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펄프픽션
조예은 외 지음 / 고블 / 2022년 1월
평점 :
<펄프픽션 - 조예은, 류연웅, 홍지운, 이경희, 최영희, 도서출판 들녘/ 2022.01.21,p,256>
- 바로 학원의 오래된 전설 대문이다. 명가 기숙학원의 매점 햄버거에는 오십 년 전통의 합격 기운이 응축되어 있어서 많이 먹을수록 그 기운을 흡수하여 좋은 대학에 갈 확률이 커진다는 것이다.
- 나는 세입자였으니까. 인간이 신의 섭리를 거스를 수 없듯, 월세를 내지 못한 세입자는 건물주의명령을 거스를 수 없었다. 아무튼 자본주의의 시대니까. 매출이 급락한 건 나의 사정일 뿐이었다.
- 남편의 시체를 버리기에 참 좋은 날씨이다.
- 가장 듣고 싶었던 한마디를 이런 쇳덩어리에게 듣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나는 그 한마디가 간절했다. 사무치도록 필요했다.
- 출근하자마자 퇴근하고 싶어졌다. 아니, 출근하기 전부터퇴근하고 싶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실은 어젯밤 침대에 누울 때부터 왠지 퇴근이 하고 싶었다.
- "덕천 이씨 충양공파 31대손 해병대 204기 월남 참전 국가 유공자 이명현이올씨다!" 인사말 한마디로 이렇게 숨이 턱 막히게 할 수 있다니.
- "태극은 무극이라. 기이하고 이기하여 묘하고 묘하니. 갑자기 튀어 나오고 홀연히 열리는 법. 태극은 태허로 이어지는 관문이니. 현실의 경계가 흐려져 이쪽과 저쪽이 만나는 접점이니라."
- 인공지능이 자발적으로 주인을 살해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숨은 진범을 찾지 않고 고철덩어리에게 혐의를 씌우는 건 무책임하고 비인간적인 처사다. 진범을 검거할 때까지 알옛은 보호되어야 한다.
- 문학 텍스트를 인용하는 청소로봇이라니, 감히 인간이 되기로 맘먹은 인공지능이라니!
- 인문학 서고를 청소하려면 스스로 '오래 되었다'의 기준을 마련해야 하고 그러자면 책을 정독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이 독서는 청소에 관한 일이 확실했다.
- 나는 한나 아렌트가 [예수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언급한 악의 평범성을 말하려는 겁니다. 누군가 괴물 같은 짓을 하면 진짜 괴물이어야 하는 데 현실은 그렇지 않죠. 그는 일상적인 자신의 행동패턴대로 움직일 뿐이에요. 악마도 아니고 악마라는 지각도 없어요.
★ 펄프픽션(plup ficion)은 20세기 초반에 유행했던 싸구려 잡지인 펄프매거진에 실리는 소설을 뜻했던 용어로, '싸구려 소설' 혹은 '삼류소설'을 의미한다. <펄프픽션>은 21세기 대한민국식 펄프픽션을 정립해보고자 기획된 앤솔로지이다.
<작가 후기> 중 한 문장 발췌글
#햄버거를먹지마세요
햄버거와 얽힌 학원괴담- 햄버거에서 청소년을 연결시키니자연스레 입시라는 지점에 도달했습니다.
#떡볶이세계화본부
한국에서 노동을 하는 뱀파이어- 작품 속에서 주인공의 공사장 동료들은 피를 뽑아서 뱀파이어에게 투자합니다.
#정직한살인자
느닷없는 외계인 출현와 조직폭력배- 너의 무의식적인 고민은아내와의 관계다, 잘 좀 하고 살아라, 라고 작품이 대답해준 것 같습니다.
#서울도시철도수호자들
알고보니 오컬트적인 기이한 능력을 쓰는 지하철 노인들- 싸워야 한다. 지더라도. 끝없이 패배를 쌓아가는 투쟁의 과정 속에 삶이 있다.
#시민r
살인청소로봇 - 얼마 후 녀석은 자신이 청소로봇 R이며, 인문학 독서를 좋아하고 세상을 정화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고 알려왔다.
+ B급 영화에서나 등장할 것 같은 소재가 작가의 손에서 한국적 상황과 걸맞게 자유자재로 쓰이고 있다. 우리 시대 사회풍경을 풍자한 블랙코미디와 펄프픽션 장르의 결합으로 신선하고 재밌었다.
아니 입시에서 그런 괴담으로 발전이 되고, 떡볶이와 뱀파이어의 조합은 정말 기발한 상상력에 박수, 게다가 자본주의가 결합되니 아니 이렇게 코믹스러울 줄이야.
조폭남편을 죽인 아내, 사랑이이야기를 이런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풀고, 태극부대의 숨은 그런 정신을 갖고 이야기를 하니 아니 나도 모르게 엄청 몰입하며 빠져들었다.
마지막 청소로봇r에게서는 정말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어려운 주제일 수 있지만 이렇게 기발하고 웃기게 풀어내면서 다시 한번 곱씹어보게 되었다. 웃기지만 결코 마냥 웃어넘길 수만은 없었다. 개인적으로 너무 재밌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