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모자람을 알게 하여 자유롭게 공부하게 만드는 책!” 띠지에 박혀있던 이 한 줄은 정말 이 책을 꿰뚫는 한 문장이었다. 오래 공부한 인문학자의 산문집이라고 해서 사유의 깊이가 깊을 거라고 예상하기는 했지만 이 정도일줄은 몰랐다. 머리말에 ‘자본론’의 확대재생산 표식이 나오고, 그에 대해 로자가 감가상각의 보충은 가능하지만 축적은 불가능하다고 해석했다는 소개와 설명이 나온다. 이 한 줄을 알아먹고 싶어서 머리말을 읽는 데만 해도 꽤 오래걸렸다. 이렇게 책을 읽은 적이 얼마만인지. 오랜만에 아랫배로 읽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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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을 낑낑 대며 읽어내고 그 다음에 마주한 꼭지는 ‘독서의 가치’. 따끔한데 기분이 상하지않는 죽비를 맞는 것 같았다. 독서를 위한 독서가 아닌 어떻게 독서를 할 것인가에 대해 저자는 자신의 경험에서 얻어낸 지혜를 풀어내고 있었다. “책을 이해하는 능력은 자기에게 필요한 책을 선택하는 능력 또는 맥락을 구성하는 능력과 다른 것이 아니다. (중략) 의미는 책의 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책들이 다른 책들과 맺는 무수한 관계 안에 있는 것이다.”(p.30) 측면의 독서, 맥락의 독서. 쓰고 나니 이게 특별한 건가 싶기도 하지만, ‘책 밖에 책이 있다’로 정리되는 이 화두는 내게 쿵하고 내려앉았다. 비로소 내 독서습관을 되돌아봤다. 왜 책을 읽는가 고민해봤다. 부끄럽지만 책을 읽으면서 책을 왜 읽는지 고민을 한 적은 사실 별로 없었는데, 따끔했다. 무한한 맥락 앞에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태도를 겸손으로 꼽는 태도의 씨앗을 내게도 옮겨 심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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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자유>는 (사전)투표를 하러 가기 전, 그리고 투표를 마치고 나서 읽은 책이었는데, ‘문제는 계산이다’ 이 챕터는 이 시기에 읽어서 더 크게 와닿았다. 기본소득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었는데, 신화가 된 복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또 기본소득제 논쟁에서 중요하지만 정작 잘 다뤄지지 않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말하는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기본소득제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넘어서 “이제 ‘일하지 않으면 먹지 말라’는 말은 ‘먹지 않으면 일할 수 없다’는 말로 바뀌어야 한다. 소득은 헌법상의 권리가 되어야 한다.”(p.129)는 말이 깊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