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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체르노빌 - 세계 최대 핵 재앙의 전말
애덤 히긴보덤 지음, 김승진 옮김 / 이후 / 2021년 3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체르노빌 #핵재앙의전말 #소비에트공화국 #체르노빌의그날밤 #그날밤 #애덤히긴보덤 #독후감
#1
우리는 체르노빌이라는 원자력 발전소 이야기를 익히 들었다. 미-소 냉전시대 때 핵 폭발이 일어났고, 체르노빌 근처 프리피야트 지역은 향후 100년이 넘어도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곳으로 말이다.
과거, 핵 발전소를 서구를 앞질러서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사회주의 예찬론자와 그것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영광스럽게 생각했던 상징물이다. 체르노빌 1호기부터 4호기까지 '불가능에 가까운' 계획과 목표를 달성해가면서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 했던 국가의 전횡이다. 당의 지도부 특히나 국가라 칭하던 사람들의 '의견'이 맹목적으로 따라야 하는 법처럼 여겨지던 시대였다.
문제가 있어도 그것을 문제 삼지 않아야 하며, 할 수 없어도 할 수 있다고 말해야 하는 감시와 명령의 시대였다. 소비에트 공화국은 결과적으로 붕괴하였다. 그들 스스로 말이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4호기 폭발사고는 예견된 재앙이었고, 그 재앙의 끝은 국가의 소멸이었다. 그러나, 권력이라는 탐욕을 꿈꾸는 독재자는 전 세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니, 역사적인 사건을 돌이켜볼 때면 '되풀이'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스스로 의문을 품어보는 것도 재미있는 것 같다.
#2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가 왜 만들어졌는가. 그것은 미-소 갈등, 자본주의-사회주의의 대결이자, 상대방을 이기고 내가 추종하는 것들이 '우월하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상징물과 같다.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는 필요하다. 여러 군데에서 많은 전기를 사용하고, 그 전기를 바탕으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에 '계획도시', '혁신도시'와 비슷했던 체르노빌 프리피야트 도시는 가난과 물자 부족을 겪었던 타 지역과는 다른 풍족하고, 살기 좋은, 젊은이들이 넘치는 곳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고등교육을 받은 후 '원자력 발전소'에 가는 것이 꿈인 시절이었다. 그런데, 사회주의의 가장 큰 의사결정 시스템으로 인하여 '단점'이 '장점'을 갉아먹는 문제가 곳곳에서 일어났고, 원자력 발전소 - 소위 문제가 발생하면 재앙이 일어날 수도 있는 -라는 분야까지 영향이 미쳤다.
예견된 핵재앙이라는 말이 실감났던 것은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거나 사고를 예방하는데, 발전소 건설의 중점을 두어야 함에도 '당 지도부의 승인과 계획에 따른 목표를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라는 명령이 우선됐다. 이룰 수 없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편법과 거짓말, 눈속임이 판을 쳤다. 깨진 유리의 법칙처럼 말이다.
사소한 무질서를 방치하면
큰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하면서 안정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최대 사고 설계 기준까지 마련하였으나 예상할 수 없는 발전소 폭발사고를 겪었다. 그것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영역이었고, 국가를 이끄는 사람들, 특히 지도부, 수장들은 '원자력, 핵'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도, 의사결정에 있어서는 최고결정을 내렸다. 잘못을 잘못이라고 이야기하지 못하므로, '알아서 되겠지.'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고, 결국 재앙을 막을 수 없었다.
#3
이 책은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4호기 안에서 폭발사고가 있기 전, 컨트롤타워 내부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그린다. 그리고 사건의 전, 중, 후를 상세한 자료와 근거를 통해서 접근하고 있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프리피야트에서 있었던 일을 묘사한다. 계획 도시였던 살기 좋은 도시를 묘사하는 부분은 '젊은 사람들'이 살고 싶었던 곳임을 알 수 있었다. 다양한 부대시설과 볼거리, 친환경적인 도시의 모습은 아이를 낳고 기르기에 안성맞춤인 도시의 모습이었다.
전반부가 끝난 후 그림을 삽화로 넣어둔 부분을 휴대폰으로 찍었다. 사진으로 잠시나마 간접체험을 해볼 수 있었는데, 행복한 사람들의 모습과 깨끗한 건물과 반듯한 위치가 인상적이었다. 혁신도시를 살펴보면 '나중에 지은 최신 건물'이 바로 눈에 띈다. 안정적인 직업으로 꼽히던 원자력 발전소 직원으로 출퇴근하면서 행복한 삶을 꿈꿨다고 짐작해볼 수 있다.
