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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뒷골목 풍경
강명관 지음 / 푸른역사 / 2003년 8월
평점 :
전에 읽을 때는 강명관의 문체가 조금은 난잡하다 생각했었는데, 맥을 잡지못한 오류였다.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를 읽고 저자의 기본적 사고방식을 접하고 나니, 다시 읽는 책도 재미있다.
역사서에 전혀 등장하지 않은 주변부의 잡다한 이야기로도, 역사를 보는 혜안을 길러줄 듯하다.
나무를 보는 것과 숲을 보는 것의 차이일 것이다.
어느 시대든, 지배계급은 끊임없이 지배를 정당화하고 유지하려 하고, 결국에는 이로인해 부패해 간다.
예를 들어 조선의 과거제는 지배에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합리적 제도로 여겨지지만, 실제 행해진 모습은
대리시험 전문가를 대동하는 등 버젓이 부정행위를 통해서라도 소수가문이 권력을 세습받는 구조이다.
한데, 이런 심각한 얘기를 시시껄렁한 농담하듯 담담하게 풀어내는 것, 강명관 문체의 장점이다.
어우동을 통해 조선사회를 분석한 글은 무자르듯 시원시원하다.
문란한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의 통제할수 없는 성욕을 권력으로 정당화 시켜버리더니
이로인해 출현한 어우동은 그 남성에 의해 정죄되더라는 거다. 어처구니 없지 않은가.
그러니 왕이라는 남자의 성욕으로 여러 여자와 간통하는 것도 승은이라는 은혜로 격상시키고,
양반에게 첩제도는 인정하면서 그 자손은 서얼로 차대하는 것도 순식간에 우스운 일이 되어버린다.
책중에 반촌의 이야기를 가장 흥미있게 봤다.
소고기 금지령이 있었지만, 소고기의 소비층이 조선의 지배계급인 사대부여서(역시나..),
성균관을 둘러싼 반촌은 도살면허를 독점하고, 성균관 유생에게 고기 반찬을 대어준다.
특이한 점은 이 마을이 성균관 유생의 하숙촌이 되면서 이념 서클의 온상이 되기도 한다는...
범인이 반촌에 숨어들면 유생들의 반발로 더이상 추적을 할수 없는 치외법권지대가 된 것.
어쨋든 지배계급에게 고기반찬을 제공하는 이 고귀한 역할을 수행하는 마을의 사람들은(또 역시나)
노비 정도로 천하게 여겨진다. 친교, 결혼등 어떤 관계도 외부와 맺지 않는다.
고립된 이 마을의 사람들은 폭력적이기도 했다하고, 쓰는 말도 개성 방언일 정도로 일종의 섬이 되어버린다.
성균관이 몰락하면서 반촌은 해체되고 차별도 사라졌다지만,
신분제가 사라졌다고 오늘날 차별이 사라진건 아니라는 저자의 말이 핵심을 찌른다.
한문을 전공한 사람이지만 자급자족경제를 손에서 입으로 가는 경제라고 표현한 것이나,
곳곳에 감칠맛나는 우리말과 구어체를 섞어 고매한척 하지 않고,
망설임없이 후련하게 써내려가는 글 솜씨도 책의 재미에 한몫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