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난 시그림책 『흔들린다』, 첫 인상은 낯설지만 포근했다. "시인은 삶을 옮기는 번역가"라 불리는 함민복 시인의 시 <흔들린다>에 한성옥 작가의 그림이 입혀진 책으로, 시 한 편을 그에 맞는 그림과 함께 엮어 시각적인 깊이를 더해 스며들듯 잔잔한 여운을 남기는 그런 책이었다.
깊은 무게감이 느껴지는 그림들을 지나, 빈 여백의 공간을 지나, 가끔 마주치는 글들을 읽다보면 그냥 시 한 편을 읽을 때와는 또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무엇보다 그림과 그림, 여백의 공간 속에 행간의 깊이와 인생의 의미를 더 깊게 되새겨 보게 된다.
시 <흔들린다>는 크게 자라 집에 그늘을 드리운 참죽나무 가지를 베어내는 과정을 바라보던 시인이 그 안에서 삶을 발견한 이야기다. 삶은 흔들림의 연속이다. 우리의 삶은 때론 가지치기를 당하며 흔들린다. 가지를 칠 떄마다 우리는 흔들리지 않기 위해 흔들렸고, 흔들렸기에 덜 흔들린다. 그 가운데 우리는 최선을 다해 중심을 잡는다. 모든 삶의 과정은,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리고 흔들려 흔들리지 않으려고 가지 뻗고 이파리 틔우는 일이다. 흔들릴 수 밖에 없는 것이 삶이지만, 흔들리기에 무너지지 않고 중심을 잡으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삶이란 생각을 해본다.그림과 짧은 글, 그 사이의 빈 여백 속에 인생의 깊은 무게를 느껴본다. 그리고 그 깊음은 잔잔한 여운이 되어 나의 삶에 한 편의 위로가 되어준다.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렸었구나. 흔들려 덜 흔들렸었구나."이 책은 한 편의 시로 구성된 시그림책이기에 금방 읽을수도 있지만, 한 번 더, 천천히, 느리게, 그림과 여백, 그 여운과 깊이를 느껴보며 읽기를 추천한다. 그러다보면, 포근하게 전해지는 따스한 위로가 온 몸 가득 잔잔히 퍼져 나갈 것이다.흔들린다 / 함민복집에 그늘이 너무 크게 들어 아주 베어버린다고참죽나무 균형 살피며 가지 먼저 베어 내려오는익선이 형이 아슬아슬하다나무는 가지를 벨 때마다 흔들림이 심해지고흔들림에 흔들림 가지가 무성해져나무는 부들부들 몸통을 떤다나무는 최선을 다해 중심을 잡고 있었구나가지 하나 이파리 하나하나까지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렸었구나흔들려 덜 흔들렸었구나흔들림의 중심에 나무는 서 있었구나그늘을 다스리는 일도 숨을 쉬는 일도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직장을 옮기는 일도다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리고흔들려 흔들리지 않으려고가지 뻗고 이파리 틔우는 일이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