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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 개정판
사노 요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4월
평점 :
#도서협찬
- 지금 이 나이가 되어서야, 나는 어정쩡한 동정심만큼 잔혹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 여동생과 나는 어른이 된 뒤에도 함께 모이면, 어머니가 쾌활하고 억셌던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 나는 요컨대 부자가 되고 싶은 에너지가 없는 거다. 아니, 그게 아니다. 부자가 아니기 때문에 에너지가 없는 거다. 그러면서 부자의 에너지를 천하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아주 성질이 못된 거다.
- 영화라면 어딘가 이 세상이 아닌 곳에 있으면서 이 세상의 우리를 유혹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거다. 이제는 이세상 남자와 여자가 태연히 키스도 하고, 거기서 좀 더 나아가 다른 짓까지 한다는 것을 알아 버려서 조금 서운하다고나 할까.
- 큰일이다, 큰일이다, 허리를 삐끗했다. 그러고 나서야 나는 지금까지 허리 같은 거 없는 사람처럼 살아왔다는 걸 알게 됐다. 아프지 않다는 건 없는 것처럼 여기며 살아갈 수 있다는 거였다. 지금 나는 나한테도 허리가 있었구나 하고 깊이 느끼면서 납작 엎드린다.
- 결국 내가 나쁜 게 아닌데도 스스로 고함친 사실에 풀이 죽는다. 돌이켜 보면 그동안 웃었던 것고 울었던 것도 내가 조금은 좋은 사람이었던 것도 다 사라지고, 온통 고함친 것만 남아버렸다.
- 세상은 모두 궁합이다.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 학교도 다녔고 책도 읽었으니 갈수록 똑똑해졌어야 하는데, 어떻게 갈수록 논리고 나발이고 다 사라지고 '모두가 궁합'이라는 결론에 안착하고 마는지 모르겠다.
- 살짝 그늘진 시선에 까다롭고 언짢은 분위기로 문고본을 읽는 모습 쪽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엄마는 분명 인텔리 콤플렉스임에 틀림없다.
- 세월은 꿈처럼 스러지고, 꿈같은 생활은커녕 근본부터 게을러빠진 나는 여유가 있든 없든 뒹굴거리며 책만 읽었다.
- 나이를 먹는다는 건 뭐랄까, 한없이 유년으로 돌아가는 거다. 나고 자란 어릴 적 경험이 차차 거대해져서 이빨을 드러내는 거다.
-이불 속의 내가 불행하면 할수록 이불은 내게 더 다정했다이불만 있으면 나는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 나는 나인채로 할머니가 되는거다.
🌙 이 책은 사노 요코가 40대 중반에 남긴 작품이라서 그런지 많이 공감하고 많이 위로받은 글이었다. 에세이는 천천히 읽는 걸 좋아하는지라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었다.
이 분의 글을 읽다보면 나대로도 괜찮아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글 중 <"산다는 건 뭘까?" "죽을 때까지 이렇게 저렇게 어떻게든 한다는 거야. 별 대단한 거 안 해도 돼." >가 핵심(?)의 느낌이었다. 과연 내가 이 글을 20살 때 읽었더라면 이해할 수 있었을까? 역자의 말에 적힌 고 피천득 선생님이 수필을 일러 중년의 글이라고 했던 문장이 생각났다.
어린 시절에 느꼈던 이야기들, 어린시절 가족에 관한 이야기, 부자동네에 있는 생선가게에서 부자는 어떤 걸 사는지 궁금해서 갔던 그녀, 아들과의 재밌는 이야기들(아들을 표현하는 말들이 너무 웃기고,그만큼의 애정이 담뿍 드러나서 더 좋았다), 영화를 봤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나 역시 오랜만에 한때 같이 영화를 봤던 몇몇 이들을 추억해보고 잠시 미소를 지었다), 입원도道라 이야기하는 그녀(나는 그럼 요즘 책도道인가?), 외국어, 여행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독서 다양한 주제에 대한 그녀의 이야기를 읽는동안 킥킥대기도 하고 맞아맞아 이러면서 맞장구를 치기도 했다.
그녀의 글은 솔직하고, 대담하기도 하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오프라인 친구는 손에 꼽아지는 내게 작가의 인간관계는 정말 넓구나(사실 읽으면서 피곤하기도 했다, 마치 내 친구인 듯 또 감정이입해버려서)
어느 순간 항상 열심히 하지 않는 거에 대한 죄책감이 있었다. 딸린 것 없이 나 혼자만 오롯이 살아야 했던 시기에는 열심히 살지 않는 것이, 게으른 것이 내 현실에 대한 핑계같아 뭐든 열심히 살려고 했다. 그리고 엄마로 살기 시작하면서 더 심해졌던 것 같다. 특히 경제적인 창출을 내지 못하는인간이 된 것 같아서 더 그렇게 느껴졌다. 이상하게도 엄마로 살게 되는 되면서 그리고 나이가 좀 들면서,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조금씩 느꼈다. 나는 나대로 이렇게 할머니가 되어갈 것이다. 이 책은 내게 나라는 사람을 인정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사람 사는거 다 똑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