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기 전에 쓰는 시들, 가기 전에 쓰는 글들. '시'에 빗금이 그어져 '글'로 고쳐진 제목의 보랏빛 책을 통해 그를 알게됐다. '아...' 읽으면서 '아... ' 이렇게 바보 도트는 소리를 내면서 여러번 멈춰가며 느리게 읽을 수밖에 없는 책이었다. 아름답다가 서늘하다가 또 뜨겁기도했다. 그 전까지 나는 허수경 시인을 잘 몰랐다. 그가 가고나서야 그의 존재를, 그의 시를 알게됐다.⠀그런 그를 기억하는 또 한권의 책이 나왔다. <오늘의 착각>. 까끌하고 단단한 귤색 표지에 이파리같은 초록 띠지가 감겨 잘 익은 열매 같은 책. 이 책도 말해뭐해. 늦게 빠진 팬심도 섭섭하지 않게 채워주는 사유와 또 내가 몰랐던 시들이 많아서 여러번 울컥이게 했다. '착각'이라는 말이 이렇게 시적이었나. '착각' 하면 '하지마'라는 말이 쉽게 붙어 떠올랐는데, 이 글들을 읽고 나서는 할 수 있다면 좀 더 많은 착각의 순간을 모으며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해변에 선 인간은 유한했고 바다는 끝을 알 수 없어서 모호했다. 그 앞에 서서 인간의 유한성을 생각해보는 단순한 사유조차 거부하는 막막한 자연이 바다였다. (중략) 바다 곁에서 받는 위로는 우리가 자연에 가까이 있다는 착각 때문이다."(p.21) 바다에서 내가 느꼈던 막연한 위로의 뿌리를 알려주는 듯한 이 생각들이 기억에 남는다. 사유와 시가 범벅인 표현들을 잘 주워먹고 꼭꼭 씹어 소화하고 싶어서 밑줄을 꽤 여러군데 치면서 읽었다.⠀허수경 시인과 나의 만남은 시작부터가 끝이 나있어서 그런지 더 애틋하고 귀하다. 처음엔 왜 그 전엔 몰랐을까 아쉽기만 했는데 지금은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다음에 나올 그에 관한 책들이 또 기대가 된다.