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부서진
조수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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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부서진 - 조수경 (지은이) 문학과지성사 2016-10-27>


요즘 문학과지성사 50주년 기념으로 책들을 찾아 읽고 있다. 도서관 서가에서 빨간 네모에 하얀 글씨를 찾아내는 일은 이상하게 마음을 기쁘게 한다.
이걸 계기로 몰랐던 작가들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중이다.
조수경 작가의 이 소설집은, 인간 본성의 약한 틈, 교묘하게 비틀린 감정들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어쩌면 심리적 폭력처럼 느껴지는 이야기들.

우리는 책을 통해 활자만을 읽을 수 있다.
영상이 아니기에, 어떤 눈빛으로, 어떤 표정으로 말했는지 알 수 없다. 그 빈 공간을 내 상상으로 채운다.
내가 그려낸 행간이 섬뜩할수록, 어쩌면 그 공포가 내 안에 원래 있었던 것 아닐까, 그런 의심을 하게 만든다.
왜 제목이 《모두가 부서진》인지, 이제는 알 것 같다.
모두 부서져 있다.
각자의 방식으로.
미묘하게, 처절하게.

인상깊었던 몇가지 단편만 적어보자면,

<유리〉
두 권의 소설집을 낸 작가. 누군가가 아는 체를 한다.
초등학교 6학년, 모두가 예뻐했던 특별한 아이, 서유리.
부유한 줄 알았던 그 아이는, 사실 같은 대문만 이용했을 뿐이었다. “구렁텅이로 내몰아놓고, 너는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께름칙하고, 공포스러운 기운이 천천히 스며든다.

〈마르첼리노, 마리안느〉
충격적이었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다만 인간은 생각보다 훨씬 잔인할 수 있다는 것.

〈떨어지다〉
초등학교 친구 돌김, 빡구, 맛세이. 서른을 앞둔 나이에 운석을 찾으러 떠난다. 어쩌면 실현 불가능한 희망을 향한 처절한 발버둥처럼 느껴졌다.

〈할로윈 - 런, 런, 런〉
좀비랜드라는 놀이공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미래. 남자친구 수한은 현실에서는 다정하지만, 꿈속에서는 살인마다. 꿈이 거짓이고 현실이 진짜지만, 두려움은 꿈보다 더 또렷하다.

〈오아시스〉
10년 전, 서로를 열렬히 사랑했던 신입생 커플, 행복도 결국 끝나버리고 만다며 기꺼이 불행을 선택하는 사람이었던 그녀. 불안 안에 머물러야 하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고 나는 미국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자신을 찾아온 그녀. ​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나 스스로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이미 오래전에 부서졌던 건 아닐까.’ 그리고,
‘그래도 괜찮아. 라고 스스로에게 답해주었다. 우리는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조금씩 부서져 있다.

✴︎ 가족애 앞에 남녀 간의 사랑은 먼지와도 같다는 것을, 아이를 잃고 난 지금에야 알게 된 것이다. (66)

✴︎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좀비가 아니야.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공포지. 공포를 던져주면, 그냥 믿는 거야. 아무런 의심도 없이.”(145)

✴︎ 그녀로부터 도망친 나는 또 다른 그녀를 찾아다녔다. (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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