#4
AZ-5: 핵발전소의 제어봉을 일순간 삽입하여 핵분열을 억제하는 '긴급제동버튼'이다. 체르노빌 4호기는 점진적으로 제어봉이 삽입된다는 점을 발전소 운전원은 알 수 없었고, 8초~16초에 이르는 핵분열반응에서는 '영원 같은 시간' 동안 제어봉이 216개의 제어봉이 삽입되어 발전소를 꺼버린다.
RMBK-1000: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4호기를 지칭하며, 소비에프공화국이 자랑하는 과학발전의 산물이자, 상징물이었다. 발전소의 모델명이지만, 안전에 대해서는 담보할 수 없는 점들이 있었고, 결국 핵재앙을 일으키는 흉물이었으며, 소련의 전 지도자였던 고르바초프는 "체르노빌 사고로 인하여 사회주의가 붕괴했다는 것을 상기하였다."라고 회고할 정도였다.
핵종: 방사능이 오염되고, 주변으로 퍼지면서 인체에 치명적인 방사능 물질을 통틀어서 이야기한다.
(자세한 내용 참고자료: 핵종의 자세한 이야기)
노심용융: 핵분열은 특히나 높은 고열에서 반응한 후 고열로 물을 데워서 증기를 생산하고, 그 증기를 활용해서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터빈을 돌린다. 적절한 온도를 유지하여 '발전에 적합한' 상태를 만들고, 전기생산 단위인 킬로와트를 통해서 최대출력으로 발전소를 돌리느냐 여부를 판단한다. 다만, 체르노빌은 노심, 핵발전소의 핵심 부분이 흑연을 뚫고, 공기 중에 노출된 상태였으므로 있어서는 안되고, 절대 일어나선 안되는 상태였다. 결국 고열로 분열하는 노심이 계속해서 녹아서 지표면을 뚫고 내려가는 현상을 일컫는다.
차이나신드롬: 노심용융의 발전 단계이며, 제어할 수 있는 수단이 전무할 경우, 지표면을 뚫고, 지구반대편까지 닿는 재앙적인 현상을 말한다.
핵폭발: 핵발전소의 핵심인데, 핵폭발을 안전한 수준에서 일으켜서 에너지를 생산하고, 그 에너지를 증기로 치환하여 전기를 생상하는 터빈을 돌리는 것이 핵발전소의 핵심이다.
방사능노출증후군: 핵폭발사고 이후 불을 끄기 위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 지역의 소방관, 발전소 직원들이 방사능에 노출되어 노출된 신체 부 부위가 썩어들어가거나 피부가 벗겨지고, 면역력을 잃어서 결국 사망하는 것을 말한다. 피부색이 변하고, 우리 몸의 면역체계인 '백혈구'를 없애버리는 것을 뜻한다.
엘레나: 차폐막이라고 하며, 안전장치 중 하나다. 거대한 뚜껑이라고 얘기할 수 있고, 과거 소련에서는 상징적인 이름을 붙이기를 좋아한 듯 보인다.
흑연: 노심을 둘러싸고 있으면서 핵분열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체르노빌이 폭발하면서 이 흑연은 방사능오염물질이었고, HBO 체르노빌 드라마에서 '소방관이 흑연 덩어리를 손에 한 번 쥐었다가 놓친' 장면이 나오는데, 그 사람은 짧은 시간이 지난 후 손이 녹아버리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방사능이란 그만큼 무섭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다.
제어봉, 감속제: 핵분열을 '전기생산'에 필요한 만큼 폭발시키고, 나머지는 억제, 제어하여 발전에 활용한다. 앞서 얘기했듯이 잘못을 잘못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분위기에서는 문제를 그냥 떠안고, 발전소를 건립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독재자이자, 생명을 담보로 도박하는 것과 진배없다. 제어봉, 감속제는 인류의 안전을 책임지는 것이었으나 RBMK-1000의 설계 자체의 결함으로 인하여 제대로 된 역할을 적시에 하지 못했고, 오히려 역반응을 일으키는 기폭제로 작용하였다.
<인상적인 등장인물들>
- 브류하노프: 체르노빌의 진실을 은폐하려고 노력했던 사람이다. 책임자이며, 자신의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하려고 했던 부도덕한 사람이자, 당의 지도부, 권력에 무릎을 꿇었던 사람이다. 프리피아트라는 대도시의 계획을 책임졌던 사람이었으나 안전사고와 재앙에 대해서는 부인하였던 인물이다.
