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오렌지
후지오카 요코 지음, 박우주 옮김 / 달로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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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오렌지 - 후지오카 요코, 달로와 / 2022.04.25, p,388>

- 살아가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만 한다. 일할 수 있는 장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무리를 해야만 한다. 자신은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다. 그런데 자신만 이런 병에 걸리고 말았다.

- 젊든 늙었든, 남자든 여자든, 병은 무섭고, 죽는 건 더더욱 무섭다. 그 한없는 공포를 엿본 지금, 앞으로 혼자 살아가기 위한 각오를 다져야만 했다.

- 그랬다. 그날이 나는, 살기 위해 눈보라 속을 헤쳐 나갔던 것이다. 열다섯 살의 나는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 따윈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 주변을 깨끗이 정리할 줄 아는 깔끔함을. 약속 시간에 늦지 않는 착실함을. 거짓말을 하지 않는 성실함을. 무언가에 대한 좋고 싫음을 함부로 말하지 않는 진중함을. 자신의 의견을 구태여 내놓지 않는 상냥함을. 엄마인 내가 제대로 입 밖에 내어 인정해줬더라면 좋았을 텐데.

- 치료를 받는 환자도, 환자를 보살피는 가족도 어둡고 긴 터널 속에 있다. 그 터널의 길이를 처음부터 드러내놓지 않으면, 터널 속 짙게 깔린 어둠에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잃는 수가 있다.

- 홍차에 각설탕을 떨어뜨린 듯, 한 조각의 단맛으로 인해 과거의 쓴맛이 엷어져 갔다.

- “하루하루를 정성껏 살아간다는 건, 잡초를 뽑는 일하고 똑같아. 잡초가 모든 정원에 자라나는 것처럼 가정이라는 정원에도 자라나거든. 그래서 엄마는 매일 이렇게 잡초를 뽑는 거야. 가족 모두의 마음에 언제나 깨끗한 정원이 있게끔.”

- 병을 앓은 후로, 지금껏 무의식적으로 해오던 동작들을 일일이 확인해가며 취하는 일이 늘었다.

- 그럼에도, 이런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껏 죽을힘을 다해 찾고 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무언가가 남아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그 무언가를 찾고 있다.

- 누군가 이 길을 걸어왔다. 자신은 그 뒤를 쫓고 있다. 그것은 살아가는 것, 그리고 죽는 것과 닮아 있는 듯 한 기분이었다. 사람은 계속해서 삶을 걷다가 이윽고 어딘가에서 그 걸음을 멈추는 것이다. 조금도 대수로울 것 없다.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 서른 세 살의 사사모토 료가는 어느 날 위암선고를 받게 된다. 젊디 젊은 내게 왜 이런 병이.. 라고 생각하지만 그는 결국 받아들인다. 이야기가 한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병의 당사자인 료가, 사람들에겐 그와 쌍둥이 형제라 불릴 만큼 닮은 동생인 교헤이, 병으로 인해 재회하게 된 고등학교 동창인 간호사 야다, 그리고 료가와 교헤이의 형제의 어머니 도코의 관점까지, 여러 명의 이야기를 느낄 수 있었다.

암으로 인한 투병생활로 인해 료가는 그가 살아온 삶, 주변 사람 그리고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열다섯 살 무렵, 산에서 조난당하고 교헤이와 함께 쓴 유서 형식의 편지는 그때 당시의 그들의 절박하고도 부모님께 전하는 마음이, 아픈데도 불구하고 다시 산을 올라보고 싶었던 료가의 마음이 왠지 이해가 될 듯하여 마음이 찡했었다. 옮긴이의 말을 읽고는 작가의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구나. 고개를 끄덕였다. 추리는 아니지만 내용을 알게 되면서 읽는 감동과 재미가 반감될까봐 최대한 자제해서 적었다.

책의 표지와 글자가 눈에 확 들어왔다. 산에서 조난당하고 형제를 발견한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아픈 사람이 있다는 건 가정의 어딘가 모를 큰 구멍이 생기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 구멍을 메우기 위해, 혹은 그 구멍으로 인해 균열이 생긴다.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겠지만 현실이 어떨지언정 소설에서라도 이상적인, 선한 사람들이 서로를 보듬어주고 삶에 대한 의지를 북돋아주는 가족과 친구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슬프면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소설이었다.

*협찬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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