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여름과 루비
박연준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7월
평점 :
*
<여름과 루비 - 박연준, 은행나무/ 2022.07.15., p,264>
- 엄마가 있어야 아이 이름으로 무언가가 생길 수 있다. 그걸 몰랐으므로 나는 오래, 기다리기만 했다.
- 알면서 모른 척하는 건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일보다 어렵다. 영혼이 무른 어린 시절엔 특히.
-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있다. 유년이 시절이라는 것. 유년은 ‘시절(時節)’이 아니다. 어느 곳에서 멈추거나 끝나지 않는다. 돌아온다. 지나갔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 컸다고 착각하는 틈을 비집고 돌아와 현재를 헤집어놓는다. 사랑에, 이별에, 지속되는 모든 생활에, 지리멸렬과 환로 치환되는 그 모든 숨에 유년이 박혀 있다. 붉음과 빛남을 흉내낸 인조보석처럼. 박혀 있다. 어른의 행동? 그건 유년의 그림자, 유년의 오장육부에 지나지 않는다.
- 어린 여자애들은 늘 어린 여자애들에게서 배운다. 날개, 피, 삶의 하찮음에 저항하는 법.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법. 어린 여자애들은 늘 어린 여자애들을 의지한다.
- 사랑받음을 증명해 보여야 하는 일은 사랑받는 아이는 할 필요가 없는 일이란 걸 몰랐다. 몰랐으므로 나는 공들여 사랑받는 역할을 연기했다.
- 허영의 뒷모습은 외로움이다.
- 누가 행복을 말할 땐, 알아달라는 거니까요. 그 밖에 다른 게 뭐가 있겠어요? 누가 행복을 말할 때 제일 바보 같은 짓은 나도 행복하다며, 제 행복을 들이미는 겁니다. 그러면 행복을 논하는 걸 끝내고 싶은 마음이 들겠어요?
- 이유를 묻기 시작하면 진실과 마주해야 하는데 누구도 진실을 감당하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 나쁜 타이틀은 자의적으로 딸 수 있는 게 아니다. 타자가 준다. 막무가내로, 몸 여기저기에 얹어두고 찔러두고, 끼얹는다.
🍃시인의 소설이라고 해서 기대하며 봤다. 내가 생각하는 시인은 언어 하나하나에 생명을 불어 넣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렇기 때문에 기대했는데, 맙소사. 너무 좋았다. 오늘부터 또 애정하는 작가 카테고리에 들어갑니다.
엄마가 없는 여름이. 그런 여름이는 고모네 산다. 사촌언니 겨울이의 엄마이자 여름이의 고모는<겨울피아노>교습소를 운영한다. 여름이는 그렇게 타인에게 보여지는 모습이 중요한 고모네 집에서 예의를 지켜가며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텨나간다. 아무도 여름이를 돌봐주지 않는다. 여름이는 스스로 커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 상아는 한 여자와 함께 살고 여름이를 고모네서 데려온다. ‘새’엄마는 ‘헌’자식을 싫어하며 여름이는 루비라는 친구를 사귀게 된다.
여름이의 ‘처음’의 순간들이 왜 이렇게 안타깝고 슬픈지, 여름이 옆에서 함께 있으면서 보듬어 주고 싶었다. 어린 여름이의 눈과 마음으로 바라 본 어른의 세계에서 자꾸 마음이 멈칫멈칫하고 그런 너의 마음을 몰라줘서 미안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아마도 내가 어린 시절에 알게 모르게 느꼈을 그런 감정들일 것이다. 한껏 사랑받고, 뭘 몰라야할 시기에 어른 행세를 낸다. 그래야 살아남으니까,
루비, 보석이름을 가진 루비, 순간만이 중요했던 루비, 여름이의 곁에 있어주었던 루비, 마지막까지 나는 루비가 좋았다.
언제부터인가 성장소설이 와닿기 시작했다. 오히려 어렸을 때는 빨리 어른의 세계를 느끼고 싶어서 어른들의 이야기가 좋았다. 근데 어른이 막상 되고나니 어린 시절의 어떤 순간순간들을 긁어주며 나의 유년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글을 만나면 마음이 위로받는 느낌이 든다. 개인적으로 전부 필사하고 싶을 만큼 많이 좋았다.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