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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야 나무야 - 국토와 역사의 뒤안에서 띄우는 엽서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1996년 9월
평점 :
p. 13 우리는 어차피 누군가의 제자이면서 동시에 스승이기도 합니다. 이 배우고 가르치는 이른바 사제의 연쇄를 더듬어 확인하는 일이 곧 자신을 정확하게 통찰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p. 18 여느 해보다 청명하고 길었던 가을이 끝나고 있습니다. 등 뒤에 겨울을 데리고 있어서 가을을 즐기지 못하다던 당신의 추운 겨울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p. 24 어젯밤 별 한 개 쳐다볼 때마다 100원씩 내라던 당신의 말이 생각납니다. 오늘은 소나무 한 그루 만져볼 때마다 돈을 내야겠지요. 사실 서울에서는 그보다 못한 것을 그보다 비싼 값을 치르며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p. 25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 위의 유일한 생산자는 식물이라던 당신의 말이 생각납니다. 동물은 완벽한 소비자입니다. 그 중에서도 최대의 소비자가 바로 사람입니다.
p. 45 나로서는 개금된 미륵상에서 미륵이 실현하리라던 세계를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인간이 타인에게 인간저긴 세상'을 읽어내기가 어려웠습니다.
p. 55 먹구름은 끝내 바다의 일출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빛과 그림자, 이 둘을 동시에 승인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정면에서 직시하는 용기이고 지혜라고 생각됩니다.
피안의 섬이고 가멸진 낙토입니다. 그러나 이어도는 동시에 이승을 떠난 사람들이 머무르는 섬이며 비극의 섬이기도 합니다.
p. 61 따뜻한 가슴(worm heart)과 냉철한 이성(cool head)이 서로 균형을 이룰 때 사람은 비로소 개인적으로 '사람'이 되고 사회적으로 '인간'이 됩니다. 이것이 '사랑'과 '이성'(理性)의 인간학이고 사회학입니다. 사랑이 없는 이성은 비정한 것이 되고 이성이 없는 사랑은 몽매(夢昧)와 탐닉(耽溺)이 됩니다.
p. 69 천 개의 손에는 천 개의 눈이 박혀 있었습니다. 천수천안(千手千眼)이었습니다. 그냥 맨손이 아니라 눈이 달린 손이었습니다. 눈이 달린 소는 맹목(盲目)이 아닙니다. 생각하는 손입니다. 마음이 있는 손이라는 사실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능력있는 사람이 ㅅ많은 손을 가진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러나 그것은 마음이 있는 손이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천 개의 손마다 각각 천 개의 손을 주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다시 천 개의 손에 각각 천 개의 손을 주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최고의 논리학인 수학은 언제나 등식(等式)을 기본으로 합니다.
p. 81 인간의 가장 위대한 가능성은 이처럼 과거를 뛰어넘고 사회의 벽을 뛰어넘어 드디어 자기를 뛰어넘는 비약에 있는 것이라고 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평강공주와 함께 온달산성을 걷는 동안 내내 '능력있고 편하게 해줄 사람'을 찾는 당신이 생각났습니다. '신데렐라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당신이 안타까웠습니다.
p. 90 드높은 삶을 지향하는 진정한 합격자가 되십시오_새 출발점에 선 당신에게
p. 91 나는 당신을 위롸기 위하여 이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위로'는 진정한 애정이 아닙니다. 위로는 그 위로를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가 위로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확인케 함으로써 다시 한번 좌절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p. 94 당신이 비록 지금은 어둡고 좁은 골목길을 걷고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당신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발로당신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 한 언젠가는 넓은 길, 넓은 바다를 만나리라 믿고 있습니다. 드높은 삶을 '예비'하는 진저한 '합격자'가 되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의 어디쯤에서 당신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p. 99 "사람들의 머리 위에 서 있는 우상(偶像)은 사람들을 격려가기 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을 좌절하게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보질에 있어서 억압(抑壓)이다."
p. 110 '오늘의 개량'에 매몰되는 급급함보다는 '내일의 건설'을 전망하는 유장함이 더 소중한 까닭은 오늘의 개량이 곧 내일의 발전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재야의 요체는 독립성이라 믿습니다. '오늘'로부터의 독립이라 믿습니다.
p. 116 그에게는 '합법적인 불법'을 저지를 수 있는 으력이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p. 117 현재에 대한 과거의 위력은 미래에 대한 현재의 의미를 증폭시킴으로써 완결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p. 127 우리는 이미 상품생산사회에 만연한 허위와 가상의 물신구조(物神構造) 속에 과도하게 매몰되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언어재(言語材)와 의상에 의한 자기표현도 본질적으로는 가상의 문화입니다. 그것은 분장과 디자인에 의하여 자기 자신을 건설하려는 그림자의 문화이며, 표면(表面)에 대한 천착입니다.
p. 140 무등산이 결코 하늘에 치솟지 않고 그 덤덤하고 완만한 능선을 그어 보이는 이유를 생각하여야 하리라고 믿습니다. 대명무사조(大明無私照) 햇빛은 결코 사사롭게 비추는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