀 낯선 곡들이 오밀조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가장 첫 시작은 미우새에서 박수홍이 굳이 찾아가 알게 된 이비자 섬에서의 이야기였다.

피식 거리며 책을 읽다 불현듯 그 노래를 들어보고 싶었다. 각 장에서 작가가 듣고 느꼈던 그 느낌들을 똑같이는 아니더라도 좀 더 친밀하게 느껴보고 싶었다. 그렇게 감정을 공유해보려는 시도에, 음악만큼 좋은 통로가 또 어디있을까..?
각 챕터마다 작가가 들었던 곡이 적혀 있었고, 노래를 찾아 틀어 놓은 후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었다. 때론 음악으로 그 이야기들을 이해해보기도 하고, 글의 유머에 키득거리기도 하며, 음악과 글이 합쳐져 전해지는 끈적끈적한 감정 속에 한동안 가슴이 시큰거리기도 했다.
다양한 음악이 흐르는 에피소드들의 공통점은, 어떤 순간에도 세상을 마주하는 자신만의 유머를 놓치지 않는 작가의 모습. 사뭇 진지하고 허무할 뻔한 나의 인생에도 그런 재치가 있었으면 하는 부러움이 생겼다. 그리고 그런 독특한 유머를 따라 다양한 장소와 시간, 감정들을 여행해볼 수 있어 즐거웠다.
병맛 코드라길래 정말 가볍게 읽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진했고, 인생의 독특한 맛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었다. 하지만 자칫 지나치게 진지해지려하면 김나훔 작가의 일러스트로 유쾌하게 넘길 수도 있고, 각 음악을 들으며 눈을 감고 쉬었다 갈 수도 있었다.
책을 읽고 나니, 이 책은 음악 에세이라기보단, 음악과 여행, 그리고 인생에 대한 복잡 미묘한 이야기였다. 그러고 보니 인트로가 다시 생각난다.
"저는 웃기는 것에 매혹을 느끼며 살아왔습니다. 인생이란 것도 웃기는 것의 아름다움과 그 허무 사이의 진창을 헤매는 시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모아놓고 보니 웃기기는커녕 외롭고 쓸쓸한 이야기를 해버린 것 같습니다만, 부디 외롭고 쓸쓸한 걸로 웃긴 책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울적해지는 게 인생 아니겠습니까.
그럼, 모쪼록 달콤한 사랑이 쩍쩍 달라붙는 날들 되시길."

외롭고 쓸쓸하고 울적한 인생 속에 달콤하고 끈적한 여행과 음악, 인생과 사랑을 이야기하는 박상 작가의 책은, 쓸쓸하고 쌀쌀해지는 가을, 음악과 함께 읽어보기에 즐거이 추천한다.
느리게, 자신만의 속도로, 음악과, 또 내 안에 담겨진 이야기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