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천국 가는 날
전혜진 지음 / 래빗홀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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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천국 가는 날 - 전혜진 지음 | 래빗홀, 2025.04.09>

솔직히 말하면, 나 힐링소설을 별로 안 좋아한다. “읽고 치유 받아라!” 하는 느낌, 괜히 반감부터 생긴다. 청개구리 기질 다분한 나로선, 더더욱. 하지만 아주 가끔, 마음에 쏙 드는 힐링소설이 있다. 읽다가 울었다. 아주 시원하게, 콧물까지 흘리며. 물론 나는 울보이긴 하다.

김밥천국. 내가 알던 때는 천 원이면 김밥 한 줄을 먹을 수 있었다. 지금은 물가에 맞게 가격이 올랐지만, 여전히 다양하게 한 끼를 채울 수 있는 고마운 공간이다. 이 책은 바로 그 김밥천국의 메뉴— #김밥, #오므라이스, #김치만두, #비빔국수, #돈가스, #오징어덮밥, #육개장, #콩국수, #쫄면—를 따라 펼쳐지는 이야기다.

초반도 좋았지만, 비빔국수편부터 돈가스, 오징어덮밥까지는 정말 휘몰아치듯 감정을 쏟아내게 만들었다. 특히 오징어덮밥 파트에선 눈물이 주르륵. 중간에 이렇게 몰아쳐도 되냐고요? 아주 좋았습니다.

비빔국수: 태국인 리엔은 열심히 공부해 대학을 나오고, 한국인 태길과 축구를 통해 가까워진다.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지만, 한국에서 살아간다는 건 ‘동등하지 않은 대우’를 감수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 과정을 담담히, 그러나 묵직하게 풀어낸다. 1차 감동. 그리고 반성. 나 역시 타국인을 어떤 시선으로 보고 있었을까.

돈가스: 일본에서는 “きっとかつ(반드시 이긴다)”는 말장난으로 시험 전 돈가스를 먹는다고 한다. 만화와 야구를 좋아했던 삼촌. 고등학교 때 부상으로 야구를 그만뒀고, 나는 영상 일을 하려다 공무원이 되었다. 신경안정제를 복용하면서도, 꿈을 다시 꾸긴 무서웠다. 그런 나에게 삼촌은 또 다른 길을 보여준다. 2차 눈물. 나도 꿈을 너무 쉽게 놓고 온 건 아닐까. 이젠 내 자리가, 내 역할이 이미 정해졌다고 스스로 선을 그은 건 아닐까.

오징어덮밥: 자동차보험 출동 기사인 성우가 달려간 곳엔, 군대 시절 경찰서장의 운전병으로 모셨던 서장님이 있었다. 깐깐하다고 악명 높던, 무시무시했던 그 서장님. 성우는 그가 그렇지 않다는 걸 곁에서 봐왔다. 서장은 성우에게 오징어덮밥의 매운맛 같은 사람. 그 매운맛에서 인생을 배운다. 3차 폭풍 눈물.

이야기 하나하나 버릴 게 없다. 누구에게나 친숙한 김밥천국을 배경으로, 인천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촘촘하게 짜여 있다. 음식의 유래도 재밌게 녹아 있고, 학습지 선생, 말기 암환자, 공무원, 엄마, 임산부… 등장인물들이 이야기를 넘나들며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먹고 살고, 사랑하고, 버티고,
그런 일상의 조각들이 너무나 소중하게 담긴 책.
기대 없이 읽었다가 따뜻함으로 가득 채우고 덮었다.
진짜 하나도 놓칠 게 없는 이야기들이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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