- 포민: 브류하노프와 마찬가지의 인물로써 책임자였다. 당의 권력에 앞에 무릎 꿇고, 자신이 저질렀던 오만함과 행동에 대한 책임은 짊어지려 하지 않았다. 그로써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았고, 결국 이 인물은 재판에 넘겨졌다.
- 댜틀로프: 체르노빌 사고가 있었을 때 컨트롤 타워의 책임자였다. 이 인물은 이성적인 사람으로써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무책임한 태도였기 때문에 사고를 수습하기는 커녕, 부인하고 책임을 전가한 인물이다. 결국 이 인물은 재판에 넘겨졌다.
- 아키모프: 톱투노프와 마찬가지였고, 수석 엔지니어로써 발전소의 발전량을 체크하고, 조절하는 역할을 수행한 체르노빌 4호기 컨트롤 타워의 직원이었다. 댜틀로프의 부당한 지시와 폭언에도 자신의 할 일을 묵묵히 수행하였던 인물이고, 톱투노프를 도와서 체크노빌 4호기를 정상궤도로 올리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이었다. 저출력 상태에서는 엔지니어의 손길을 거부한채 날뛰기 시작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소신을 지키려고 댜틀로프라는 상사의 '명령'을 거부했던 장면은 굉장히 인상적으로 기억된다.
- 톱투노프: AZ-5 긴급제동장치를 누른 인물이고, 그의 행동으로 인하여 체크노빌 4호기는 폭발하였다. 훗날 '도대체 왜 발전소가 폭발하였는가?'를 조사하면서 밝혀진 사실이었는데, 매뉴얼에 적힌 대로 따랐다. 그의 행동에 있어서 흠잡을 곳은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예측하지 못했던 폭발을 막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폭발에 대한 사전교육 또는 런-다운 테스트에 대해서 알지 못한 채로 시한폭탄을 조종했던 신입 직원이었다.
- 보리스: 소련의 자원을 총괄하는 인물이다. 레가소프의 요청으로 핵반을 늦추기 위해서 끌어모을 수 있는 자원을 죄다 끌어모아 목표를 달성한 인물이다. 다만, 방사능에 노출되어 조국에 충성을 바치고도 목숨을 잃는다.
- 레가소프: 연구소 소장이며, 핵분야에서는 자타공인이다. 전문가로 불리며 체크노빌을 봉합하고, 사고를 수습하는 책임자였다. 현장에서 벌어지고, 지도부 회의에서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은폐, 조작' 등의 모습에 경악한다. KGB라는 비밀경찰의 사찰 등 진실을 이야기하지 못한 상태로 그는 자살한다. 레가소프가 없었다면 , 체르노빌은 아직도 불타고, 녹고 있을 수도 있다. 인상적인 인물이고, 진정한 과학자의 모습이다.
#5
우리는 진실을 알고 싶었다. 딱 그 한 마디다. 체르노빌이 왜 "폭발"하였는가? 당의 지도부는 진실을 은폐하려고 노력하였고, 어느 정도 성공하는 듯 보였으나, 이것이 옳지 않은 행동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밝혀진다. 진실을 호도하고, 왜곡하는 일련의 과정은 역사적인 사고마다 등장하는 것이 우연의 일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동물농장 #조지오웰 #HBO체르노빌 다시보기
사회주의를 동물농장을 비유하여 묘사한 책을 소개하고 마무리하고자 한다. 진실을 은폐하는 행위들이 얼마나 큰 피해와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지만, 언론에 의해서 정보를 습득함으로써 '조건'이 걸렸다. 이 조건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결국, 진실은 영원히 은폐될 것이다. 소위 말해, 드러나면 곤란한 사실들이 우리 주변에 분명 있을 것이다.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말이다.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4대강 사업이 뜨거운 감자였고, LH사태를 겪으면서 과연 정부는 시민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인지 심히 우려스럽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군사쿠데타를 얘기할 수 있고, 위안부 문제, IMF 국제원조를 받기까지의 과정과 금모으기 운동, 부정선거 등의 이슈도 토론해보거나 생각해볼 문제라 본다.
한 권의 책으로부터 사고의 확장을 경험하는 것은 얼마나 훌륭한 선생인가?
우리는 과거를 통해서, 역사를 통해서 옳은 행동이 무엇인지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앎은 행함이 없으면 아무 쓸모가 없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